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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020.04.18.북한산성 13성문 종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침이 연이어 일어나

임금들이 이곳 저곳 피난다니며 수난을 당하자

한양성 근처에 성을 쌓자는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변자호란후 청나라와 맺은 정축약조에는

 ‘(조선은) 성지(城池)를 개축·신축하지 말 것’이라는 조항이 있어서...

마침 숙종 때 청나라로 부터  “해적 대비하라” 전갈이 있기에 

허락은 그렇고 급하게 6개월 만에 북한산성 쌓게 되었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강대국의 눈치를 보는 슬픈 현실입니다

그 북한산성은

총 12.7 KM 길이에 문이 14개 수문 2개 장대 3개로 이루어져있고

유사시 임금이 거처 할 수있는 행궁이 설치되었답니다.



오늘 산행은 될수 있는 대로 산성을 따라 한바퀴 돌면서

13개 성문을 인증하는 계획입니다

일단 고양시 효자동 동사무소 앞에서 지작합니다


차례로 서암문, 북문, 백운동 암문, 용암문,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

청수동암문, 부암동암문, 가사동암문, 중성문 그리고 대서문까지 13개문을

거쳐 왔답니다


알바도 했구요

워낙 장거리이므로 쉬기도 많이 했답니다

장장 16.5 Km 거리입니다

서울 근교 산행으로는 작은 거리가 아니지요

시간은 의미는 없지만 9시간 소요했답니다

항상  이코스를 시작할때 찾는곳이지요

효자동 주민센터에서 시작합니다

물론 그곳은 무료 주차가 가능한 곳입니다

그래서 더욱 선호하는 곳입니다

07:30 이 약속된 시간입니다



스님계의 라이벌이지요

"의상"과 "원효" 여기도 그분들이 계십니다

죄측이 원효봉 우측이 의상봉입니다

그들 출신을 같이 서민출신 원효는 둥글둥굴하고 왕족인 의상은 성깔있게 보이지요

오늘은 2산을 모두 다녀 올 생각입니다


우선은 먼저 다녀올 원효봉입니다

여기서는 백운대 보다도 더 높아보입니다

찻길 건너서 조경 공원을 지나면

만나는 북한산 둘레길과 교차점입니다

실제로 산행 시작점 이라는 말입니다

아침 일찍 만나는 산행은

정말 신선하지요

피톤치드가 팎팎 나오는 것 같읍니다

가볍게 가볍게 시작 합니다

서암문(시구문)이 보입니다

그 코너에는 현대식 성벽인 초소가 설치되어 있지요

산을 다니며 느끼는 것이지만

예전에 경계 요지는 현대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07:56

총 13개문중 첫번째문을 통과합니다

이제 부터 본격적인 성곽 투어가 시작됩니다

서쪽에 있는 암문이라서 서암문이구요


암문은 비상시 병기, 식량, 구원병의 통로로 문루가 없읍니다

특히 서암문은 성내에 생긴 시신을 내보내는 문이라 시구문(屍軀門)이라고도 합니다.

오늘 저와 동행하는 분입니다

이분은 13성문 종주를 처음이라 십니다

그래서 오늘 산행은 이분 위주로 진행합니다


이곳은 서암문 내부 모습입니다

ARCH 모양이 특이 하지요?

아치가 되다가 만 모습입니다

시체가 나가는문 그만큼 신경을 덜쓴 그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 서암문을 지나 이제 정상적인 성곽 투어입니다

이 길은 성곽을 따라 원효봉 까지 연결됩니다


원효? 둥그럽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알았는데

산행이  쉽지는 않읍니다

역시 내공은 필요한듯하네요

원효암이 보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쉬고 쉽다 했는데

잠시 구경도 하고 쉬어 가야지요

원효암 현판입니다

하얀바탕에 붓글씨체가 시원해 보입니다

단기 4294년 이면 2333을 빼면 1961년에 쓰인글이네요

이현판도 환갑이 다 되었네요

오늘의 모델이십니다

원효암 방문을  기념으로  한장합니다

언덕위에 만든 대웅보전입니다

원효암은 한국불교태고종에 속한다 합니다.

