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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8)2020.11.21. 강원도 평화누리 1-3( 화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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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누리길" 작년에 경기도 구간 12개코스를 끝낸적 있지요

서에서 동으로 국토를 횡단하는 것인데요

강원도구간이 연결이 안되어 있어서 멈추었었지요

강원도구간이 아직 완성이 안되었다는데요

성급한 사람들이 벌써 순례를 시작했지요

총20개구간에 약 350Km로 구성되어있다네요

벌써 2개구간은 지나갔어요

3번째구간인데요 해파랑길 47번과 같은 코스입니다

그런데 너무 짧지요

그래서 주최측에서 설악산 신선봉밑에 성인대를 추가했답니다

역시 멋진 곳이지요

2곳 모두 만족했어요

한마디로 " 참 좋았답니다"

먼저 평화누리길 1-3구간 입니다

가진항에서 시작되지요

공현진항 고성왕곡마을 송지호 봉수대해수욕장

그리고 삼포해수욕장에서 마무리합니다

참 짧지요? 

이코스는 올 신년 일출 보러 갔다온 코스입니다

그때는 한밤중에 걸어서 느낌은 다르지만

정말로 짧다고 느끼며 걸었는데

거리가 10.4Km나 되네요

중간에 송지호에서 회덥밥 먹고 왔는데도 

딱 3시간 소요했답니다

주최측에서 준시간보다 30분 단축했답니다

동해의 항구 거진항입니다

지금 시간 10:10 무척 빠르지요

요즘 멀리만 다녀서인지 새벽 같은 느낌입니다

조금은 쌀쌀한 느낌일꺼라 생각했는데

바람의 온도가 차갑지는 않지요

모처럼 바라보는 동해바다가 오길 잘했다는 느낌입니다 

요즘 열심히 따라다니고 있읍니다

건강을 위해서도, 기분 전환을 위해서도

무척 좋은 일입니다

계속 걑이해야지요

거진항의 뱃사람들이 무척 분주해보입니다

뭘잡아왔지?

확인해보니 오징어입니다

만선인지? 사람들 표정이 좋습니다

거진항을 훝어보고요

본연의 트랙킹으로 들어갑니다

이제 막 길을 들어서자 마자 반대쪽에서 오신분을 만납니다

생전 처음 보는 분인데요

우리를 알고있었고 만나리라 생각했다나요

역시 같은 색을가진 새끼리는 통한다고 할까요

수고하십니다!

무사히 하고자하시는 걸음 완성하세요

자 이제 우리의 시간입니다

먼저 바다를 바라봅니다

동해바다는 서해,남해와는 또 다르지요

물이 깨끗하고 멀리 보입니다

그곳을 조금 땡겨봅니다

물결이 좀 있네요

바다나 여자나 성깔이 좀 있어야 멋있어 보입니다

철책길입니다

주간은 필요없고요

야간 경계용이겠지요

언제 벋여야할지 모르겠읍니다

6.25도 벌써 70년 이나 되었는데요

아직도 언제일지 모으는 철조망입니다

단계가 있겠지요

뚜렸했던 철조망이

이렇게 흐리게 되었다가

맨눈으로 볼수있는 날이 있을까요?

모래밭에 멋진 바위가 나왔네요

일단 인증부터 하구요

그바위를 다시 그려봅니다

그리고 또 한참 걸어서

다시 항구로 들어섭니다

아마 공현진항일겁니다

입구에 수뭇개 바위라고 일출 명물 장소라지요

무슨말인지는 읽어보아도 금방 없어질 듯하구요

아까 모래밭에 있는 바위보다는 규모가 좀 커보이지요

 

다시 인증합니다

자세히 보세요 아까와 다른 바위입니다

더자세히 보시지요

공현진 앞바다입니다

그리고 그바위로부터 배를 보호해주는 등대입니다

외롭지요?

그래도 등대가 있어서 항구는 항구 같습니다

방파제와 연결된 스믓개 바위입니다

한장 더 인증하고요

바다를 지키는 조형물속에

스믓개바위를 넣어봅니다

그리고 우리가 왔다감을 이렇게 증명하지요

바다?

여러 생명이 공존하지요

이렇게 자기희생이 되는 모습을 보여야 또한 바다입니다

파아란 하늘과 너무도 잘어울리는 바다입니다

별로 한가한 공현진항 모습이구요

화장실로 예상되는 계시판이있는 건물입니다

이로인해 이곳이 공현진인줄 알지요

공현진을 나와서

이제 고성왕곡 마을로 향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은 해파랑길 47구간입니다

평화누리길이 여기에 편승해서 가기로 했겠지요

국도를 횡단해서 왕곡마을 가는 길로 접어 듭니다

마을 입구 저작거리입니다

일종의 주막이겠지요

너무 이른시간이고요

사실 별로 관심은 없었어요

여기부터가 왕곡마을 입니다

여기도 코로나때문에 근심이 여기저기보입니다

못오게하자니 경제가 문제고....

