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누리길 10코스 고랑포길이다.
고랑포는 한국전쟁 전까지 임진강에서 가장 번창했던 포구로 임진강 상권의 중심지였다지요.
개성이 가까우므로 개성과 서울 마포나루를 위시 경기북부지역의 농산물을 이 곳까지 배로 실어 교역을 했다지요
개성으로 보내는 물자가 부려지는 규모가 큰 나루로 이곳에는 당시 화신백화점이 있었으며
문산 인구의 3배가 넘는 번화한 곳으로 개성으로 걸어다니거나 자건거를 타고 다녔다고 합니다.
특히 고랑포는 물이 얕아서 고랑포 여울목으로 한국전쟁 때 인민군 탱크부대가 건넜고
1968년 북한 124군 소속 김신조 외 30명이 건너왔던 곳이기도 합니다.
고랑포는 역사적으로도 상징적인 것들이 여럿 있지요
신라 마지막왕인 경순왕의 릉이 있으며 고구려성인 호로고루 성이 있어 삼국시대에도
이곳이 격전지 임을 알수 있는 역사 경제적으로 상징이 될만한 곳입니다
하지만 평화누리길 10코스는 고랑포길이라 붙여져있는데
실제로는 고랑포를 지나지는 않지요
그랴서 오늘 일찍 끝내고 고랑포를 둘렀다 왔답니다
아래 사진은 호로보루성 앞에 설치된 북한에서 기증 받은 복원된 "광개토대왕비"입니다
10코스입니다
시작은 지난번 9코스 때 확인한 장남교 건너에서 합니다
일단 승용차를 사작 점 간이 주차장에 세워 놓았답니다
그리고 원당리를 지나고 사미천 징검다리를 건너지요
그리고 지루 할 만큼 뚝방 길을 위로 아래로 지속됩니다
많이 지루하다 할 때쯤에 학곡리 마을로 들어가서 고인돌 그리고 적성총을 만나고
다시 뚝방길을 지나고 도로를 통한후
철탑이 있는 산으로 오릅니다
그 산을 하산하면 다시 임진강을 만나고 전면의 숭의전에서 마무리 합니다
16.5Km를 걸었읍니다
그리 긴 거리는 아닌데 좀 힘들었다고 생각 됩니다
마지막에 산행이 있어서 그랬나요?
시간은 5시간 30분 소요했습니다
오늘은 정말 운이 좋았지요 국토종단팀의 버스가 우리를 도와 주었지요
정말 고맙게 차가 있는 곳 바로 앞까지 데려다 주었답니다
그래서 시간이 남아 이길의 주인공인 고랑포를 둘러서 왔답니다
고구려 호로보루성과 경순왕릉도 덤으로 다녀왔지요
09:18
날씨가 겨울입니다
차에서 내리니 쌀쌀하고요 바닥은 살짝 얼어 있어서 미끄럽습니다
차는 진행방향 앞에 움푹 들어간 곳에 세우고 왔읍니다
사실 그곳이 차를 세우는 곳인지? 자전거를 세우는곳인지?는 알수 없지만
차한대가 쏙 들어갑니다
같이 온 사모님 차 안에서 온도에 적응 하고있지요
그래서 셀카로 인증합니다
춥고 길은 살짝 어름이라서 미끄럽네요
그래서 오늘의 목표는 조심입니다
적응 끝난 사모님이 오쎴네요
스템프 인증 도와 주셨읍니다
요이 땅! 이지요
아 참 일본말은 안되는건데
바닥이 미끄럽네요 조심조심
큰길로 약 100미터 원당리로 꺽어는 삼거리에
이런 조형물이 있지요
꼬마전구 장식이 되어서 밤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읍니다
그리고 잔디 밭에는 이런 썰매도 있읍니다
이것 역시 야간용인 듯 합니다
이제 원당리도 들어가는 길입니다
바닥에 누리길 마크가 보입니다
이것은 평소에는 잘 안보였는데요
바닥이 이렇게 얼어있으니
조심조심 걷다 보니 보입니다
역시 오늘은 조심이 우선입니다
여기는 원당 2리입니다
이번 걷기 하면서 우리지명 참 모르는 곳이 많다고 인정합니다
지명을 알아도 방향 감감은 제로입니다
다행히 네비게이션과 누리길 운영하시는 분들의 수고로 어려움 없이 다니는 것 같읍니다
멀리있는 장남면 면사무소를 땡겨 봅니다
지난번 파평면 면사무소에 비하면
여기는 시골 냄새가 푹푹 나지요
역시 시골은 시골다워야지요?