신라 때 원효(元曉)가 좌선하면서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조선 숙종 때 북한산성 축조에 동원된 승려들이 원효를 기리기 위하여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읍니다.

당우로는 대웅전과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특기할 만한 문화재는 없습니다.

산신각 근처의 바위에서는 석간수(石澗水)가 나오는데 뒷바위가 코끼리상을 하고 있고,

이 물은 그 앞가슴의 젖줄에 해당된다고 한다지요.

절에서 10분 가량 오르면 원효가 좌선하였다는 원효대가 있다고 합니다.


여기는 커다란 바위 절벽아래 석간수가 있는 곳이다

최근에 만들어 놓은 듯 부처님이 새 것이다

사방을 사천왕이 지키고

그 중앙에 부처님이 갓을 쓰고 계십니다

영감이 팍팍 올거 같지요?

다시 성곽을 따라 원효봉을 향합니다

보이시나요?

오른쪽 축대 같은 돌 옹벽이요

사실  산성은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지붕달리고 총구멍있는 것은 여장이라 한답니다

이곳은 원효봉의 상징이지요

전망 바위 입니다

항상 전망이 기대가 되는 곳이지요

백운대 망경대 인수봉 염초봉까지 쫙 보이지요

오른쪽 아침 해가 강렬하게 비주고 있어

더욱 힘이 나는 듯 합니다

그리고 맞은 편 능선입니다

문수봉에서 의상봉까지 오늘 다 가야 할 봉우리입니다

이 방향은 노고산이지요

124군부대 김신조 일당이 통과했던 곳

우리는  예비군 훈련받던 추억이 있던 곳입니다


그리고 오봉에서 부터 자운봉까지 도봉산도 선명하게 보입니다

전망 바위 정말 전망이 좋지요?

점망 바위를 지나면 성곽이 다시 나타납니다

이것은 여장이라는 것인데 아까 보았던 여장과는 엄청 좋아보이지요

몇년전 복원공사를 했는데 


이건 복원이 아니라 개축이지요

이제 원효봉 정상이 바로입니다


멀리서 보면 둥굴게 보이는 원효봉

이 넓찍한 바위 때문이 아닐까요

이른 아침 무척 한가해 보입니다

바위 넘어 앉아계신 2분이 여유로워 보입니다

08:44

원효봉 정상표지 입니다

원효봉은 특별한 정상석은 없읍니다


오늘의 모델이시지요

원효봉 정상에서 포즈를 취해 주시네요

네!  아주 좋습니다

원효봉에서본 북한산 정상들입니다

오른쪽부터 노적봉, 만경대 백은대 염초봉입니다

08:55

그리고 원효봉을 내려서면

바로 북문입니다

오늘 2번째 성문입니다

동서남북에 모두 문이 있지요

그 동서남북중 3개문은 앞에 대(大)가 붙어 있는데

북문은 그냥 북문이네여

문루가 없어서 인가요?

