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들어와서 산행횟수가 아주 뜸해진거같다
지난주도 그냥넘기고
그렇다고 무얼 하는것도아닌데 예식장?
올들어 성벽에 관심이 많아졌다
약 10년전에 했던건데
북한산성 완주 다시한번 해보겠다고
그게 오늘이다
산성접근하려면 대동문 우리집에서 2시간이다
제일 빠른곳 경기도 효자원이다 거기서 30분이면
시구문네 갈수있다
배수진으로 차를 산성에 놓고 간다 중간에 포기하지못하게
그리고 효자원 큰길에서 골목길 민가 지나니
한창인 여름 망초가 나를 반긴다
그리고 둘레길과 겹치는곳
내가가는 원효봉이 1.6KM란다
지금시간이 8시10분이다
다시한번 원효봉 오르는 길을 쳐다보며
마음가짐을 다시한다
천천히가자고
지금은 기록이 아니고 완주가 목표라고
장마철 날씨가 보통이 아니다
땀이줄줄줄흐른다
그러나 어느새 시구문이라 부르는 서암문이다
서암문은 문자체가 장방형으로 되어있으나
돌을 깍아 홍예모양을 만들었다
특히 문입구가 "ㄱ"자모양으로 꺽여있어 침임하는 적을 측면에서도 방어할수있도록 되어있다
그리고 성내에서 발생되는 사망사고시 시체가나오는 문이라하여
시구문으로 잘 알려져있다
시구문에대한 설명이다
아치모양도 구조적으로 역활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돌을 깍아서 아치모양을 유지했다
상부 문짝을 걸었던 홈과 중간에 빗장을 걸었던 홈이있다
성내부에서 바라본 서암문 모습이다
제법 아치모양이 운치가있다
산아랫쪽 위치하여있어 전략적으로 중요한 문이었으것이다
그런 의미로 성곽은 상당히 튼튼한 모양으로 쌓여있다
바로 실망이되긴하지만
이제 흐르는땀을 정리하고 봅격적인 산행에 돌입한다
원효봉이 1Km이란다
축조당시 성곽일것이다
이부분은 여장이다 총안이 3개 뚫려있다
성곽위부분 적을 막기위해 쌓은 낮은 담이다 여자도 뛰어넘을수있다하여 여장이란다
상당히 부실하고 그나마도 훼손된곳이 많다
이렇게 여장은 생략되어있고 내부는 등산로가 되어있다
하지만 바깥쪽은 견실한 성곽으로 유지되어있다
시구문에서 원효사가는길은 이야기하기 싫다
끊임없는 고바위이다
날은 덥지요 습도는 높지요 아주 죽을 맛입니다
사람냄새가난다
원효암 재일먼저만나는 해우소
사람냄새를 만끽한다
원효암은 양옥집이다
역광이라 잘안보이지만 원효암이라는 현판은 무지한내가보아도 좋은글씨같다
성곽 담장이다
여장부분은 초라해도
성곽부분은 견실하다
역시 여장부분은 파손이 많이되었다
대동문쪽 화려한 여장을 본다면 복원된 여장은 사치같이 생각된다
원효봉 정상이 가까워오나보다
이바위만 올라도 전망이 좋았던 기억이있다
저기 건너편 의상봉이 보입니다
몇시간 후면 저봉우리에서 여기를 보겠지요
뿌뜻한 마음을가지고
정상부근입니다
성곽을 보전한 흔적이 보입니다
제대로복원한걸까요? 업그레이드 한건가요?
새삼 이번에는 그런생각이 듭니다 우리조상들 너무 미화시키는건아닌지?