누리길은 계속됩니다
계속해서 시골길이지요
거기에는 이런 마을도 보이지요
요즘은 PR시대이니까요
이런 방법으로 동네을 처음온 우리에게 이동네를 각인시켜줍니다
여전히 길이 미끄럽습니다
조심조심 한발 한발 걸어가고 있읍니다
멀리 타워 크레인?
이 시골에 어울리지는 않는데요
확대해 보니 번지 점프대 인듯하네요
우리의 길이 당연히 그리로 가는 줄알았답니다
그런데 길이 꺽기지요?
그리로 가도 거리상 문제가 없을텐데
왜? 이렇게 꺽힐것인데 뭐하러 이렇게 돌아갈까요?
누리길 초기에는 그리로 돌아 갔다지요
하지만 그곳이 개인 땅이라고 주인이 못 오게 했다네요
번지 점프대가 있다는것은 그만큼 경치가 좋다는것 일텐데
아쉽네요
한씨가원?
문패인가?
좀 특이하지요
젊은 농부들의 아이디어 인듯합니다
자기 자랑도되고
자기생산하는 농산물에 자부심도 생기고요
농부는 1차 산업이지요
여기에 가공(2차산업)과 판매(3차산업)까지 겸하는 것이네요
그러면 1+2+3= 6차 산업인가요?
한시간 쯤 전진했지요
그러나 아작 그늘진 곳은 얼음판입니다
역시 조심조심 입니다
사미천 캠핑장입니다
이곳은 사유지로 표시되어 있지요
우리가 가는길보다 저기 언덕위 캠핑장이 경치가 좋을듯한데요
사유지라서 갈수가 없네요
사미천? 앞에 시내물이 있지요
그물을 건너는 징검다리 그리고 뚝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입니다
빨리 건너고 싶네요 궁금도하구요
비가오면 위험하니 우회를 하라 쓰여있네요
지금은 아무 이상없는데
혹시 이글때문에 돌아서 오시는분들도 계실듯합니다
친절이 오히려 해가 될수도 있지요
정말 징검다리가
정말 잘만들어져있네요
이정도면 징검다리가 아니라 정상적인 다리이지요
거기에 댐역활도 합니다
상류쪽으로는 물길이 머물고
아래는 힘차게 흘러가지요
그 다리를 건너는 여인을 기념합니다
이양반 뭐라고 표현해야 좋아할까요?
임진강의 여인?
세상살이가 그렇듯이
물길도 어디에 있는냐에 따라 다르지요?
한끝차이로 여유있는 모습을 하기도하구요
또 한끝 차이로 바쁜 삶을 살아 갈수도 있읍니다
그 느긋함 삶을 기원하며
그물 속에 나를 넣어 봅니다
잰 걸음으로 바쁘게 살아 가는 그런 삶보다
상류와 같이 여유 있는 삶을 그려보지요
당연히 이계단을 올라야 하는줄 알았는데요
오른쪽 이길로 갑니다
GPX를 보니 이곳은 물길로 표시됩니다
아직 물을 건넌것이 아니랍니다
이곳은 사미천이 아니라 임진강 본류입니다
물이 많을 때는 이곳도 물이 흘렀다는 증거이지요
꼭 줄라기공원 같은 멋진 모습이네요
가까이보면 좀 아니지만
이런
이곳에는 또다른 삶이 있나 봅니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충분한 자기 삶을 가지겠지요
갈수록 더욱 멋진 길을 보여줍니다
나무가 푸르고 우거졌을 때가 상상되네요
홍수만 없다면 훌륭항 놀이터가 될수있지요
그길 왼쪽 뚝방이지요
처음에는 그뚝방 넘어가 임진강이겠거니 했었는데요
뚝방넘어는 그냥 논입니다
그럼 저 철조망은?
