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드나드는 산’, ‘용이 머무는 산’,이라는 용문산의 원래 이름은 ‘미지산(彌智山)이랍니다.
’미지‘는 ’미리(彌里)의 옛 형태고,
‘미리’는 경상, 제주지방의 ‘용’의 방언이고 보면 용문산은 역시 용과 연관이 있었겠지요.
‘용’의 옛말인 ‘미르’와도 음운이 비슷하답니다.
즉 미지산이나 용문산이나 뜻에서 별 차이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미지산’에서 ‘용문산’으로 언제 바뀌어 불렀는지 정확치는 않으나
조선 태조 이성계가 용이 날개를 달고 드나드는 산이라 하여
‘용문산’이라 칭했다는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지요.
용문산(1157)은 가평 화악산(1468), 명지산(1253), 포천 국망봉(1167) 이어
경기도에서 네 번째 높은 산으로 산세가 웅장하고 고산다운 풍모로 경기의 상징이 되는 산입니다.
매주 금요일이면 산행에 대한 생각을 합니다
특히 요즘 같이 코르나가 극성을 떨고 산악회버스가 많이 취소되면 더그렇지요
산악회 사이트를 순례하다가 용문산 함왕봉 을 보았답니다
이름이 낮 설지요 검색해보니 몇번은 가보았던 곳이네요
그런데 갑자기 땡기네요 코스를 잡아봅니다
사나사에서 백운봉 그리고 다시 나와서 함왕봉
그리고 함왕봉에서 장군봉을 거쳐서 정상인 가섭봉
그리고 다시 함왕봉을 거쳐서 다른계곡으로 사나사로 하산하는 겁니다
최근 산행중 보다는 좀 거리가 되지요
무리일까? 했지만 오랜만에 산행다운 산행을 계획했지요
결국 계획대로 실행했읍니다
아직 더위가 다 가시지 않은 8월입니다
거기에 잦은 비로 습도 역시 굉장하지요
올라 가는 길은 그래도 조건은 좋았답니다
백운봉부터 내리는 비가 용문산 정상을 지나고 부터는 폭우가 되었지요
고전의 연속입니다
거리도 16Km가 넘었구요
시간도 어머어마하게 9시간이나 소요했답니다
지나고 나니 힘들었지만 모처럼 산행다운 산행을 했네요
오늘 아침부터 허리도 결리고 다리도 뻐근하고 몸이 천근만근이네요
08:30
사나사에서 한참 모자라는곳에 공영주차장이 있네요
예전에는 사나사까지 차를 가지고 갔었는데
동네도 많이 변했지요 팬션도 많고 사람도 이 사는것같네요
차를 더가지고 가는것이 민폐일수도 있겠다 해서 이곳에 주차합니다
다 알지만 안내도를 살짝 봅니다
그져 형식적으로 보고갑니다
마을 소개 안내도도 있읍니다
경기도 제1의 명산 용문산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맑은 물이 구슬과 같이 맑다고 하여
옥천(玉泉)이란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용문산에서 용자를 옥천에서 천자를 따서 용천리입니다
그만큼 물이 맑다는 뜻이겠지요
그물을 살리기위해서
길가로 데크도있습니다
그 넘어는 물가인가 봅니다
그 물을 보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할말이 많은 듯하지요
길가에 누리장꽃이 넘치 듯 피어 있지요
얼마있으면 까만 콩을 달고 있겠네요
이른 시간이지만
저와 같이 홀로 산을 찾는 사람도 보입니다
하지만 서로 아는 척은 하지 말기로 약속했나요
아무말 없이 앞으로만 갑니다
그 후는 전혀 볼수가 없네요
홤왕봉과 관계되는 기록인 듯합니다
우리는 한문에 약하니까
이것으로 대체하고 갑니다
사나사 가는길이 생각 외로 길지요
1KM는 확실히 넘는 듯합니다
아직은 시작이니까 즐기며 가야지요
길가의 아는 나무를 만납니다
인사해야지요 층층나무입니다
사나사?
