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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사진

(13-34)강화나들길2구간(2013.09.16.)

1구간을 마치고 얼른 1주일이 빨리 지나가길 기다렸다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1구간 완료후 여기저기 자랑했었다

부러운듯 동행을 요구하는 사람이 생겼다

오랜 산행 동지인 장재헌 형님이 동행을 요구했고 그사모님과함쎄 일요일 아침 만났다

그리고 전주와같이 GO~~~ Go~~~~

강화도 갑곶돈대를 향해서 갔다

 

병자호란이후 강화도 해안을 지키는 돈대가  53개 안들었다 한다

돈대는 지금으로 말하면 반공포 기지같은 역활을 했다고 볼수있다

해안초소 전망이 좋은 곳에 자그마한 성을 쌓아서 대포  또는 소포를 놓고 해안을 감시하던곳이다

특히 강화도 해변이 중요성이 있던이유는

당시 교통수단의 최상위에 놓여있는 함정이 수도서울을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있어서

돈대의 역활이 그만큼 중요함을 나타낸다할수있다

그리고 돈대 3개를 관활하는 곳이" 진"과 "보"인대

이곳에 7보에 5진이 있어 총12개가 53개 돈대를 관할했다한다

그리고 이돈대들은 개화기 서구함정들이나 일본침략에 대응하여 처참한 전투를 했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그래서 자락길 2구간은 보와 진 그리고 돈대가 많은곳으로 호국돈대길이라 칭했나보다

우리 일행이 이곳 갑곶돈대에 도착한시간은 7시30분이 조금 지났다

보시다시피 관광안내소와 매표소는 아직 자기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이고

우리는 아침 전이기에 요기를 하며 잠시 기다리기로했다

그리고 가져온 가래떡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가볍게 몸을 풀며 대장정의 시작을 준비중이다

이제 정확하게 08시이다

출발하기 바로전 강화보건소의 걷기 캠페인 간판을 바라보고

출발한다

도로표지판에는 덕진진 광성포대 사진이 우리 눈을 끌게했고

덕진진아 기다려라  조금있다 만날것임을  약속하고 출발했읍니다

아침을 머금은 거미줄이 나락길 표시와 함께 이슬이 마르기를 기다리듯

우리의 발길도 서서히 속도가 붙어갑니다

아스팔트 도로길이 실망으로 낙심할무렵 왼쪽길로 화살표가 인도하고

역시 시골길은 이런길을가야지 여기서까지 아스팔트를 가야한다면 실망이 클수밖에 없지요

다행입니다

왼쪽은 갯벌 철조망길 오른쪽은 아스팔트 도로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길은 탁 트인 흙길로서 걷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뒤쳐져서 두부부가 서로 돌보아주면서 오는 모습이 부럽기도합니다 

커다란 강같이 느껴지고

지금까지는  바다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갯벌에 어선을 보니 바다가 맞기는한가봅니다

그렇지요 길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는데

길이 아니고 성이었네요 강화외성

우리기 가는 초지진까지 연결되었다지요

이런길 들꽃 보는 재미도 쏠쏠한데

사진을 잘못 찍었네요

실제로는 무지 이쁜꽃인데

강화의병운동시 순교자 기념비입니다

뭐때문에 순교했는지 모르지만 좋은일로 순교했겠지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여기가 가리포인가봅니다

고재형 이란 분은 강화 문단에 아주 유명하신 분인가 봅니다

지난주 부터 이분의 시가 나들길 곳곳에 있군요

시가 좋은지 나쁜지 구분은 안돼지만 강화가 자랑해야 할 시인인듯 합니다

장어구이 마을 입니다

정말 장어구이 집이 많군요

아마 서울의 길목이 강화이듯

장어도 서울로 가야하는 운명인가 봅니다

그 길목에서 많은 희생이 사람으로 부터 .....

삼가 명복을 빕니다

우리는 지금 가을을 걷고 있읍니다

바다, 억쇠 그리고 여인

어울리나요?

성이 바다와 닿았읍니다

성삼부를 콘크리트로 포장해놓았군요

시대에 맞추어 개축했단 말이겠지요?