문의 흔적으로보면

예전에 누각이 있었던 문 같은데

보수를 안하고 그대로 놓았으니

좀 썰렁합니다

북문은 원래 문루가 있었다지요

영조임금때 그만 미친 사람이 방화하여 문루가 무너 졌답니다

그리고 문루를 다시세우려 자재를 수급하였으나

당시 암문이었던 남문을 임금이 다녀가면서

문루를 올리게되고

북문용 자재를 남문에 사용하여 아직까지도 문루가 없는 상태이 랍니다

다음 문을 향해가야지요

성곽을 따라 가려면 북문에서 염초봉 방향으로 가야 하지만

그곳은 위험 등산로 입니다

그래서 대서문에서 연결되는 등산로로 다시 내려 섭니다

가는길에 운주사가 있읍니다

물론 운주사는 북문을 관리하던 사찰입니다

이리로 가도 지름길이 있을 듯한데요

자신이 없어서 그냥 등산로 따라 갑니다

사진에 보이는 돌기둥은 운주사 에서 세운 돌장승입니다

이제 정상 백운대로가는 등산로를 만납니다

여기부터 약 2Km는 정말 쉽지 않은 길이지요

설악산 오색에 견줄만한 험한 길입니다

가는길에 왼쪽 대동사 입니다

일주문이 특이해서 늘 보고가던 사찰입니다

오늘은 대동사가 꽃속에 묻혀있네요

대동사 지나서

쉴곳을 찾았지요

많이 와서 익숙한 듯한 길이지만

산길은 항상 변하는 것 같지요

같은 듯 다르고 다른듯 같게 보입니다

눈에 익은 쉼터에서 술 딱 한잔 하고 갑니다



알고 가고 있긴 하지만

정말 힘들지요

그래도 올라서서 뒤돌아 보면 대견합니다

이제 용암문에서 오는 계단을 만났지요

기다리던 계단이긴 하지만 이 계단도 만만하지는 않지요

어째든 저계단만 통과하면 위문 (백운봉암문)입니다



10:12

북문에서부터 1시간 20분이 소요했읍니다

많이 걸렸네요

하지만 여기를 지나면 그리 힘든 구간은 없지요

그래서 여기가 희망봉입니다

백운봉과 만경봉사이에 위치해있다 해서 백운봉 암문이라 했었는데

지금은 백운동 암문이 정식 표기인 듯 합니다

일제시대 때 일본군이 북한산성에 주둔하면서

독립군을 통제하기위해 서울로 가는 사람을 검문하기 위해서

위문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어 오랬동안  통용되고 있었답니다.

당연히 백운봉암문으로 불려야 합니다

백운동 암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백운대를 가는 길입니다

오늘은 목적이 성곽 일주이니 백운대는 생략합니다

오늘에 모델 3번째 문 백운동암문을 인증하셔야지요

올라오는길 힘드셨지요

고생하셨습니다

좀 쉬었다 갑시다

이제 다시 성곽길 순례를 계속해야지요

오늘 가지못한 백운대 정상을 조망하며 용암문으로 향합니다

잠시 온길로 되돌아 온후에

왼쪽으로 향합니다

이제부터는 비교적 수월합니다

사실 이길도 쉬운길이 아니었는데 몇년전부터

위험구간에 데크와 계단을 많이 설치해서

위험성은 사라지고 수월해 졌지요

오늘 날이 너무 좋지요

오늘의 모델 백운대 정상에 넣어 드렸답니다

그리고 위에서보는 원효와 의상이구요

그리고 또 다른 암봉인 노적봉입니다

사실 북한산 봉우리 중에서 한번도 못가본 봉우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노적봉 입구입니다

오늘 이분을 위해 봉사하기로 했지요

물론 봉우리도 남겨 드려야겠지요

노적봉을 지나면 용암문 입니다

그리로 가는길은 어렵지 않지요

개인적으로 이길은 단풍이 한창일때 좋았던 기억이있네요


10:43

4번쩨 문 인증입니다

백운동암문에서 딱 30분 소요했읍니다

안전시설물이 없을때는 상당히 시간이 소요 했던 구간이었는데

지금은 더 빨리 올수도 있답니다

용암문은 바로위 용암봉에서 이름이 유래 되었지요

동장대로 가는 길에 있는 용암사에서 관리했던 문입니다

이문을 통해서 내려가면 도선사가 나옵니다

4번째문 인증이지요

왠지 조금은 지쳐 보이네요

13개중 이제 겨우 4번째인데요

사람은 지쳐보이지만

계절은 봄입니다

진달래가 퍼드러지게 피어있지요

우리의 종주를 환영해주는듯합니다

그리고 다음은 동장대로 가는길입니다

가다가 오른쪽 대피소 건물이있읍니다

그 건물 앞에 돌무더기가 있지요

원래 이곳은 용암문을 관리하던 용암사가 있던 자리입니다

그 용암사의 석탑이 무너져 이렇게 방치되어 있는것입니다


다시 동장대를 향하며서

점점 진달래의 농도가 찐해집니다

꽃과 신사라할까요

멋지게 한장 남겨보네요

동장대가 보이지요

숙종은 행궁에 들른 뒤, 동장대로 향했다.

19세기 말에 허물어진 것으로 보이는 동장대는 복원하려고 해도 ‘모델’이 없었다.

그래서 수원 화성의 서장대를 본 따 서울 600주년 기념으로 1991년에 복원했다.