이름이 그리 쉬운 말은 아니지요
자세한것은 절에 가서 확인하고요
의병들의 전투지였네요
의병은 승병이 었겠네요
우리나라 특히 조선은 스님들이 살렸다 해도 이의 없지요
그유명한 서산대사, 사명대사부터요
그의 후예들인가 봅니다
일주문은 정말 제대로 기억나는 곳인데
주차한곳에서부터 정말 먼곳에 있습니다
그나마도 단청을 한다고 포장으로 둘둘 둘러 싸 놓았지요
포장속 살펴보며 통과합니다
그리고 도착한 사나사입니다
사진에는 없지만 주차장에 차량이 많이 있네요
조금은 후회하비낟
여기까지 가져와도 되는것인데
적어도 왕복 2Km 이상은 그정도면 1시간정도? 세이브가 되는데
어쩌겠어요
사나사나 살펴 봅니다
노사나불 불사 권선문?
사나사라는 명칭은 노사나부처님의 약칭(사나 + 사=절)으로
불교의 삼신불(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보니불) 중의 한분입니다.
노사나불은 연화장세계의 교주로 자비와 지혜를 구족한 부처님 이시라지요.
사나사란 어원은 산스크리트어로, 원만구족 성취 의 뜻을 담고 있답니다.
사나사는 창건 당시 노사나불상과 오층석탑을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사나사에는 현재 노사나불상과 오층석탑은 현존하지 않지요.
140여칸으로 웅장했던 사나사 또한
그 원형을 찾기 어려워 중흥불사복원에 어려움이 있어 학계와 연구중에 있다 합니다.
현재 사나사에서는 노사나불 부처님을 봉안하고자 노사나불 불사가 한참 진행중입니다.
아래 권선문은 그말씀입니다
사나사는 신라말 대경대사가 신라 경명왕7년(923년) 그의 제자 용천스님과 함께 창건하였으며,
고려말 태고 보우스님이 140여칸의대가람으로 중창했다고 전합니다.
사나사는 임진왜란 선조41년에 한방손이, 정미을병때는 게헌스님 등이 왜구에 의해 불타버린 사찰을
중건 중수를 거듭해 왔으나. 당시의 당우는 찾아볼수가 없지요.
현재는 대적광전, 미타전(극락전), 삼성각, 함씨각, 일주문, 요사체 등이 있으며, 성보문화재로는
원증국사석종 부도(경기도 문화제 제72호), 원증국사석종비(경기도 문화제 제73호), 사나사 삼층석탑
(경기도 문화제 자료 제21호), 당산계불량비 주변의 검증되지않은 불교 유적지와 함왕성 등이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원증국사석종비(경기도 문화제 제73호)입니다
그냥 딱 보아도 굉장히 오래된 비석 같습니다
보통 종이에 쓴글은 100년을가고 철에 쓴 글씨는 500년을가고 돌에 쓴 글씨는 1000년을 간다고 하는데
비석이 이렇게 상한것은 처음 보겠습니다
고려말기 원증국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이라는데
약 700년 되었다는것이지요
글은 물론 돌자체도 많이 훼손되었네요
삼층석탑(경기도 문화제 자료 제21호)입니다
이역시 고려말 석탑이라 합니다
그리고 사나사는 주건물이 대웅전이 아닌 대적광전입니다
우리 나라 사찰에서는 선종(禪宗)의 영향을 받아 대광명전(大光明殿)
또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이라는 건물에 삼신불을 모시는 경우가 흔하답니다.
이 때 중앙의 본존은 비로자나불이며, 좌우에는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이
협시한다. 이렇게 삼신불을 모시면 그 앞에 수식어가 붙는 것이 보통인데,
청정법신(淸淨法身) 비로자나불, 원만보신(圓滿報身) 노사나불,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 석가모니불이 그것입니다.