코스모스와 잡풀 그리고 무게가 나가는 쌀나무입니다

역시 가을입니다

이렇게 가을 아침을 즐기고있을때

우리앞에 용진진이 나타났지요

용진진은 가리,좌강,용당돈대를 관할하는 진으로

돈군과 그들의 보급품을 관리하는 곳이랍니다

나들길은 오두돈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고 지금부터는 길이 변했지요

길이 변하니 기분도 변합니다

솔찍히 우린 이런 산길체질이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 오르막길은 싫어졌어요

오두돈대를 가기전에 용당돈대에 먼저 들르게 되네요

용당돈대는 용진진이 관활하던 돈대중 하나입니다

서쪽에 출입구가있고 북,동,남쪽에 4개의 포문을 두었지요

그리고 돈대중앙에 참나무(상수리나무)가 1그루가 있답니다

서쪽이입구인이유는 바다 반대쪽이기 때문이지요

포문입니다

크기로보아 유효사거리 300미터짜리 소포가 들어가는 총안입니다

이것을 여장이라 해야하나요?

돌을 이중으로 쌓아서 가운대 잡석으로 다져 넣었읍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돈대마다 중앙에 정자나 나무를 심어놓았읍니다

이유야 뻔하지 않나요?

도토리나무가 일정한 크기로 잘려 널부러져 여기저기 있어요

어쩌면 바람이 불어 가지가 부러져서 떨어진 것 같기도 하고 또 누군가가 일부러 꺽은 것 같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도토리거위벌레라는 놈이  송곳같은 입으로 찔러 도토리 안에 알을 낳고 새끼를

먹여 살리려는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불가피한 처사라고하네요. 혹시나  알이 떨어질때 다칠까봐 잎을 3-5개 붙여서

 충격을 흡수케하는 센스(모정?)와 깔끔함(잘린 단면의 모양)도 보여주지요.

그렇게 떨어트린 가지를 모아보았읍니다

용두돈대의 상징인 상수리 나무입니다

돈대 담밖에서 본 상수리 나무입니다

그래도 돈대 모양을 살려 주는 나무입니다

그나무는 돈대를 지키는 군인에게도 좋은일을 했을것입니다

돈대를 나와서 오두돈대를 향해가는 길은 역시 산성길입니다

산성길에 새한마리가 죽어있네요

저죽음엔 어떤 사연이 있을까요?

삼가 명복을 빕니다

이길은 싸리나무의 천국입니다

길게 늘어진 싸리나무에 붉게 점밖은 꽃들이

나를 보아 달라는거 같지요

정말 군락이라 해야 해도 되겠네요

싸리나무 군락

그러다가 또 돈대가 나옵니다

화도돈대이지요

꽃이 많았던 돈대였나봅니다

그런데 모습이 좀다르지요?

평면을 조금 돋아놓은듯합니다

배수시설도 되어있구요

골프장에 포대그린이 이런모양이지요

아마 포를 배치해 그냥 발사했던곳인모양입니다

돈대앞 갔다왔다는 흔적 남깁니다

글이 잘 안보이지요?

거기서도 읽는건 포기했답니다

다시 오두 돈대를 향해 갑니다

햇빛도 강해지고

숲은 거미줄이 우릴 잡으려합니다

그래서 벌판에선 햇볕가리개

숲에선 거미줄 처치용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다보니 10시이군요

오두돈대가 여기입니다

2시간 쉬지않고 왔어요

물도먹고

간식도 먹었어요

그늘이 좋아서요

그운내서 잠깐 오르니 또 돈대가 있읍니다

바로 오두 돈대입니다

鰲(자라"오") 頭(머리"두") 자라머리처럼 지형이 생겼다지요

역시 그말입니다

"자라머리"

서쪽 문을 통해본 돈대 내부입니다

미인이 모델이 되어주셨네요

모델을 빼고 찍어보았읍니다

역시 모델이 왜 비싼지 알겠네요

여장부분이 특이하네요

참 아까 여장이라한거 취소합니다

포대 윗부분이 여장이네요

특이하게 돌을 쌓았는데 쓸어지지않을까?

견고하긴합니다

포대 부분입니다

누군가 와서 쉬고간흔적이있읍니다

비도막아주지요

창문도 있지요

혼자 지내기딱 알맞는 원룸입니다

여장부분이 튼튼한지를 살펴봅니다

끄떡 없네요

머리에 나무가지있지요?

저건 산초나무 잎입니다

날벌레들이 자꾸 달려들어서 머리에 달고 다녔더니

퇴치되었읍니다

산초 냄새가 독해서 그런가 봅니다

이아저씨 싸리나무 들고 신내렸나봅니다

돈대 지키다 죽은 혼령들 달래고 있나요?