미석이라하나요 여장의 지붕격입니다
복원한것도 대동문 쪽과는 차이가있어요
그곳은 지붕이 경사가 있던데 여기는 평평하지요
505미터 원효봉 정상에 올랐읍니다
바람 기대했는데 별로네요 덥기는 마찬가지
구름속 살짝보이는 백운대,만경대입니다
그리고 역시 의상봉이구요
원효봉 등정 기념 사진 찍읍니다
사실 너무더워 남들에게 부탁하는것도 부담되더라구요
내가가야할 봉우리들입니다
이제곧 차례로 정복할 것입니다
여기는 염초봉입니다
오늘은 갈수없는곳입니다
다시 복원한 성벽을 따라 북문을 향합니다
시구문에서 1시간만에 북문에 도착합니다
지도보다 20분 연착했군요
북문(北門)은 북한산성에 있는 문이다. 조선 시대 단위로 높이 11척, 너비 10척의 규모이다. 홍예문으로 지어졌으나
지금은 문루는 없으며 초석만 남아 있다
산성자체의 내부 간선도로에서 벋어나있어 실제 많이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북쪽문이라는 의미로 상징적인 문이었을것이다
북문에 대한 설명이다
천정이 뚫려있는 상태로 복원되지않았다
원효봉과 연결된 성곽이다
견실하고 섬세하게 축조되어있다
오늘 갈수없는곳 염초봉 방향이다
이곳의 성곽 역시 험한 능선으로 인하여 허술하게 쌓여있다
이 험한 곳을 따라 백운대까지 성벽이 생략 된곳이 많다
성곽을 따라간다면 등산로 없음이게겠만
우린 이미 결정했다 다시내려가서 우르기로
그래서 내려갑니다
그리고 산성 매표소와 갈리는 삼거리
계곡을 만나고 난 여기서 땀릉 닦읍니다
전에도 몇번 쉬어가던 곳입니다
오늘 산행초 코스를 머리속에 넣으며 이곳에서 이렇게하리라 맘먹은곳입니다
돈없어보이는 절 대동사 일주문입니다
이렇게라도 일주문을 만들어야겠지요
불심으로
그러나 여기부터 위문까지는 고통의 연속입니다
불가에 들어가는게 그리 쉽지않듯말이지요
몇번을 쉬어서 위문에 도착합니다
힘들게 힘들게 왔는데 지도에 있는 시간 90분에 딱 맞추었네요
성내부 아니지요 여기서는 바깥쪽이 되네요
백은데쪽으로 보는 성곽입니다
이쪽은 반대편 만경대 쪽 성곽이지요
위문은 정방형으로 무을 만들었읍니다
우리가 흔히 위문이라 하는데 정확한이름이 백운 봉암문이네요
위문이란 이름도 일본애들이 만들었다네요
어려워서 담에 또 기억할수 있을지?
힘들게 올라왔지만 내려가는건 어렵지 않겠지요?
서둘러 하산합니다
용암문을 향해서
그러나 내려가는것고 호락호락하진않지요
위문 목제 데크에서 오늘 오르지 못한 백운대 신령님께 인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담에 찾아뵙겠읍니다
내려가는길에 노적봉을 바라봅니다
저 바위산에도 사람이 붙어있네요
저긴 어떻게가야하지? 가보고 싶네요
쉽지않은 길이지요
그러나 너무나 눈에익은길이잔아요
날아왔다고 할까요
바위길 쇠줄잡고 기고 하여 용암문에 도착합니다
지도시간보다 많이 단축했읍니다
암문이 다 다른 설계로 되었지요
용암문은 도선사로 내려가는길입니다
원래 이름은 용암암문(龍巖暗門)이었다
나를 찍어줄사람이없어서
이렇게 했읍니다
용암문에는 특이하게 성곽과 여장사이에 눈썹이있지요
오래된 성곽에 새로 복원한 여장이 현대와 과거가 공존합니다
한 백년지나면 새것도 헌것과 조허를 이루겠지요
흡사 같은 시절에 태어난것같이
여기부터는 정말 좋은길입니다
눈에도 많이 익었구요
마주오시는 분들도 발걸음이 가볍지요?
아까 원효봉의 미석과 비교해보세요
이곳은 각도가 있잔아요
정말 불같이 달려 동장대에 달려왔읍니다
북한산성에는 이런 장대가 3곳있었답니다
동장대,북장대,남장대 지금은 동장대만이
오른쪽 능선 끝이 남장대 자리랍니다
아래 그림 참조하세요
여기봉우리 역시 제가 오늘 만나야할 봉우리들이 대다수입니다
동장대에대한 설명입니다
동장대에서 대동문은 정말 식은죽먹기이다
용암문에서부터 합쳐도 30분밖에 안걸렸다
출발전 생각한대로 여기서 밥을 먹을 예정이다
오늘 갑자기 나오느라 집에서는 방울도마도 뿐이고
출발전 사온 막걸리와 김밥2줄이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요즘 일이 잘안돼서 식욕도없는터인데도
밥을 먹고 주변을 둘러본다
대동문 여기는 정거장이다
참 많은사람도있고
공단직원도있다
요즘은 정거장에서 식사를 하나보다
식사중 막걸리는 기본이다
오늘산행 첫번째보는 대문 대동문이다
성의 동쪽을 상징하는 누각이있어 대자가 붙었다
지붕은 우진각 지붕으로 홍예위 누각은 연회장 같이 넓다
대동문(大東門)은 북한산성의 문으로, 초기의 이름은 소동문(小東門)이었다. 규모는
조선 시대 단위로 높이 9척, 너비 10척이다. 현재의 문루는 1993년도에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복원된 것이다
문내부에는 철문이 달려있다
물론 복원한것일것이다
북한산성은 만드는데 6개월밖에 안걸렸단다
임지왜란 병자호란을 거치고 임금이 이리저리 피낭다니다가
많이 혼났단다
그래서 서울성근처에 새로운성이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서 만들었단다
그런데 청나라에서 알면 못짓게 할까 빨리 빨리 만들었단다
그러니 속성으로 할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거치를수밖에 없었단다
대동문에대한 설명이다
너무 글씨가 작지요?