편액은 조순 당시 서울 시장이 썼다.

장대는 장수가 전쟁을 지휘하는 장소다

그러므로 성이 잘보이는 곳에 설치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곳 동장대도 그랬다

이곳에서보면 산성에 모든곳이 보이는 듯하다

북한산성에는 북장대, 남장대와 함께 3개의 장대가 있었으나

모두 위치만 확이되고있다


동장대를 지나서

1월1일 일출 행사를 진행하는 시담봉을 거쳐서

대동문으로 내려온다

11:47

5번째 문인 대동문에 도착한다

용암문에서 1시간정도 소요했지요

조금 많이 걸렸지요

동장대에서 아침 먹고 동장대 시담봉을 오르고 내리니

조금 더 걸렸나봅니다


초기의 이름은 소동문(小東門)이었다.

소동문이라면 문루가 없었다는  뜻 일것이다

산성 준공후 숙종이 다녀간후 문루를 증축하여 대동문이 되었을것으로 예측된다 

현재의 문루는 1993년도에  복원된 것이다

현재의 대동문은 대형 야외식당이다

수많은 등산객이 찾는 북한산 이곳 대동문에 잠시 쉬어가면서

식사도하고 휴식도 취하는 곳이다

그만큼 넓은 광장으로 이루어져있다

대동문을 지나면 보국문을 향한다

보국문가기전에 왼 쪽으로 능선이 하나 있다

칼바위능선이다

나에게는 정말 익숙한 곳이다

우리집에서 출발하면 이쪽으로 올수있어 아주 자주 오르는 코스 이기때문이다

사진은 칼바위 정상입니다

잠시 꽃속에 보이는 백운대를 조망해봅니다

삼각산이라 불리는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하나의 봉우리 처럼

진달래속에 피어있읍니다

이제 보국문에 다가왔읍니다

성곽으로 연결된 이길

움푹들어간곳에 당연히 암문정도 있을것 같지 않읍니까?

12:00

정확하게 13분 소요했읍니다

6번째 문 인증이지요

이 방향에는 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진행이 빠릅니다


북한산성 축조 후 동쪽에 있는 암문이란 뜻으로 동암문이라 불리었으나

아래 이문의 관리 사찰인 보국사를 창건한 이후 현재까지 보국문이라 불리게 되었답니다.

