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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사진

(13-36)2013.09.29. 강화나들길 3구간

지난주 명절로 3구간을 1주 연기하고  바로 오늘가기로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어제 저녁부터 비가 오고

더더욱  예보는  하루종일 비가온다는 불행을 알려온다

그러나 한번 예정은 불변인 우리는 3구간을위해 비를 맞을 준비를하고

강화를 향해 출발했다

 

3구간은 온수공영주차장에서 출발하고 전등사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지만

강화도에 전등사를 안가고 뭔 나들길?

 그래서 3구간에 우린 전등사도 포함한다

3구간은 온수리 공영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이곳에 도착한시간은 9시가 조금 안되었다

이곳 전등사는 몇번 와보았지만

그주변은  잘 모르는 곳이다

그래서 찾는데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그리고 또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른다

일단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후 주변을 둘러보기로했다

우선 비가끝났다

그래서 무지 기분이 좋다

신이 우릴 강화 나들길로 안내한 듯하다

일단 출발신고로 사진을 찍는다

2구간부터 같이한 장재헌 대원이다

그리고 나 또한 도전적인 자세로 출발신고를 한다

그리고 주변을 헤메고다녔다

출발 도장을 받는 CU마트를 찾아서다

그리고 찾았다

여권에 3구간 출발 도장을 해결했다

길을 묻고서 전등사로 출발한다

여기가 전등사 동문 오르는 입구이다

출발부터 언덕이 우릴 압도한다

그러나 비가안온다는 사실이 절로 춤을 만든다

다음주 전등사에서는 역사문화 축제가 있는가보다

그리고 동문에 도착했다

동문에 연결된 성곽은 삼랑성이다
삼랑성은 정족산성이라고도 하는 전등사를 둘러쌓고 있는 성이다.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이있어 삼랑성이라 부른다.

전등사를 가기위해서는 통과의례가있읍니다

일금 2500원

감사한 마음으로 지불하고 통과 허락을 받았읍니다

삼랑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있지요

공부합시다

자 이제 동문과 삼랑성을 살펴봅니다

성곽은 막돌을 쌓았고 문은 벽돌로 홍예를 만들었지요

문의 지붕은 합판으로 되었읍니다

단군시절은 기록이고 최근에 만들어놓은 성곽입니다

복원이 아니고 개축이겠지요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인데 지금기술로 깜쪽같이 복원가능하답니다

그러나 복원한 티를 내기위해서 엉성하게한다나?

어째든 모양만은 죽여줍니다

그림으로는 전등사를 대표할만하지요?

성문 저편에 장재헌대원을 넣었읍니다

윗 사진같은 그림이 안되는군요

역시 자연스러움이 예술을 만듭니다

성문을 통과하면 바로 양헌수 승전비가 나옵니다

양헌수승전비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을 물리친 양헌수(1816~1888)장군을
기리기위해 1873년에 강화도 주민들이 세운 비이다

양헌수승전비의 전경입니다

야! 상사화 꽃이다!

난 이꽃을 상사화로 알았는데

이꽃은 꽃무릇이랍니다

잎과 꽃이 만날 수 없다고 해서 상사화라고 하는데 두종류 모두 잎과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건

같지만 꽃 모양이나 잎모양 피는시기가 서로 다릅니다.

상사화의 잎은 좀 넓고 크지만 꽃무릇의 잎은 좁습니다

그래서 이건 상사화가 아니란 말씀입니다

전등사길은 다음주 역사문화 축제를위한 홍보가 길에 가득입니다

다음주 그리고 또 그다음주 펼쳐질 예정인가 봅니다

요것이 무엇인가?

예전에 설악산 봉정암에서 본적이있었지요

경전을 저안에 넣어 놓고 돌리면 경전을 읽는것과 같다는 거지요

다시말하면 게을른건가요?

문맹이라 책을 못읽는 백성들에게 위로를 주는 그런 기구 일겁니다

이건 모조품이라 쓰여있네요

드디어 전등사에 왔읍니다

전등사는 삼국시대 381년에 아도 화상이 창건하여
처음에는 진종사라 했다고 전한다합니다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의 신성한곳에 창건하였고
백제 불교가 공인되기 3년전에 지어 졌다하지요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창건된 절이라하여 '해동비창불우'라고도 불림답니다

전등사 경내를 들어가는 문이자 누각입니다

다른절 입구에 사천왕상등이 읶는것과는 좀 다르지요?