북한에서 비자 없이 오는 멧돼지요
돼지 열병 때문에 쳐논 것이랍니다
강원도에서 부터 쭉 쳐졌다고 하네요
군인들도 엄청 고생 했구요
돈두 엄청남 낭비이지요
줄라기공원은 지속되고
갑자기 넓은 들판이 나타납니다
전면 뚝방에 계단이있네요
이곳은 임진강과 지천인 사미천이 만나는 곳입니다
그 뚝방 아래 흐르는 물길이 사미천이지요
사미천 역시
징검다리로 연결되어있읍니다
길 정비하신 분들 정말 고생 많이 하셨네요
정말 불편없이 다니고 있읍니다
그만큼 편안하게 다리를 건너고요
계단위 뚝방에 쓰레기 봉지가 있지요
아까 부터 누군가가 쓰레기를 줍고계신 모습이 보였는데요
그 결과물인 듯 합니다
이분입니다
평화누리길 10구역 담당관 이시랍니다
10구간 까지오면서 담당하시는분은 처음 만났지요
정말 누리길에 대한 좋은 많은 말씀해주셨지요
정말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시설 점검도하시고
쓰레기 처리도 하시는 듯하네요
그져 고마울 따름입니다
저 아래 우리가 지나온길을
어떤 분들이 오고 계십니다
여기 기다려서 이분들 잠깐 만났읍니다
강원도 고성에서 부터 국토횡단 중이시랍니다
강원도쪽을 마스터하고
연천쪽 이어지려는 데 그 놈의 돼지열병 때문에
뛰어넘어서 행주산성 부터 이쪽으로 오고 계시답니다
다음은 다시 역고드름부터 시작하신다지요
이분들은 고맙게 숭의전에서 버스 태워주신 분들 이기도 합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지요
다시 사미천과 임진강 물길이 만나는 곳이구요
지금부터는 뚝방 길로 이어집니다
이길은 아주 지겹게 이어지지요
뚝방이 지루하다 생각할무렵
잠시 새터 마을로 나오게 되어있읍니다
멀리 어느 가문의 가족묘를 지나고요
다시 뚝방으로 진행합니다
이곳은 학곡리 임진강 뚝방입니다
뚝방아래는 고수부지입니다
엄청 큰 면적인데요
여기에 농사를 지으면 좋겠다 생각 했는데요
경작을 못한다는 경고판이 주기적으로 설치되어 있읍니다
뭔가 지방자치단체에서 꾸미고 계신듯합니다
또 다른 경고판이 있지요
공사중인듯 하기도한데요
이곳을 이벤트 광장으로 꾸밀 예정인가 봅니다
초화를 식재한다고 쓰여있지요
내년 이쁘게 꾸며논 이곳 보고싶네요
그리고 질퍽한 고수부지길을 지겹게 걸었답니다
아주 걷기 고약합니다
이럴 때는 아침같이 얼었으면 좋겠다 생각되네요
그리고 누리길은 마을로 들어섭니다
이곳은 학곡리 입니다
정겨운집에
사랑방쉼터라 쓰여 있는데
들어가 쉬고싶게 정겨워 보입니다
그런데 문이 잠겨 있읍니다
사람이라도 보이면?