성밖에서본 대동문이다
문위 새로 복원한 돌들이 너무 티가난다
실제는 저리 정밀했을까?
북한산성은? 어쩌구 저쩌구 쓰영있는 안내판이다
너무작아 읽을수가 없네요
밥도먹고 날도 어두워지고있다
곧이라도 비가 내릴것 같다
출발한다
후반전을 위해서
참 낮익은 곳이다
우리집에서 출발하면 칼바위 넘어서 성곽으로 오는길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니 새롭다
반가운 마음으로 칼바위를 바라본다
잘있거라 칼바위야!
대동문에서 밥먹구 조끔걸어 30분 보국문이다
성벽으로 걸어서 가다가 아래 문짝을 보고 내려간다
보국문은 1711년 동쪽에있는 암문이라하여 동암문이라 불리어었다
그러나 아래 보국사가 창건되고는 보국문이 되었다
장방형문으로 작고 아담하다
암문내부는 문짝이 걸렸던 흔적들이있다
역시 여장부분은 복원되어 색갈이 다르다
보국문에대한 설명이다
그리고 대성문을 향한다
성벽쪽으로 가면 힘들꺼 같다 오르막이니깐
그래서 우회길을 택한다
대성문 오는길은 정말 힘들었다
조금 요령피울 생각으로 우회도로를 택했는데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있었다
겨우 내려오는 사람 짐작하고 돌아서 도착한다
1.5배는 더걸린것같다
대성문(大成門)은 보국문과 대남문 사이에 위치한 북한산성의 문으로, 초기의 이름은 대동문(大東門)이었다.
규모는 조선 시대 단위로 높이 13척, 너비 14척이다.
문루는 1990년대에 와서야 우진각 지붕 형태의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복원되었다.
대성문에 대한 설명이다
솔직히 읽을 생각은 없었고 사진찍어 읽어보려했는데
너무작아 못읽곘다
대성문은 경복궁에서 직선거리로 직행이란다
결국 왕이 오면 들어올수있는 문이란다
그래서 규모나 치장이 남다를 수 밖에는 없다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대남문은 300미터 밖에는 되지않는다
얼른가자
정말로 얼른 왔다
하늘은 어두워지고 멀리 천둥소리도 들린다
대남문(大南門)은 북한산성의 성문으로, 초기의 이름은 소남문(小南門)이었다.
규모는 조선 시대 단위로 높이 11척, 너비 11척이다. 현재의 문루는 복원된 것이다
대남문역사 문은 홍예로 되어있고
상부에 누각이 설치되어있다
누각은 복원되었다고합니다
이제 비가 제법 내리기 시작합니다
반바지에 티셔스이니 더젖어보아야 거기지만
여기서 잠시 고민을 해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 번개만 없다면 문제가 없을 듯하네요
대남문에 대한 설명도 읽어보고
1995년 복원 기념비도 확인하고
바로 이웃 청수동 암문으로 갑니다
시구문에서 위문사이 힘들었던것에 비하면
이곳은 문이 자주자주 있읍니다
역시 이래서 강남이 번화하는구나~~~?
가사당암문과 청수동암문이름이 바뀌었단다
원이름이 가사당암문(伽沙堂暗門)인 청수동암문(淸水洞暗門) 북한산성의 대남문과 부왕동암문 사이에 위치한 암문으로,
규모는 조선 시대 단위로 높이 7척, 너비 7척이다.
신기의 서계를 보면 가사봉은 그 아래 가사당암문이 있어 나한봉(현 715봉)을 가사봉이라 부르기도 했다
가사당암문의 가사당은 불교용어로 북한산성을 축성할 당시 문수(文殊)·승가(僧伽)·향림(香林) 등의 절이 있어
가사당여래불의 약자로 가사당암문이라 명명했다.
가사당여래불은 나무아미타불과 비슷한 뜻이 있다.