아직까지 보국문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네요

보국문을 지나면서 성곽이 꼬리같이 삐죽 튀어나온곳이있다

이것을 치성이라 불리우는데

전략적으로 아주 유용한곳이랍니다

일반적은 성은 평평하므로 전면으로만 적을 볼수있지만

치성인경우 3면에서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수 있는 장점이있지요

특히 이고 치성은 높은곳에 위치해서

전망도 좋은곳입니다

이곳 치성에서 바라본 북한산입니다

정말 복받은 날씨와함께 멋진 풍경을 만들었습니다

원효봉 노적봉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그리고 인수봉까지 다 들여다 보이지요

그 치성에서

우리의 모델이 또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방향입니다

다음은 대성문 대남문 나한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입니다

능선을 따라 성곽이 쭉 연결된 것이 보이지요

사실 아름답다기 보다는 저 성곽을 건설한 사람들의 노고가 보이네요

어쩌면 그냥 보고 즐길 수만 은 없지요


여기서 모델이  한번 더

직업 의식을 발휘합니다

포즈 취하면 눌러야 하지요

12:23

7번째 문 대성문입니다

23분 소요했지요

거리도 짧아졌지만 사람도 많구요

시간이 단축되지는 않지요

점점 지쳐가기도 하나봅니다

대성문은

대(大)자가 들어간 대문이지요

문루가 있다는 말입니다

앞에 퍼드러지게 피어있는 봄꽃이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입니다

대성문은 북한산성의 대문이었다지요

그래서 숙종의 아들 영조가 이곳을 찾았을때 들어 왔던 문이랍니다

영조가 이문으로 들어와서 임시 궁궐인 행궁에 들어가서

돌아가신 아버지 숙종의이 쓰던 방석을 보고 눈물을 흘렸답니다

그 후 대성문은 문을 닫아 버리고

이문  옆에 있는 대남문(당시는 소남문)을 정문으로 승격시켰답니다


12:34

10분이나 걸렸나

바로 옆입니다

그런데 공사중입니다

소남문이었다지요

하지만 영조가 다녀간후 대남문으로 승격된 남문인데요

마침 북문이 불이나 소실되고 다시 복원하고져 자재를 준비하고 있었답니다

그때 영조가 북문에 사용할 재목과 문루를 사용하여 대남문이 됩니다

그러면서 북문은 현재까지도 문루없이 북풍을 그대로 맞고 있답니다

더 멋진 대남문으로 재 탄생하기를 기원합니다

대남문에서 바라본 문수봉이구요

하늘이 정말 좋습니다

잠시 대남문아래 있는

문수사를 찾읍니다

문수사는 대남문을 관리하는 사찰이지요

그래서 대남문을 문수문이라 부르기도 한답니다

입구에

아주 순수하게 나무아미타불이 쓰여있네요

꼭 문패인들 합니다

문수사는 중앙에 대웅전이 있읍니다

하지만 절 이름이 문수사 이잔아요

문수사는 당연히 문수전이 주연이 되지 않을까요


문수사는 고려예종4년(1109)에 대감탄연국사께서 문수암(文殊庵)이라고 하고

천연동굴을 문수굴이라 명명하여 개산하신 이래로 수많은 고승대덕의 주석처로서
또한 조선조 암행어사 박문수,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영험 도량으로서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나누신 곳입니다. 
당연히 천연동굴 사당인 문수전이 주인공이지요


문수전 내부입니다

천연동굴속에 문수보살이 중앙에 위치해 계십니다

문수보살은 석가여래() 왼편에서 모시고 있는,

 지혜 맡아보는 보살이시지요

문수 보살하면 오대산 상원사인데요 이곳 보살님도

많은 보은을 나누신것으로 유명하답니다

주변 경관 또한 멋진곳입니다

문수사 뒷편은 역시 문수봉이 지키고 있네요



대남문 인증을 못하셨지요

이제 이증하고 청수 동암문으로 향합니다

문수사 바로 위가 문수봉입니다

이 문수봉 때문에 문수사도 있구요

현재 대남문인 문수문이란 이름도 얻었겠지요

문수봉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아까 문수사에서 바라보았던 바위입니다

이번에는 위에서 아래를 봅니다

문수사 모습이구요

보현봉입니다

원효 의상이 스님계의 라이벌이라면

문수, 보현이 보살계의 라이벌이지요

우측 이곳이 문수봉

죄측 저곳이 볼현봉입니다


보현봉에서

오늘 원정대 단체사진을 처음 박아봅니다

그리고 사진 우측

높은 바위봉우리가 보이지요

사실 문수봉은 저곳입니다

위험하니까 이곳에 정상표시를 해 놓은것이지요

이곳 문수봉은 왼쪽으로가면 비봉으로 가는길이구요

우리는 오른쪽으로 성곽을 따라갑니다


그 위험한 봉우리에

사람들이 꽤 올라가 계시네요

13:20

9번째 문인 청수동암문입니다

42분 소요했지요

문수사 둘러 참배를 하고 왔기에 시간은 의미가 없습니다


나월봉과 문수봉 사이의 고갯마루에 위치해 있다. 

 탕춘대성과 비봉에서 성 안쪽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했다.

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때로는 구원병의 출입로로 활용된 일종의 비상출입구이다.

이름은 정릉의 청수동 근처에 있어서 청수동 암문이라 했다지요



청수동암문은 여느 암문과 마찬가지로 성문 상부에 문루(門樓)는 마련하지 않았다.

성문 양쪽은 장대석으로 쌓아올리고, 그 위 천장 부분은 장대석 여러 매를 걸쳐 만들었다.

이런 양식의 성문을 아치 모양의 홍예식과 구분하여 평거식(平据式)이라 부른다. 

원래 문짝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문짝을 달았던 원형의 지도릿돌과 일반문의 빗장에 해당되는 장군목을 걸었던 방형 구멍이 남아 있다.