계단을 올라 문을 통과합니다

문을 통과하여 뒤를 돌아보면

그건물이름이 바뀌었읍니다

대조루라 쓰여있지요

고려때 문장에 나올정도이니

이런 표지판을 세울만도 하겠네요

대웅전입니다

고풍스러운 건물입니다

광해군때 다시 지어졌다하지요

특히 대웅전 추녀밑 여인 나체상이 있다는데

자세히 관찰하고 오지 못해 아쉽다

대웅전은 보물 178호이다

그만큼 오래되었고 아름답다는 말이다

딱하니 보아도 예사롭지 않음을 느껴진다

대웅전 오른편에있는 불교서점에있는글이다

맘에 팍 다가오는 한마디이다

전등사 경내를 둘러본다

그리고 삼성각

가운데 석가모니상 그리고 옥황상제 또한분은 산신령일께다

여기 정족산 모든 성인들을 모셔놈곳 이지요

그리고 조금더 올라서

이곳은 정족산사고
전등사 경내에 정족산사고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기위하여 설치하였다
임진왜란때 3곳의 사고가 불에탔으며 유일하게 남은 전주사고본을
강화로 옮겨와 이를 원본으로 4부를 더 만들었다
원본은 강화 마니산사고에 보관하고 나머지 4부는
춘추관,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사고에 각각 나누어 보관하였다.
마니산사고는 병자호란과 화재로인해 정족산에 새로 사고를 건립하여
실록을 옮겼다

1909년 일제에 의해 정족산사고가 철폐되어 실록이 서울로 옮겨졌으며
현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보관되어있다

사고는 단청을 하지않아 고풍스러움이 더하고 문은 자물쇠로 닫혀있었다

사고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적혀있다

담장안의 모습이다

서고의 모습답게 건물아래쪽 통풍구가 인상적이다

담장 넘어에서본 모습입니다

그리고 삼랑산성 북문을 향해 가야하지만

조금전까지 비가왔었서 숲이 물을 흠뿍 먹고있어

방향을 남문방향으로 틀었다

그리고 저 숲속이 정족산 가궐지이다

가궐지에 대한 설명이다

전등사 경내 곳곳에 한창인 구절초 모습입니다

꽃은 우릴 기쁘게 만드는 요소가 있지요?

등축제가 있을 모양인가 봅니다

각종 대형 조형물이 등으로 변화되어

자기를 나타내기위하여 밤을 기다립니다

경내를 돌고

조용히 아침 찻집이 친해지고 싶었지요

그래서 죽림다원을 노크합니다

한참 아침 준비에 한창이지요

앙증맞게 작은 수반에 들꽃이 꼿혀져있지요

아침과 머물어 진한 눈향기를 느낌니다

오미자차와 유자차로 둘만의 우정을 느껴봅니다

조용한 찻집에 동화되고 싶은 불청객 2명입니다

잠시 명상하듯 차 맛을 음미합니다

 

 

 

전등사 남문입니다

문화재적 가치는 없고요

그냥 책보고 그림흉내내서 지은 그렇게 의미는 없을듯한 집입니다

정면에 송해루라 쓰여있지요

송해아저씨가 놀던곳인가 봅니다?

남문안에 열매가 빨간 나무가 있읍니다

난 정말 뭔지 모르겠는데

산딸나무, 구지뽕나무, 개량구지뽕....

이렇게 이야기가  됩니다

하지만 그정도에서 결론이 안납니다

이제 남문을 통과하고 온수성당쪽으로 방향을 옮깁니다

측백나무 잎새에 걸려있는 이것은?

매미입니다

그런데 색깔이?

맞아요 허물입니다

허물오양이 고대로 있지요

온수리 성공회 성당을 갔어야하는데

난 성당으로 생각해서 천주교 성당을 들러다왔읍니다

어째 새집이잔아요 이상하다 생각하긴했지요

성공회성당이 역사가 있는건데 멀리서만 보고왔군요

그러고 이제야 3코스 정식으로 들어섰읍니다

그건 우림ㄴ의 생각이지만

도로표지가 이규보 묘로 표시되어 의심없이 이길로 들어섰읍니다

주유소아저씨도, 지나가는 아저씨도 이길이 맞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들길 마크나 깃발도 하나없읍니다

이상한생각에 안내서에 나온 전화로 문의를 했지만 그냥 진행을할수밖에...