그리고 바로 학곡리 고인돌이 보입니다
그냥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는 곳이지요
어떻게보면 보관이 좀 소홀한 느낌입니다
청동기 시대의 유물인데
전형적인 북방식 탁자형입니다
다른 고인돌보다도 더욱 탁자모양입니다
현무함을 사용했네요
이돌은 제주도 돌 아닌가요?
설명서에는 이지역 돌이라 쓰여있읍니다
고인돌을 보고요
마을길을 통과합니다
이곳마을도 벽화가 유행인듯하네요
담장마다 건물마다 벽화가 그려져 있지요
이집은 타조 농장이라 그려져 있는데요
타조를 볼수가 없네요
어느집 담장에 있는 장미꽃입니다
자연 냉동 건조입니다
피지도 못하고 얼어 죽었지요
죽어서 지만 이렇게라도 오래오래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이렇게 학곡리마을를 빠져 나갑니다
그리고 만나는곳이
연곡학곡리 적석총입니다
연곡은 군 이름이구오
학곡리은 이곳 리 이름입니다
적석은 돌을 쌓았다는 말이구요
총은 이름없는 무덤입니다
임금의 무덤은 릉이지요
하지만 주인을 알수없는 무덤은 총입니다
경주 천마총이 대표적인 무덤이지요
이 적석총은 임진강변 자연제방에 설치된 돌무지 무덤입니다
마귀할멈이 치마폭에 돌을 날러와 쌓았다는 전설이있다지요
신기하게 이 무덤은 백제 무덤 일 가능성이있다네요
무덤을 아래쪽에서 본 모습이구요
무덤주변에는
금줄이 설치되어 있네요
그러니 더욱 신선해 보입니다
길은 다시 뚝방으로 연결됩니다
길 왼쪽으로는 자유로 CC로 가는길 이구요
학곡교 건너고 길 오른쪽에 왠 해태상?
이집은 아주 잘꾸며논 카페입구입니다
멍청한 개가 얼마나 짖어 대는지
들어갈 마음을 잃었답니다
그래도 뒤문으로 해서 들어가 봅니다
오우~~!!!
멋진 전경입니다
임진강이 아래로 펼쳐저 있지요
당연히 기념해야지요
멋있게 한컷하구요
누리길은 계속됩니다
왠 첨성대가 있지요
식당의 조형물인가봅니다
식당 번창하세요
다시 리버사이드 펜션을 지나고
임무를 마친 허수아비들이 도열해서
저희를 반깁니다
인사를 해야지요
반갑습니다!
그리고 아스팔트 언덕을 올라서다가
철탑이보이는 이곳에서 산으로 들어섭니다
이곳은 구미리입니다
바리케이트가 가로 막고 있는데요
파이프를 제끼고 들어 오라는 안내가 되어있네요
설명대로하고 들어옵니다
위에 정자가 있지만 그냥 통과하구요
시간이 급해졌어요
버스를 타야 하잔아요
정자를 통과하니
이제 부터 힘든 산길로 접어들 었지요
제법 길게 진행됩니다
산정상에서 멀리 임진강 다리가 보이기도하구요
정상을 지나고
이제 하산합니다
이곳은 이미리라 쓰여있읍니다
강쪽으로
작은 전망대가 있네요
나무로 만들었는데
무척 위험해 보이네요
많이 낡았지요
하지만 한장 남깁니다
한장더요
이제 숭의전이 다와 가나 본데요
이곳은 공사중이라 길이 애메합니다
위험하기도 하구요
다사 조시조심 합니다
그리고 절토된 흙길을 따라 내려갑니다
그 아래는 임진강과
강과같이 사시는 분들이있구요
작은도서관도 있읍니다
문이잠긴 도서관
창문으로 안을 바라봅니다
장서가 꽤 많이있네요
누리길이 점점 마무리 되고있지요
숭의전을 찾아야 하는데
저기 임진강 절벽 위 기와집이 보이지요
경치 좋은 곳에 옛사람들이 집을 지었답니다
사실 그 때까지 숭의전이 무엇을 하는곳인지를 몰랐답니다
그저 경치 좋은 양반들이 즐기는 곳으로 만 생각했구요
이곳에서 바라 보는 느낌도 같았답니다
숭의전은 쉽게 허락하지 않나 봅니다
조금은 고생을 하고 오라하지요
헉헉 되며 마자막 힘을 다 소진합니다
숭의전 입구입니다
11코스 안내가 있지요
여기는 평화누리는 10코스는 끝났으니
새로운 11코스 영업을 하는듯 합니다
주변의 고목들이 이곳의 역사를 말해주는듯합니다
나는 아직 숭의전이 무엇이지 모르지요
서원인가?