부암동암문으로 가는길은 무척 험한길입니다

나한봉 나월봉을 지나야 하기도 합니다

이곳은 성랑지가 있던곳이랍니다

북한산성에는 수만은 성랑지가 있었는데 지금 곳곳에 발굴작업이 한창입니다

이곳도 발굴 작업 중이지요


가끔 길을 헷갈리기도 하는곳이지요

우리는 의상봉을 보고갑니다

정말 험한길입니다

좋은길 나두고 왜 이런길을 가야하는지

생각해봅니다

저멀리 나한봉이 보입니다

슬쩍 뒤를 한번 돌아봅니다

이것은 힘들다는것이지요

또 다른이유는 나 참대단하네 하고 자찬하는것 이구요

나한봉입니다

봉우리 마다 이름이있지요

그런데 봉우리 이름이 절간의 건물이름 같지 않나요?

성벽을 만들고 관리한사람들이 대부분 스님들이 했다합니다

스님들의 신분은 승병이었던 것이지요

승병도 군인이니 지휘계통이 있어야하고

그러다보니 명칭이 있어야하는데 스님들이 아는것은 역시 불교 아니겠어요

그래서 이름이 온통 불교색을 띠고 있지요

나한봉도 전망이 끝내주지요

전면이 비봉 능선입니다



그리고 더멀리 서울시내가 한눈에 보입니다

멀리 남산 타워도 보이지요

다음 목적지 부암동 암문을 가는길은 험하기 끝판입니다

여기저기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반대로 올라오시는 분도 많습니다

우린 서로를 부러워하고 진행하고 있네요

이험한길에도

성벽은 있구요

이것은 그당시 여장입니다

오래되서 무너지기도 했지만

지금 복원한것과는 상대가 안되지요

하지만 항상 그런길만 있는것은 아니지요

이런 좋은길도 있답니다

14:02

10번째문인 부암동암문입니다

40분 소요 했읍니다

오는길이 워낙 험해서 빨리 올필요가 없지요

안전이 우선입니다

부암동 암문도

종로구 부암동 즉 붙임바위가있는

동네 이름을 따서 부암동 암문이라 이름을 붙였답니다

부암동 암문도 어느 암문과 같이 비밀스러운 문으로

비상 식량 및 연락을 위하여 설치되었음니다

이암문의 형태는 돌을 아치 모양으로 깍아서

올려 놓은 형태입니다

자 이제 힘은 점점 지쳐가고


능선에 있는 마지막 문인 가사당 암문을 향합니다

여기서 가사당 암문을 지나 의상봉을 넘어 대서문으로 갈것인지

13성문을 가기위해 가사당 암문에서 중성문으로 가야하나?

결론은 가사당문에서 의상봉을 밟고 다시 가사당문으로 해서

중성문으로 가고 그리고 대서문에서 13개 인증하고 마무리하는것으로 결정합니다


가는길에

천연 바위로된 성랑지를 만납니다

이구 멍속에서

군인들이 잠자고 밥먹고 했다는겁니다

정말 고생 많이 했겠네요

가사당암문 가는 길에는 봉우리를 몇개 넘어야합니다

길은 그리 편안하다고 볼수는 없구요

이미 지쳐있어서 모든것이 힘드네요

지금은 증취봉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왼쪽 성곽의 여장입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중장비도 없었구요 헬기도 없었는데

초라해 보여도 충분한 가치가 보입니다

이 철모같이 생긴 바위가

너무 지쳐서 올라가기가 쉽지않네요

너무 지쳐서 올라가기가 쉽지않네요

그 바위 옆에 넓찍한 마당바위가

쉼터를 만들어 주었지요

그곳에서 바라보는 성곽입니다

아름답지요

바위옆 증취봉 정상표지를 인증하고

다시 출발합니다

아참 모델분 인증은 해야지요

이제는 용혈봉으로 가야 하지요

가는길에 진달래가 탐스럽습니다

꽃속에 모델을 세웠답니다

꽃보다 남자입니다

어때요?

이곳에서는 비봉능선이 한눈에 보이네요

저기도 북한산의 한코스인데 가본지가 꽤 되었네요

자꾸 풍경이 사진속에 들어오는것은 왜인지 아시죠?