우측으로 흔들고

그리고

죄측으로 흔들고

이리루 오너라~~~~

담장 밑으로 내려와서도 흔들고 있지요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아! 이구간이 전성(벽돌)이었구나

난 그냥 성인지 알고 그냥 통과했네요

성곽을 관찰해야하는데

아쉽네요

방아깨비를 잡았읍니다

기념사진 찍어주려했는데

흔들렸지요

미녀가 들으니까

더 생기나네요

갯벌을 갑니다

갯벌이 온통 빨겠읍니다

함초 밭이지요 지난번 방송에서 저거먹고 암치료 했다는 사람있었는데

지천이 함초이네요

호박도 주인이있는지 없는지

지천에 널려있읍니다

우리나라사람은 자기껏이아니면 안가져 갑니다

갯벌에 조형물인가요?

고기잡는 기구인가요?

이건 조형물이 확실하군요

작품입니다

이갯벌에 널려있는 저것들도 모두 작품입니다

이 작품도 자리를 잘못 잡은것 같군요

바닷물에 작품같지는 않아요 미안하지만 폐기물 같았어요

오던길을 되돌아 봅니다

오두돈대가 저멀리 보이지요

자라머리 모양이 보입니다

이제 11시10분이네요

3시간 정도 걸었더니 커다란 기아집이 보입니다

광성보이지요

이곳은 입장료를 받네요

광성보는 대문으로 되어있고요

안해루라 여있읍니다

바다를 누른다는 뜻인가요?

이곳에서는 문화해설을 부탁했다니다

이분이 문화해설가이신데요

강화도 전반에대한 설명 감사했읍니다

그리고 이곳을 통과하는데 많은 도움 되었지요

광성보 내에도 이런 돈대가 있읍니다 광성 돈대이지요

그런데 이곳은 여장부분이 다른곳과 다르지요

네 이곳은 흙을 구워 만든 벽돌로 여장부분을 만들었답니다

아마 수원성이 이곳의 공법을 모방하지 않았나 합니다

벽돌은 작고 섬세한 모양도 만들수있지요

광성돈대에 대한 설명입니다

안해루 오른편 쌍충비 가는길입니다

보도블럭길에 양쪽 가로수가 정말 길을 운치있게 만들었읍니다

걷기 좋은길 추천합니다

쌍충비입니다

신미양요때 장렬하게 전사한 어재연 장군과 그동생 어재순의 순절을 기념하는비가 쌍충비입니다

쌍충비 말고 또다른 비도 있네요

이것이 그유명한 어재연,어재순의 쌍충비입니다

잘읽어보세요

신미양요 이름없는 무명용사의 묘입니다

그시절 군사들의 옷은 무명옷이었답니다

서양 오랑케의 총이 무섭다고 부인들이 총격에 견디라고 솜을 누벼서 옷을 만들어 주었답니다

그것이 화근이되어서

대포의 화염에 솜옷이 타들어가 전사자들이 신원확인이 불가능했다지요

그래서 죽은 자가 누군지몰라서 4~5명씩 유해를 모아서 합장했다는겁니다

이묘지 7구는 50여명의 시신이 묻혀있는 사연있는 묘입니다

위묘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신미양요때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손돌목돈대입니다

그뜻은 동쪽 바로 아래 용두돈대가있는데 그앞의 바다목이 폭이 좁은 물목이라 손돌목이다

또다른 이야기는 고려때 왕이 강화로 피난왔을때 손돌이라는 뱃사고이 왕과 신하를 태우고 읷을 건넉 었는데

초지쪽을급하게 배를 모는 것을 본 왕은 자기를 해치려는것으로 생각하고 손돌을 목을베라고 명령했다

그때 손돌은 왕에게 자신이 죽은뒤 바가지에 물을 챙 그것을 따라 배를 몰면 무사히 넘을것이라 했고

그렇게 하여 무사히 험한물길을 벋어났다한다 그래서 이곳을 손돌목이라한다는 말이있다

원형돈대이고 여장은 벽돌로 되어있다

돈대가 남쪽으로 갈수록 전쟁은 치열했고 여장부는 벽돌로 되었다

아마 전쟁으로 무너지고 다시 쌓으면서 벽돌로 보강하지 않았나 본다

손돌목 돈대에 대한 설명이다

돈대 내부이고

잘꾸며진 축구장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150년전 총성과 폭탄이 귓전으 때리는 듯함이

고요속에 들리는듯하다

돈대위에서보는 물목

이곳이 바로 손돌목이다

특히 여장에 지붕석을 올려 성곽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있다

돈대에서 내려오는길 손돌목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한다

그리고 바로 그곳이 광성포대이다

 

요새이다 포를 숨겨 놓고 사격하는곳이다

최근에 복원한듯하다

위에 말한 손돌의 전설이다

그리고 잠시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용두돈대이다

용두돈대 입구이다

범상치 않다

민요가 아니고  연대 가요에 민요풍을 입혔다고 볼까?