일단 왔다는 표시부터하구요

효자비를 잠깐보고요

마을로 들어가는것은 포기하고

빠른길을 택합니다

가보아야 한과 파는집만 들렀다 오는것이잔아요

그래도 민속마을

이곳은 사람이 사는곳이지요

막바지 감수확중입니다

한가진 마을길을 통과하면서

돌담길 

그리고 포즈

연꽃을 키워서 연못이라했는데

그연꽃이 모두 생명을 다했네요

연꽃의 희생으로 물은 맑아졌지요

마지막으로 마을 전체를 그려보고

왕곡마을을 떠납니다

잘가꾸어진 길을 따라 가면

철새의 고향 송지호가 나옵니다

길이 너무 좋지요

다시 국도와 나란히 가는길

정말 좋습니다

송림사이로 보이는 송지호

송지호의 주인인 철새들은 브이자를 그리며

먹이 활동 중이지요

상당히 긴 길이 이어지고

상징인 철새 관망 타워와 만납니다

많이 왔었서 방문은 생략합니다

그리고 또하나의 흔적을 남기고

단체사진도 찍었지요

한장더

옛날 이곳에는 동해북부선이 지나갔었나 봅니다

정말 철마는 달리고 싶습니다

흔적도 없어졌지만

기억을 되살리는...

 

다시 국도를 건너서

심층수 공장이지요

이곳을 지나면 송지호 해수욕장

지도상 섬이있는데

죽도라구요

저것인지? 그뒤 희미한 섬인지?

모래도 밟아 보아야지요

반대 방향으로도 한장더

그리고 조형물과도 한장 찍고

파도가 이제는 많이 거칠어 졌네요

거친 파도에서 한장더 남기고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의 메뉴로 점심을 해결합니다

물회? 회덥밥?

아무래도 물회는 추울듯해서

회덥밥을 먹었는데

회가 정말 많아요

탁월한 선택이었네요

날이 그리 맑지는 않아요

그리고 봉수대를 지나고

다시 이런 해변이 나타난 이곳은

삼포해변입니다

버스는 기다리고

시간은 적당하고

13구간 평화누리는 마칩니다

이제는 울산바위가 제대로 보이는 설악산 성인대로 갑니다

수바위가있읍니다

이곳에 절을 지었는데 산이 너무깊어서 신도들이 많지 않지요

공양이 문제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꿈속에서 커다란 바위를 알려 주었답니다

다음날 그곳에 가서 막대기로 똑똑 두드리니 쌀이나왔다지요

그래서 스님들이 공양을 안받아도 수행에 열중할수 있었다지요

그때부터 절이름이 벼 화(禾) 바위암(巖) 화암사라 했다네요

그 화암사, 수바위를 거쳐서 위로 약 1Km 올라가면

성인대라하는 선바위가있고요

운동장같이 평평한 바위가 있는곳이있지요

그곳에서는 울산바위가 선명하게 보인답니다

속초에서 미시령 터널 못미쳐서 세계잽버리수련장 쪽 으로 들어서면

화암사라는 절이 나옵니다

그화암사 주차장에서 시작합니다

쌀이 나온다는 수암을 지나고 약 1Km 헉헉 올라가면

선돌 2개 성인대가 나옵니다

그리고 왼쪽으로 더들어가면 넓찍한 바위와 전면 울산바위를 보고

더깊이 낙타바위보고

뒤돌아와서 백두대간 신선대 삼거리가 나오지요

거기서 우측으로 화암사로해서 원점으로 오지요

무척 짧다고 생각했는데

6.3Km입니다

2시간 30분 적당히 둘러올만합니다

금강산 화암사!

감히 금강산이란 표현을 했지요

여기서 보이는 신선봉은 금강산 줄기의 마지막 능선이랍니.

지금의 미시령옛길을 분기점으로 설악산과 금강산으로 나뉘는데

이곳에 위치한 신선봉이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첫 번째 봉우리  이고 화암사는 금강산 팔만구암자의

첫 번째 암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은 금강산 화암사입니다

금강사란 현판을 가진 사찰이 2개가 있지요

건봉사 그리고 화암사입니다

어째든 반가와서 사진 남깁니다

 

 

길가 왼쪽 거대한 바위가 쌀이 나온다는 수바위입니다

엄청 크게 보입니다

전면에 보이는 산이 금강산 상봉입니다

신선봉은 더 오른쪽에 있지요

이제 올라갈 때가 되었나 봅니다

수바위가 눈앞에있지요

숲길 안내도를 보고

수바위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그리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

수바위 바로 앞입니다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모델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단체사진으로 기념하구요

다시 출발하지요

멀어질수록

수바위가 잘보이지요

수바위 배경으로 모델 촬영한번

그리고

금강산을 바라봅니다

상봉 그리고 신선봉이지요

오늘 더웠나요?

진달래가 피여있네요

쉬엄쉬엄 등산을 하다 보니 한 시간 만에 신선대(성인대)에 도착했다. 아주 먼 옛날 천상의 신선들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곳이다.

아주 먼 옛날 '조'씨 성을 가진 나그네가 모닥불을 피우고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그 위기를 모면하고자 모닥불에 굽고 있던 조약돌을 호랑이 입에다 집어넣었는데, 호랑이가 고통을 참치 못하고 뒹굴다 돌만 뱉어버리고 죽어 그 돌의 흔적 일부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고 한다.