많이 힘들고 있답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멋있다 멋있다 하면서 잠시 쉬는것이지요



이제는 용혈봉입니다

아직 용출봉을 더 건너야 가사당암문이지여

빠리 출발합니다

이제 용출봉 가는길입니다

멋진 바위입니다

우주선?

아니면 도깨비 바위?

어째든 그냥 갈수 없어서 한장 남깁니다



그 바위 뒷면은 또 이런 모습이구요



이제 용출봉입니다

이제는 올라갈곳은 의상봉만 남앗지요

얼른 마무리합시다

15:02

11번째 성문입니다

꼬박 1시간 걸려씁니다

지친데다가 봉우리를 3개나 넘었으니 그정도 걸렸겠지요

이제 의상봉 갔다와서 인증하렵니다



가사당 암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나도 산을 다닐만큼 다녔는데

왜 이리 아는사람이 하나도 없지 했는데

드디어 아는분을 만났답니다

대성의 여전사들이요

이분들도 저와 똑같은 코스로 왔다 하네요

그런데 무려 1시간 30분이나 저보다 늦게 출발했답니다

완전 여전사들입니다

이런분들은 총들려서 휴전선을 지키게 해야하는데

국방부는 무엇으하는지

이분들은 의상봉을 안가신다지요

잠시 이별합니다

우리는 얼른 의상봉에

얼굴을 내밀고

다시 가사당암문으로 갑니다

내려오는 절벽에서

인증한번 더하고

다시 가사당 암문을 인증합니다

그리고 이제 중성문으로 향합니다

이제는 국녕사입니다

워낙 대형불상이라

원효봉에서도 크게보이는 불상입니다

언제부턴가 황금빛으로 반짝이는것이 보이기 시작했지요

국녕사는 가사당암문을 지키는 사찰이었지만

지금은 이불상이 더 유명합니다



앞으로 보아도 정말 웅장하지요

여기서 기도하면 모든 소원을 다 들어줄것 같습니다

15:58

12번째 대문 중성문입니다

의상봉다녀오고 중성문 모르고 대서문쪽으로 내려가다가

다시 되돌아 올랐지요그래서 1시간정도 소요 했읍니다

많이 지쳤지만 꼭 보고가겠다는 신념으로 알바를 극복했읍니다



중성문은 처음 축조당시에는 계획되어있지 않았답니다

북한산성을 완공하고 숙종이 행차하게 됩니다

대서문을 거쳐서 자신의 별궁인 행궁을 시찰하고

동장대를 거쳐 대동문을 통하여 왕궁으로 되돌아갑니다

이코스를 숙종의길이라 하지요

숙종의 길은 너무 평탄 하다고

그래서 적의 침입을 막기위하여 내성을 쌓으면서 중성문도 축조됩니다

중성문에는 좌측에 작은 문이 또하나 있는데

이문은 성안에서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나가는 시구문이구요

계곡으로는 수문도 있었다는데

지금은 소멸되어 없어졌다네요

12번째문 중성문을 찍고

이제 마지막문이 대서문을 향합니다

16:23

13번째 마지막 문이 대서문에 도착합니다

중성문에서 25분 소요했읍니다

정말 이제는 이를 악물고 했네요

정말 오랜만에 하는 장거리 산행입니다

목표를 가지고 하니 마칠수 있는것 같읍니다

이길은 숙종이 처음 행차했을때

처음 길을 닦았다 합니다

하지만 그 때는 오솔길 이었겠지요

1958년 이승만 대통령이 행차할때

당시 경기도 지사가 미군 중장비를 이용해서 넓게 만들었다합니다

대서문이라는 편액은 이승만이 쓴것이라네요 

어째든 암문도 임금이 지나가면 문루를 만들고 대자를 붙여 주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곳 대서문도 숙종이 지나가면서 문루가 생겼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오늘 13성문 종주를 마무리합니다

북한산을 정말 많이 왔었다는 친구였는데

13문 종주는 처음했다네요

그리고 이렇게 힘들줄 몰랐다합니다

어째든 목표를 가지고 시작하면

꼭 이룰수 있다는 또한번을 실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