또 사찰에 따라서는 삼신불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불을 더하여 오불을 모시기도 합니다.
주로 화엄사상을 중시하는 사찰에서 대적광전을 주 건물로 사용합니다
대적광전의 주불이신 비로자나불이시지요
그런데 이곳에는 좌우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네요
근대사의 굴욕의 역사인 고종 퇴위시절 의병을 이르켜 일본과 대항했던 의병의 본거지가
사나사 였다지요
또다른 사나사의 역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오랜 역사와
그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사나사입니다
저는 그냥 다녀가는것이고요
오늘 주 목적은 용문산입니다
용문산으로부터 흘러 내려온 맑은 물이 구슬과 같이 맑다고 하여
옥천(玉泉)이란 지명이 생겼다지요
그물입니다
오늘은 수량도 많아서 힘도 쎄보입니다
가는길에 지천으로 보이는 며느리 밑싸개(고마리)입니다
꽃아래 가지에 가시가 보이지요
나물케러 같이갔던 시어머니가 며누리 밑닦는 것을 이것을 꺽어서 주었답니다
옛날 사람들도 말만드는 것에는 재미가 많이 담겨있지요
그 며느리 밑싸개가 지천입니다
사나사를 지나고
이정표가 나오지요
계획이 백운봉 먼저입니다
오른쪽으로 턴합니다
개울을 건너고 나니
바로 또 이정표가 나옵니다
다시 백운봉입니다
4.36Km ?
조금 의심스럽긴 하지만 방향은 그리로 갑니다
바로 계곡을 한번더 횡단 하지요
우아! 무지 덥네요
하늘은 습기로 완전 덥혀있답니다
그래도 멋진 나무가 홀로가는 저에게
눈요기를 시켜주네요
나무 밑둥이입니다
충분히 비정도는 피할수 있는 크기입니다
들어가 볼까요?
혼자인데요 뭘 생략합니다
산행하는 동안 계속 물소리는 요란합니다
힘들고 덥고
정말 뭐할려고 이러는지?
이정표 하나를 만납니다
백운봉 1.65Km라 쓰여있지요
사질 100미터도 그리 의미는 없어요
지금은 너무나 힘들고 있습니다
절대로 쉬지않으면 갈수가 없네요
잠시 쉽니다
이제 2.04Km 백운봉 1.19Km 합해도 3.23Km인데요
아까 4.36Km는 이상한거지요
어째든 백운봉은 잡혔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상태가 많이 않좋습니다
한발짝도 갈수 있을까요?
일단 물도 먹고, 간식도 먹고 어째든 이난관을 헤쳐가야지요
그리고 올라가는길 약 400미터구간입니다
최악의 구간이지요
누가 힘드냐고 물어보는것은 아니지만
꽃이 눈에들어오면 대화를 합니다
모시대 꽃입니다
너 되게 이쁘다
먹을수 있나?
나 힘들어 죽겠어
그길이 얼마나 힘드냐구요?
전체가 지그재그로 되어있답니다
나만 힘든게 아니지요
또 대화 대상이 생겼네요
망태 버섯입니다
흰색만 먹을수있다는데
요즘 보이는것은 모두 노랑이입니다
드디어 하늘이 보입니다
저기가 백운봉은 아닐것이고
일단 올라가봅시다
삼거리입니다
600미터 백운봉 올라갔다가
다시 이리로 오라는거지요
일단 모든것 내려놓고 커다란 휴식을 취합니다
그리고 다시 출발합니다
백운봉을 향하여!