꽤왔지요

하나도 나들길 표시는없구요

찐하게 잘못왔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읍니다

의심은 점점더하지요

누구에게 물어보기위해서 버스정거장도 확인합니다

그리고 다시 덕진진 입구 4거리

지도를 확인하고 일어서 죄회전하기로 결정합니다

길정리방향입니다

그리고 걷고 걸어서

마을회관 도로표지판따라 동네길로 들어서며

드디어 강화나들길 표시를 만납니다

어째 시작부터 길을 잘못들었을까?

반성 또 반성합니다

인도도 없는 도로를 여지껏 왔는데

시골민가 골목길을 가는길 한결 여유로워지고있고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그리고 멀리 마을회관이 보이고

체육관같은 녹색건물이 보입니다

저것은 노산물보관창고이거나, 농기구 수리하는건물일것이다

아니다 체육관일것이다

이런 시골에 무슨 체육관?

내부를 보니 게이트볼장

우와~~~ 우리나라 정말 좋은나라입니다

그러면서 다음은 이규보 묘입니다

우측은 이규보 문학비이고 좌측은 묘역정비기념비입니다

그리고 뒤의 건물은 유품을 보관한 이규보 사당인 유영각입니다

이건 문학비의 뒷면이구요

참! 좋은말이 쓰여있네요

 

 유영각 전경입니다

 

이곳은 재실 백운정사입니다

묘소를 관리하시는 분이 사시는것같지요

고려의 대문장가 이규보(1168~1241)선생의 묘이다.

몽골의 침입 등 어려운시기를 살면서 문장으로 나라를 빛냈던 문인이다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이야기를 서사시로 엮는 둥 우리민족의 주체적정신

에 바탕을 두고 글을썼다

<동국이상국집><백운소설>등을 지었다

1232년 강화로 와서 10년을 살다가 강화에서 세상을 떠났다

현재 묘역에는 상석과 장명등이있으며 좌우에는 망주석이 세워져있다

앞에는 사가제 뒤에는 백운제라 쓰여있다

 

그리고 다시 길을 잘못들었다

묘소에서 밤을 따시는 사당옆젊은이에게 물어보았는데

묘소 오른쪽으로 가란다

그리곤 얼마 안가서 잘못왔음을 알았지만

우리는 돌고 돌아서 연등 국제선원에 도착한다

승복을 입은 외국인 승려인듯한분에게 여기가 무엇하는곳이냐 물으니

사찰이라한다

그냥 사찰?

참이쁘게 관리하는거 같다

노랑머리 ㅅ양사람들이 많이보이지만

우리를 경계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그렇게 외국인들이 우리불교를 공부하고 살고있는곳인가보다

템플스테이도 많이하는듯 숙소도 많이있구나

연등을 나와 다시 마을길을 한참달려온다

우리의 시골이 다 그렇듯

집집이 사람은 안보이고 개들이 집을 지킨다

마지막집 통과하고 마지막 리본을 본후 또다시길을 잃었다

오른쪽넓은길을 통과하니 이런 계단이나오고

힘든 발거름 계단을 오르니 부자집 무덤이나온다

아~~실망

다시 없는듯한길을 헤치고 나가니 반가운 리본이있다

이덤불헤치고 개울건너가라는건가?

못가 그래서 길같지 않은 길로 직진했다

그랬더니 사유지표시와 멀리 숲사이로 곤릉인듯한 묘지가 보인다

 

고려왕비의 묘이다

사실 고려왕릉을 보기가 처음인듯하다

조선시대 왕릉같이 화려하지도 신라왕릉같이 거대하지도 않고 또 부지가 넓지도않다

그리고 또 지금도 이정도 숲속이면 그당시는 상당한 숲속이었으리라

아마 몽고에 쫒기고 강화에 천도해서 임시로 왕릉을 해서 그런것 아닐까?