이 주문을 반복적으로 중얼거리면 복을 받는다고 한다
비가 제법 오기 시작합니다
산행보다는 비끈치기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지지요
지금 이암문은 암문이라기 보다는 동굴개념입니다
비를 피할수있ㄱ잔아요
잠시 망서렸지만 난 주저없이 출발합니다
조금 편안한길로 가려했어요
고만 그게 잘못되었읍니다
방향이 행군방향으로 가고있읍니다
30분은 알바 했읍니다
얼마나 아깝겠어요
어찌되었던 비 쫄딱 맞고 의상봉을 향해 갑니다
의상봉가는길은 그냥길이 아닙니다
바위길입니다
쇠줄도 잡고가야하고요
비가와서 미끄럽기도 합니다
혼자가니 어떻게되어도 돌봐 줄사람도없구요
그래도 산성이 이어지고있으니 길은 맞읍니다
이곳역시 여장은 거진 부서져 윤곽만 있읍니다
정말 복원한 성곽은 고증을 거쳐서 고대로 복원했을까?
이런 형태가 원래 모습이었를꺼라는 강한 생각이듭니다
그치요 차이가 나도 너무납니다
아무리 500년이 지났다한들
형태는 비슷해야 복원했다할수있지않을까요?
1시간10분이 걸렸지요
멀기도했지만 30분간의 알바가 나를 더욱지치게 했읍니다
몸은 온통 젖어서 몸에달라붙고
다리는 무겁읍니다
규모는 조선 시대 단위로 높이 9척, 너비 8척이다.
외부는 홍예 모양으로 만들었고,
내부에는 성의 바깥쪽으로 문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있다.
.
장방형의 다른 암문과 다르게
정면에는 홍예모양을 넣어 마감하였다
북한산성을 축성할 당시 남쪽은 대남문과 소남문, 암문을 하나씩 만들 계획이였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소남문(현 대남문)과 암문 2개(부왕동암문, 가사당암문)을 만들었다.
부왕동(扶王洞)은 증취봉 아래에서 발원하여 삼천사로 내려가는
계곡으로 예전에 이곳 삼천사에서 가까운 신혈사에서
임금(고려 현종)을 구한 적이 있다고 하여 왕을 도운 계곡이란 뜻으로 부왕동(扶王洞)이라 명명했다
제법 아치 모양으로 모양을 냈지요
초라한 성벽입니다
다 쓰러져가고 정말 주인없는 그런 성벽으로요
청수동암문(淸水洞暗門)은 북한산성의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에 위치한 암문으로,
현재는 가사당암문(伽沙堂暗門)으로 불린다. 규모는 조선 시대 단위로 높이 7척, 너비 7척이다.
청수동(淸水洞)은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에서 발원하여 백화사로 내려가는 계곡으로 지금은 중골로 부르고 있는
이 계곡은 북한산성을 축성할 당시 맑는 물이 흐르는 계곡이라는 의미로 붙혀졌다고 합니다
언제나 부러운 부부인듯한 사람들 비를 피하고있다
잠시망서린다
대서문만 만나면 12대문은 다 갔다온것이 된다
여기서 그냥 하산하여 중성문 거쳐 대서문을 갈것인가?
그험한 의상봉을 오르고 대서문을 갈 것인가를
중성문 쪽이 마음에갔지만 다리는 의상봉을 향한다
대서문(大西門)은 북한산성에 있는 성문이다. 조선 시대 단위로 높이 11척, 넓이 13척이며, 홍예문으로 만들었다.
북한산성에는 6개의 대문과 7개 암문 1개 수문이 설치되었는데, 그 중 대동문(현 대성문) 다음으로 규모가 큰 문이 대서문이다. 대서문은 의상봉과 수문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성내부로 통하는 주 출입구로 사용되고 있다. ‘북한지’에 의하면 문은 홍예(虹蜺)로 만들어졌고, 초루가 설치되었다. 현재 성문의 육축부는 폭 19m, 높이 6m, 문지폭 7.9m이다. 타원형 홍예 출입구는 높이 4m, 폭 3.3m 이다. 홍예 양쪽에는 문루의 배수시설로 짐승의 얼굴을 형상화한 누혈을 하나씩 설치하였다. 문의 바깥쪽 홍예 안쪽에는 문비를 달았던 원형의 돌확구멍과 장군목을 건너질렀던 방형 구멍이 남아있다. 육축은 3단의 기초석을 쌓아 평지를 조성한 후 8단을 석축하였으며, 그 위로 미석을 한줄로 놓고 여장을 설치하였다. 여장은 하나의 화강암을 깍아서 만들었으며, 그 가운데 20×30cm의 총안이 하나씩 뚫려있다. 육축부의 서쪽에는 성벽을 약간 밖으로 내어 쌓았다. 현재의 문루는 1950년대에 복원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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