일단 안내판으로 명칭과 용도를 파악합니다
숭의전은 고려시대 4대왕(태조, 현종, 문종, 원종)의 위패를 모셔 놓고
1년에 한번 씩 제사를 지내는곳이랍니다 곳이랍니다.
즉 조선으로 치면 종묘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문화해설을 부탁합니다
2명이라 좀 미안하긴 했지만
너무나 친절하게 해설에 응해주십니다
이쁘기도 하신데 말이지요
먼저 재실인 앙암재(仰巖齋)로 들어갑니다
앙암재라는 이름은 앙암사(仰巖寺)에서 나왔다.
앙암사는 원래 고려 태조인 왕건의 원찰이었다.
조선이 개국하면서 개경에 있던 종묘가 사라지고,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묘(廟)를 세우고,
정종때에는 고려 태조와 혜종·성종·현종·문종·원종(충경왕)·충렬왕·공민왕의 7왕을 제사지내고,
1423년(세종 5)과 1452년(문종 2)에 중건하였다
그곳에 태조, 현종, 문종, 원종 등 네 왕과 충신 16명을 배향하였다.
이처럼 앙암사가 숭의전으로 바뀌게 되는 과정에서 재실에 앙암재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라지요.
앙암재에는 현재 태조 왕건 동상 사진과 어필 복사본이 있습니다.
태조 왕건 사진은 2006년 국립박물관에서 전시했던 그 동상을 찍은 것이랍니다.
앙암재는 재실이지요
내부에 임금의 위패를 모신 이안청(移安廳), 공신의 위패를 모신 배신청(陪臣廳),
삼문만을 원래의 위치에 복원하여 있다고 했지만
버스 시간을 때문에 마음이 급해서
정말 들을 이야기가 많은데
해설사 선생님도 말씀이 빨라지시고
여기서 다음 11코스때 확인하는것으로 합니다
당연히 이쁜 해설사님과 사진한장 남겼지요
내려오는길 입구에 하마비가 있지요
당연히 말에서 내리는 곳이겠지요
여기부터는 두발로 와서 참배하라는
그리고 샘물이있구요
어수정이라 되어있읍니다
왕건이 고려를 세우기전 이곳에있던 앙암사에자주 둘렀는데
이곳에서 쉬어가며 물을 마셨답니다
그래서 임금이 물먹던 곳이라 해서 어수정이라합니다
이제는 버스를 기다려야 할 시간입니다
버스시간이 약10분 남았지요
버스정거장이 참으로 이쁘네요
숭의전 만큼이나
그런데요
아래 버스로 오신분들이요
중간중간 만났었는데요
우릴 태워주신답니다
빈자리가 많이있다구요
얼마나 고마운지요
심지어 압축공기로 신발 바닥의 흙까지 털어주십니다
따블 따따블로 고맙읍니다
아주 간단히 편안하게 출발지까지왔답니다
물론 시간도 많이 절약되었지요
본의 아니게 시간이 많이 남았지요
그래서 오늘의 제목 고랑포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이곳 고랑포에는 역사유적이 많이있지요
고구려의 성인 호로고루성, 신라 마지막왕인 경순왕의 릉있구요
경기북부 상업의 중심지인 고랑포마을이 있는 곳입니다
제일 먼저 고구려 호로고루를 방문합니다
이곳은 호로고루성과 전시관이있지요
그 전시관 입구에 커다란 비석이 보입니다
와~~~
광개토대왕비입니다
중국에 있어야할 광개토 대왕비가?