그리고 바로 이지요 삼거리가 나옵니다
형제우물 600미터 지점입니다
가볼수는멊겠네요
백운봉가는길도 험해서 이렇게 밧줄이 메어져 있기도하지만
아까에비하면 껌입니다
이정표가 있는데 별로 신경 안썼지요
700미터글자를 300미터로 수정해 놓았지만
맞지않을것으로 생각했지요
계단이 벌써 다왔나요?를 생각합니다
고개를 넘으니 또 계단이
그리고 또 계단이지요
그 700미터가 맞는가 봅니다
그계단을 넘었는데 아직도 봉우리가 보입니다
그리고 또 계단입니다
정말로 마지막 이겠지요
네정말로 마지막입니다
정상의 비석이 삐꼼히 보이네요
그 정상을 한분이 즐기고 계십니다
조금은 미안하지요
홀로 즐기시는데 방해가?
하지만 저도 여기까지 온 수고를 충분히 했지요
즐길 자격이 있답니다
셀카로
인증합니다
백두산에서가져온 돌이랍니다
통일암이라 세겨 놓았네요
역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긴 한데요....
백운봉하면 하얀구름 타고 내려 오는 백운도사가 생각 납니다
그 백운도사가홍길동이를 훈련시키는 장소 그곳이 있어야겠지요
산위 그런 장소가 필요해서 이렇게 데크로 만들어 놓았네요
그곳에서 무예는 아니고 주도를 느끼고 있읍니다
시원한 막걸리 한잔이 여지껏 힘들었던 피로를 풀어줍니다
몸은 아니더라도 마음은 홍길동이 된 기분입니다
정상을 다시 전망해보고요
구름속 백운봉을 다시한번 기려 봅니다
구름이 걷히기 시작하지요
그 걷힌 구름사이로 산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또 다른곳은 사람들의 삶이 보이기도 하지요
아직 오늘의 일정은 시작에 불구하지요
일정을 계속합니다
아까 700미터 이정표입니다
정말로 700미터는 아니고 300미터는 넘는듯합니다
그래서 GPS상에서 원으로 돌려봅니다
400미터로 인정합니다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그냥갈수 없네요
일단 배낭부터 보호합니다
비와 상관 없는듯 원추리가 화려한 모습으로 환영해주고 있지요
구름은 점점 농도가 짖어지고 있구요
앞에 봉우리는 빌듯 말듯입니다
그곳이 함왕봉?
길이 쉽지는 않네요
정면의 거칠은 바위를 타고 오르면 항왕봉일까요
가는길에 닭의장꽃이 지천인곳도 지나고
바위를 올라타고 오르니
예전에 전망대였으나
지금은 위험물이 되었네요
많이 위험합니다
그래도 전망대였을텐데
오늘은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그나마 조금기다리니
어느봉우리인지 모르겠으나
봉우리하나ㅏ가 히미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잠시후
너덜길이지요
그런데 이것이 성곽이라네요
조금만 더가보겠읍니다
이정표도 있구요
119 이정표는 정상이라 쓰여있지만
정상은 물론 아닙니다
그너덜이 제법 성곽같은 모양을 갖추고 있지요
함왕산성입니다
전설에는 성 밖 계곡 아래의 함공혈(咸公穴) 혹은 함왕굴(咸王窟)이라 부르는 바위굴에서
삼한 시대의 함씨대왕주악(周顎)이 태어나 성을 쌓고 웅거하였다가 멸망하였고,
그 자손들은 본관을 양근(楊根)으로 하였다 한다.
양근함씨인 고려 태조 때의 공신 함규(咸規)가 본향을 이곳으로 한 것과 관계된다합니다.
고려 후기 몽고군의 침입 때 부근의 주민들이 이곳에 피난하였으나,
1253년(고종 40)에 포위공격을 당하자 방호별감(防護別監) 윤춘(尹椿)이 나와서 항복하였고,
또 1291년(충렬왕 17)에 합단(哈丹)에게 함락된 바 있는 사실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답니다.
아직은 저나무사이로 보이는 봉우리가 함왕봉으로 추측합니다
거리가 좀 있지요
그리고 다시나타난 이정표
여기도 사나사 내려가는 삼거리입니다
이이정표 기둥에 써논 함왕봉이란 글씨가있습니다
이정도 왔을때 다들 힘들어서 함왕봉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같은가 봅니다
함왕봉을 만나야겠지요
참나무 꽃을 들어보셨나요
참나무에 붉은 꽃이 피어있답니다
꽃 맞지요?