무덤속 내용이 많이 도굴당하여

무덤이 파헤쳐졌었단다

74년 복원했다고

고재형씨 또나타났다

1구간 돌때 무지 많이 보았는데

이제는 반갑다

다시 동네길을 통과한다

황해도 사투리를 쓰는 할머니네집이다

도토리묵을 만드는 과정인가보다

그릇그릇마다 도토리 안금모으는중입니다

많은 묵 만들어서 도시에 있는 가족들가 나누어 먹겠지요

눈에 선 하군요

이제부터는 우리가 좋아하는 숲길입니다

거기에 경사도 없으니 정말 좋읍니다

한마디로 신납니다

나무기둥에 표주박을걸어놓아 샘인 줄알겠지요

물모아 맑은물먹기가 무척 힘들군요

고재형할아버지 여기도 다녀가셨네요

진강산이군요 여기가

진강산 한참전에 여기서 시산제지냈었는데

여기가 거긴지 전혀알수없네요

오는동안 정말 많은곳이 이렇게 밤송이들이 떨어져있었어요

이걸주워오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답니다

이건둘레길을 가는건지 밤을 주으러 온건지....

그냥 좋다는겁니다

자세히보면 썩은것도, 벌레먹은것도 많았답니다

1,2,3개 ㅣ렇게 편안한길, 확실한길에는 리본이 필요이상으로 많지요?

그런데 결정적일때는 꼭 없더라구요 덕분에 조금헤메기는하지만

여기가 석릉입니다. 이렇게 돌이 많아서 석릉인가 봅니다

먼저오신 형님이 힘든 숨을 몰아쉬는군요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여기서 또 뵙지요

담에 또뵙겠지요?

고려21대희종의릉입니다

정말 소탈하지요

복원시 고려청자도 나왔답니다

 1204년 왕위에 올랐고 최충헌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최충헌에의해
왕위에서 쫓겨나 강화교동으로 유배되었고 몇번의 이동과 여러고초를
겪다가 1237년에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머리잘린 문인상인데

제기둥인지? 임시로 올려놓았는지?

초라해보이는 모습입니다

 오른쪽에있는 문인상이지요

 그리고 다시 산길입니다

대략 6~7KM정도 남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왼쪽으로 인천카토릭대학 사유지임을 알리는 간판이있고

학교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지요

 캠퍼스와 맞다은것 같은길에

조각 작품이 설치되어있고요

 그리고 또 어느정도 왔지요

걷기좋은길 가속기좀 밟았읍니다

가릉이 2.85KM남았군요

사실 이런 거리표시가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될것 같은데... 하는생각이 났읍니다

 그리고 이런 송림이 나타나고

 이솔ㅇ림에서 잠시 쉬며 지도를 봅니다

 그리고 다시 GO~~GO~~~

강화~~~ 참 무덤도 많지요

이곳저곳 눈만 돌리면 무덤입니다

 갈림길 이정표가 우릴 안내하고

 진강정이란 정자가 나왔읍니다

 정자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져있고

 이런 시귀도 적혀있지요

그리고 잠시 땀을 닦고 출발합니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것은 바로 오늘의 목적지 가릉입니다

 고려24대 원종(재위1259~1274)의 왕비 순경태후의 무덤이다
순경태후는 1235년 원종이 태자가되자 태자비인 경목현비가 되었으며
다음해에 충렬왕을 낳고 얼마 후 강화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다.
 

가릉은 전면이 개방되어 유리문으로 되어서 있다

 유리문을 통해보이는 무덤 내부이다

 가릉의 문인석이다

얼굴모양이 우리나라 사람은 아닌듯하다

아마 몽고에 쫒겨다니다

몽고사람들 무서워서 무서움을 상징으로 그모양을 만들지않았나 추측해본다

무덤뒤에 무덤을 지키는 해태?상입니다

2개가 뾰족 나와있읍니다 

 이아주머니들 무덤의 벌초를 담당하시는 지역 분들입니다

새참으로 잔득 차려놓고 우릴 반가이 맞아주시며

떡도 주사고 카피도 얻어먹고

감사했읍니다

 내용을보면 무덤이 제대로 유지된것이 얼마 안되었다는거지요

 역시 이양반 여기도 왔었겠지

다시 반갑읍니다

 3구간 도착 도장 찍어주는 장소 허브향기가 보인다

오늘의 일정이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무사히 3구간을 마치고 만세를 불러본다

3구간 끝냈다!!

 곳곳에서 주운 밤이다

이건 나들길을 간건지?  밤주우러 간것인지?

어째든 비가 안와서 좋았고

여러번 길을 잃어서 짜증도 났지만

전등사도 보았고 고려왕릉도 보았다

그러면서 3구간도 끝냈다는거다

담주는 4,5구간을 한꺼번에 돌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