2002년 북한에서 모형으로 제작한 광개토대왕비를
우리나라에 제공했다 합니다
북에서온 선물이지요
그래도 만주벌판에나 가야 볼수있을것이라 생각했는데
모형이지만 볼수 있었다는게 뿌듯합니다
전시실을 들어갑니다
해설사분이 퇴근을 하셨네요
독학해야지요
호로고루의 어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답니다.
하나는 이 부근의 지형이 표주박(瓠) 또는 조롱박같이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을을 뜻하는 홀(忽: 호로)과 성을 뜻하는 고루(古壘)가 합쳐서 호로고루가 되었다는 것이입니.
이곳 호로고루는 당포성 은대리성과 함께 연천을 대표하는 3대 평지성이다.
호로고루가 있는 고랑포 지역이 이처럼 중요한 요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임진강변에서 걷거나 말을 타고 도강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랍니다.
전투에 있어서 식량 등 보급품은 주로 말로 운반되었기 때문에
호로고루는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지역이 될 수 밖에 없었다지요.
옛날 경주에서 평양으로 이어지는 지름길도 바로 이 길이었답니다.
그러므로 고려 초 경순왕도 개경에서 이 길을 통해 경주로 다녔다하지요
고구려 병사 모습입니다
키가 훨 크네요
우리 사모님과 비교도 안되겠지요
발판에 올라서서 그렇다네요
문무왕 2년(662년) 김유신은 소정방과 함께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한다.
그러나 군량이 부족할 뿐 아니라 군사가 피로하여 퇴각한다.
김유신 등은 돌아올 적에 밤새 행군하여 이곳 호로하를 지나게 되었다.
이때 고구려군이 신라군을 추격하여 공격을 했으나 호로하(瓠瀘河)에서 만나 크게 격파하였다고 되어 있다.
668년에는 고구려가 망하는데 고구려군이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곳이 호로하로 나온다.
호로고루는 고구려와 신라의 영토분쟁 시기의 전투지였다기보다는 고구려가 망하는 시점에 저항의 거점이었던 셈이다
호로성은
이렇게 부분부분 발굴한 흔적을 남겨 놓았답니다
넓직한 성안 모습이구요
성끝에
휴전선과 가장가까운곳에
망배단이 있네요
실향민의 자손인 저를 옷깃을 여미게 만듭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저곳은
아마 비무장 지대 일 듯합니다
성끝에서 바라본 성의 모습이구요
그 성에 족적을 남겨봅니다
그리고 번쩍 뛰어봅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요
다음은 경순왕릉입니다
어찌하여 여기에 능을 쎴나요
경주에서 한참 떨어진 이곳에 능을 만들었네요
신라 마지막 왕인 비운의 경순왕릉은 임진강 건너 개성과 거의 수평선상에 위치해 있다.
살아서도 견훤과 왕건에 휘둘리며 왕다운 왕의 행세도 못했을텐데
죽어서 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남북 분단의 현장에 몸을 묻어서
철장에 지뢰라는 표식을 달고 있지요
아직도 비운은 끝나지 않았답니다
경순왕은 “무고한 백성을 죽일 수 없다”하고, 왕건에게 항복, 재위 9년 만에 왕위에서 물러납니다
그리고 왕건의 휘하에 들어가 신하가 되고요,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다시 혼인하고 여생을 보냅니다.
경순왕은 항복한 지 43년 만인 고려 경종 3년(978) 세상을 떠나
경순(敬順)이란 시호를 받고 이곳에 묻혔다고 하네요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1746년 10월14일 장단에서 경순왕의 지석과 신도비가 발견되었다지요
그 후속 조치로 1747년 4월20일 경순왕의 묘를 수치(修治)한다.