바위를 옆에서 보면 마치 거북이를 닮았는데, 거북 머리 부분이 미시령 도로 쪽으로 향해 지금도 기어가고 있으며, 바위 주변에는 성인이 서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자연의 신비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최고의 명당 북설악 신선대가 나온다. 울산바위가 지척이고

발아래 과거와 현재의 미시령길이 굽이굽이 휘어져 보인다.

넓은바위가 고래등처럼 펄쳐지고 낙타바위와 기암괴석이 우리를 반긴다.

이 넓은 바위가 성인대입니다

이곳은 홍길동이 구름 자가용을 타고와서

백운도사에게 각종 무술을 연마했던 장소라 생각되지요

혼자가 아니겠지요

활빈당이 모두와서 훌련을 받던곳이지요

일단은 우리눈을 압도한다

울산바우이지요

미시령 넘어가며 그져 금강산 일만 이천봉에 끼지못한 바위로만 생각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울산바위는 웅장을 넘어 감격 그자체입니다

 

그리고 보이는것은 왼쪽 하얀 바위는 달마봉이구요

중앙에 높은 봉우리 희미하지요 그곳은 화채봉입니다

그리고 설명이 필요없는 울산바위요

골자기가 설악산과 금강산의 경계입니다

하얀색으로 길이 보이지요

그 곳은 눈만 오면 헤메고 올랐던 기억이 있던 곳 미시령 길입니다

좌측은 황철봉 우측은 상봉이되네요

이곳 신선데의 또하나의; 명물이있지요

요앞 바위언덛에 우둘두둘 서있는 바위요

그이름 낙타바위입니다

보는각도에 따라 달라지는데요

앞쪽이 머리이고 뒤쪽 이 혹 달린 등입니다

기암들도 즐비합니다

이곳에서 바라본 속초시내이구요

수암입니다

위에서보니 아까의 위용은 좀 덜하네요

그리고 화암사이구요

화암사 남쪽 3지점, 신성봉 산허리에 돌출한 왕관모양의 바위 정상에는

항상 물이 마르지않는 길이1m둘레5m 크기의 웅덩이가 있어 신라 때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산중턱에 왕관모양 원형바위가 아름답게 비쳐지는데 수 암이라 불리는 이바위는

아들을 점지해주는 곳으로 알려져 신혼부부들의 중요한 참배처이기도 하단다.

가뭄을 당하면 웅덩이 물을 떠서 주위에 뿌리고 기우제를 올리면 비가 왔다고 전한다.

물수(), 바위의 생김이 뛰어나 빼어날 수()자로 보는 사람이 많다

 

아주 먼 옛날 천상의 신선들이 내려와 노닐었다는 일명 신선대(神仙臺) 성인바위는 앞으로 올 어진 이가

 '말바위' 거쳐 토성면 인흥리 주민들이 신성시 여기는 성황산에서 맥의 끝을 맺었다.

 

 아주 먼 옛날 "" 씨 성을 가진 나그네가 모닥불을 피우고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그 위기를 모면하고자,모닥불에 굽고 있던 조약돌을 호랑이 입에다 집어넣었고

이에 호랑이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뒹글다 돌만 뱉어 버리고 죽었다.

 

버린 돌의 흔적 일부가 아직까지 남아 있으며, 훗날 죽은 호랑이는 토성면 인흥리 주민들이

신성시 하는 성황산이 되었다는 전설이전해지고 있다.

 

 이 바위를 자세히 보면 거북이를 닮아 거북바위라 하며,

거북 머리가 미시령(해발 825m) 도로 쪽을 향해 지금도 기어가는 상을 하고 있으며,

바위 주변에는 성인이 서 있는 모습의 입석과 머리바위가 있어 세인들에게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옛날 화암사는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스님들이 시주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

어느 날 이 절에서 수행에 전념하고 있던 두 스님의 꿈에 백발노인이 동시에 나타났다.

발노인은 수바위에 있는 조그만 구멍을 알려주면서 끼니 때마다 그 구멍에 지팡이

를 대고 세 번을 흔들라고 했더니 두 사람 분의 쌀이 쏟아져 나왔다.

그 뒤 두 스님은 식량 걱정 없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었다.

몇 년이 지난 어느날 객승 한명이 찾아와 이 절 스님들은 시주를 받지 않고도

수 바위에서 나오는 쌀로 걱정없이 지낸다는 사실을  알고, 객승은 세 번 흔들어서

두사람 분의 쌀이 나온다면 여섯 번 흔들면 네사람 분의 쌀이 나온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다음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아침일찍 수바위로 달려가

지팡이를 넣고 여섯 번을 흔들었다

그러자 쌀이 나와야할 구멍에서는 엉뚱하게도 피가 나오는 것이었다. 

객승의 욕심 탓에 산신의 노여움을 샀던 것이었다. 그후 부터 수바위에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 전한다.

그리하여 그 후부터 '벼화()'자에 바위 암()’자를 써서 화암사(禾巖寺)라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