사실은 충영이랍니다
벌레집이요
가 저기에 알을 낳으면 화학작용에의해 이렇게 꽃처럼 변한다네요
정말 꽃 같습니다 저는 참나무 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힘들여 올라왔네요
다시 만나는 이정표
여기는 함왕봉입니다
오늘 산행이 용문산이 된것응 바로 이 함왕봉 때문이지요
그런 기대와 달리 여기는 너무 초라합니다
그리고 빗발이 잦아지고 있네요
빨리 인증하고 정상을 다녀와야지요
약2시간후
다시 이곳으로 올것입니다
이제는 지치기도 많이지쳤구요
비도 적당히 내립니다
왜지간한것은 그냥 통과해야지요
힘은 없는데
길은 험하고
사람은 안보이고
안개가 가득하여
대낮인데도 귀신이 나올듯합니다
그러는 사이 600미터를 전진하여 장군봉에 도착했지요
그런데 왜? 장군봉?
장군처럼 생겼나요? 여기서 기도해서 장군이 많이 나왔나요?
알수가 없네요
그래서 제가 장군이 되기로 했읍니다
세상에서 제일 기운없는 장군이지요
그런데다 비까지오니
제일 불상한 장군이지요
비는 오는데
셀카로 사진 찍는 모습이 많이 애먹고 있답니다
이제 정상은 1.5km정도 남았답니다
열심히 갔다 다시 이리로 옵시다
용문산 정상가는길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간간히 초롱꽃이 반겨주고
끝무렵의 동자꽃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길도 가도 가도 끝이없으면 야속해지지요
이제 정말 체력이 바닥을 칠무렵 계단이 나왔답니다
이런날에도 정상을 밝고 하산하시는분들도 계시지요
정상 철망에 눈에 확띠는 리본도 있읍니다
그리본 뒤집어보았답니다
아 거기서 왔다갔구나
사실 정상을 조금더 가야한답니다
꽃들이 환영해주지요
이제 코너만 돌면 정상입니다
정상에서본 오늘의 한국은 깜깜합니다
안개정국이지요
나 때문에 더욱 그런가 봅니다
낮익은 정상이지요
용문산의 명물 은행나무 조형물과 이곳의 명칭인 가섭봉이 조형물 속에쓰여 있읍니다
가섭봉? 익숙한 단어가 아니지요?
‘가섭’은 부처님에게 염화시중의 미소를 보낸 ‘마하가섭’을 ‘가섭존자로 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마하가섭은 석가모니불의 십대제자 중 두타 제일이라했답니다
그위인 마하가섭에서 가섭을 따와 가섭봉이 되는것입니다
부처님보다는 은행이 우선입니다
작품이고요
기록할만한 은행입입니다
정상 전경을 남기며
이제 막 올라오신분에게
사진한장 부탁드립니다
담장을 뚫고나오는 으아리꽃 열매입니다
미장원안간 머리같지요
구름속 정상은 여기까지만
멀리서 천둥소리도들리고
하늘이 심상치 않네요
불이났게 하산합니다
지금시간은 3시가 넘었지요
하산거리가 거진 7Km에 달하는데
그래도 그 꽃을 볼여유가 아직은 있지요
지금길은 아까왔던길
중원산가는 삼거리입니다
갑자기 비가 쏟아 붓고있네요
우선 하산이 먼저입니다
엄청폭우속 뒤도 안보고하산합니다
이제 어느정도
고바위는 내려온듯합니다
여유를 가져볼까요?
하지만 정말 길지요
가도가도 ...
그래도 끝은 있습니다
하늘도 좋아졌고
지나온길을 만났지요
그리고 사나사입니다
마무리가 다되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