여기서 수치란 고쳐 새롭게 하는 일을 말한다.
그리고 1748년 1월29일에는 고려 왕릉의 예에 준해서 경순왕릉에도 수총군(守塚軍) 5명을 두어 지키게 한다.
이렇게 해서 경순왕릉은 현재의 모습으로 유지 보존될 수 있었답니다
신도비로 알려진 하얀 비석이 보인다.
화강석을 깎아 만든 것으로 가운데 차돌이 드러나 있다.
그러나 1000년이 넘는 풍화로 인해 글씨를 거의 알아볼 수 없다.
전문가들에 의해 경순왕(敬順王), 김(金), 시월여친지국(十月輿櫬至國) 등의 글자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자세히보니 글씨는 모르겠구요
사람얼굴이 보이네요
누구의 얼굴일까요? 경순왕?
분위기가 경주에 있는 신라왕릉과도 서울 주변에 있는 조선왕릉과도 다르다.
수복방과 비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의 왕릉과 유사하다.
그것은 이 왕릉이 조선시대 개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은 1747년(영조 23)에 다시 세워진 묘비를 통해서 확인된다.
묘비의 앞면에는 '신라경순왕의 릉(新羅敬順王之陵)'이라는 7자가 분명하다.
이제 마지막 입니다
고랑포 역사 박물관입니다
입궁에 말한마리가 있지요
레크리스라는 군마입니다
6.25때 전격적인 공을 세웠던 군마라네요
그래서 이름도 있구요 계급도 있답니다
전시관을 둘러봅니다
입장료가 꽤되지요
딱 20일 차이로 활인을 받지 못했는데
둘러보니 전혀 아깝지 않읍니다
제일처음은 고랑포 포구를 누비고 다녔을 황포돗배의 모습이고요
고랑포가 번성했을때의 거리모습이 리얼하게 진열되어있읍니다
곳곳이 포토존으로 그냥가기도 애매하지요
모든가게가 우리 어렸을때를 연상시키네요
저두 생선가게에서
골러 골라를 외쳐보았답니다
그렇지요?
그배가 있어 고랑포도 있는것이지요
황포돗배도 있는것이고
그배가 있어 고랑포도 있는것이지요
약방 주인도 되어보고요
국밥집에서 국밥에 막걸리 한잔도 해보고
툇마루에서 간단한 식사도 해보았답니다
그러면서 전시실 관람을 마치고
체험전시실입니다
VR을 쓰고 행그라이더 체험을하는 모습입니다
진짜 하늘을 나는 기분이 납니다
나룻배의 노젖는 VR체험입니다
얼마나 노를 졌던지 팔이 뻐근합니다
그리고 124군부대 김신조가 넘어온곳도 이곳이라지요
이밖에도 총쏘는 체험 활쏘는체험등
첨단의 놀이기구가 많이있지요
전혀 돈이 안아깝습니다
아까다녀온 호로보루 성의 설명도 있네요
그외에도 어린이들이 좋아할 각종 도구들이 많이있답니다
보람된 하루 였읍니다
이제 오늘 고랑포길을 마칩니다
오늘 10코스 고랑포 길이데요
까딱했다면 실제 고랑포는 보지도 못하고 갈뻔했지요
임진강을 따라 걷는길
곳곳의 고인돌도있구요 왕건의 숭의전도 있구요
곳곳이 역사 현장이지요
그리고 또 같이 걸었던 국토횡단팀의 배려
덕분에 또 따로볼수있는 고구려, 신라의 모습들이요
정말 좋은 하루였읍니다
정말 보람된 하루 였습니다
고랑포 역사관을 나오면서
주변이 어두워 졌지요
저산넘어 북녁땅입니다
저쪽 땅을 볼때마다 항상 생각하는 말이 있지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구요
많이 가까워 진듯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북쪽 사람들은 입에 침을 줄줄 흘리는 이리인줄 알았잔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