과연 150년전 이모양그대로는 아닐것이다

이쁜모양의여장이 길을안내한다

총안은 총구멍이라기보단 난간의 구멍같다

성이아니고 길인것이다

강화 전적지 기념비이다

뒷면은?

이렇다.

이은상글을 김충헌이 글씨를 썼다

길어서 내용은 못읽어보았다

노산 이은상선생 어렸을때 강연도 많이들었고

시조시인으로 유명했던분이다

가만히보면 박정희시대 어용시인이었을수도잇다

전투보단 주변 경관을 생각한 관광명소란 생각이다

물살이 손돌목 답다

예사롭지않다

이양반 신기가 대포에까지 왔나보다

역시 영혼이 ㅁㄶ은곳이니 이해가 됀다

다시 덕진진을 가기위해 광성포대를 지난다

그리고 덕진진이다

이곳도 입장료를 받네요

공조루 덕진진의 문루에 쓰여져있지요

덕진돈대 남장포대를 관할하는 진이다

덕진진에대한 설명이다

우난히 *진진이 맣은게 나루와 관련있지않나요?

나루津자를 쓰잔아요

덕진돈대 전쟁모습 미군이 그당시 촬영했던 모습입니다

돈대 가기전 남장포대를 설명한 글입니다

그리고 남장포대 전경이구요

포대와 미녀입니다

전쟁을 막는 여자

그리고 대포를 설치한 포대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덕진돈대입니다

강화돈대중 가장 요충지로 분류된다합니다

 

 

돈대 내부입니다

여장은 없고 내부가 움푹 파여있네요

내부는 토성의 모양을 냈구요

 

돈대는 사각형으로 되어있읍니다

외부를 보니 정말 중요한곳이구나를 느꼈읍니다

왜냐하면 대원군의 경고비가 설치되어있기때문입니다

경고비가는길 덕진돈대 성벽입니다

아주 잘어울리는 여성벽의 여인이지요

경고비에 대한 설명이지요

"해문방수타국선신물과"외국선박의 출입을 금한다는 뜻입니다

배를타고 들어오다 이비를 보고 돌아가란 뜻이겠지만

보이겠읍니까?

그냥 상징적인것이지요

바르게 살자고 현수막붙치는거겠지요

저기 초지대교가 보입니다

거기까지가 오늘의 목표입니다

다시 둘레길을 가고있읍니다

색별로 조화를 이루는 코스모스가 정말 눈에 탁~~~ 뜨입니다

14:23 최종 목적지인 초지진에 도착했읍니다

매표하기전 살짝 입구를 봅니다

표를 살 가치가 있나 없나를 보기위함입니다

그리고 폭탄맞은 소나무를 주시합니다

폭탄을 맞아도 100년이상 잘자라주었읍니다

그리고 모양도 뒤지지않군요

여기를 그리 많이 다녔는데도 여기가 초지진 돈대가 있다는걸 왜몰랐었나요?

참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자라주었읍니다

참어려운 환경에서도 잘커온 우리나라 같이 말이죠

마무리 기념사진 찍어봅니다

어쪄면 이런 글귀하나가 금방 우릴 자극시킴니다

많은 글이 필요없지요

드디어 매표를 합니다

그리고 150년전 사진을 감상합니다

처참하고 그리고 불쌍했던 우리의 조상들

그져 용감하게 죽을수밖에없었던 과거입니다

때마침 바람이 우릴 환영합니다

그에 대응하려 머리를 숙여 인사합니다

초지돈대 내부입니다

역시 여장부는 벽돌로 되어있고 지붕석을 쒸었읍니다

잠깐 위 사진을 보겠읍니다

예 여장부분 벽돌인지 돌이지는 구분안되지만 지붕석은 분명 없읍니다

과잉복원이랄까요?개축이지요

이제 초지대교는 바로 눈앞입니다

초지돈대 내부에서 폭탄맞은 소나무 배경으로 모늘 2구간 마무리합니다

초지돈대 내부입니다

중앙 누각에 대포 전시되어있지요

버스오는시간까지 주차장 매점에서 인삼 막걸리 3명이 1병 먹었읍니다

심한갈증이 막걸리 이외에는 바라지 않읍니다

수고하셨읍니다

2구간 마쳤읍니다

버스타고 갑곶까지 갔는데요

10분걸렸읍니다

6시간 걸어온길 10분만에 통과하는 이 불편한 진실이지만

또 3구간을 기다려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