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입니다
몇년 전이지요 영업을 하고 있는 후배가 속리산 갔다오면 기를 받아
영업 실적이 좋아진다는 업계의 소문이 있다구요. 데려가 달랍니다.
그래서 간단한 제수용품과 함께 둘이서 갔다 온적이있읍니다.
그 후 엄청난 영업 실적을 올리고 진급도 했다지요.
오늘 그 속리산을 갔답니다.
신라 선덕왕 시절에 진표율사가 김제 금산사로부터 이곳 속리산 법주사로 오게 되었습니다.
율사가 이곳에 오는 도중 들에서 밭을 갈던 소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율사를 맞이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짐승까지 저러한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참으로 존귀한 분일 것이다."하고
머리를 깎고 율사를 따라 입산수도하는 이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이 때부터 '속세를 떠난다'는 뜻으로 이 곳을 속리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합니다.
오늘은 GPX가 일하기가 싫은지 파업을 했지요
같이 산행한 기록을 몽땅 날려버렸답니다
할 수 없이 수동으로 지도를 만들어봅니다.
화북면 용유리 화북분소에서 시작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오송폭포 분소에서 시작하는 것이지요
좀 험하게 가려면 입구 장바위에서 시작해서 견훤산성을 통하여 가야하지만
주최측에서 조금 코스를 줄여 놓았네요
안내판이 문장대까지 3.3Km로 쓰여있읍니다
바로 시작점에 오송폭포를 둘렀다 갑니다.
그리고 문장대까지 바로 Gp~~
문장대 인증하고 속리산 주능선을 종주합니다
천왕봉까지
그리고 헬기장 에서 잠시 인원체크하고
장각폭포로 직행합니다
거리는 도상으로 14Km 입니다
오늘 날나라 산행 역사 탐방인 줄 알고 오셨잔아요
오늘 지대로 산행했지요
약 14KM 거리를 8시간 내외가 소요했답니다
버스로 들어올수 있는곳까지 올라왔답니다
버스 회차 주차장입니다
우릴 내려놓고 버스는 업어지고요
자연스래 화장실 앞에 모였답니다
왜냐구요?
오랫동안 왔으니 생리현상도 해결하고
또 오르는 계단도 옆에 있고
계단위에서 바라 본 모습이지요
대장의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지 도통 올라올 생각이 없네요
그러나 얼마나 있었겠어요
바로 올라옵니다
이지역에 우복동이란 마을이 있었다네요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에 보면
난세의 병화를 피하기 위해 가장 좋은 마을로 기록된 곳이
10곳 즉 십승지가 있다고 했읍니다.
그 중 한곳이 속리산 아래 우복동이란 곳이다.
우복동은 지형으리 모양이 소의 뱃속 모양으로
송아지가 어미 뱃속에서 자랄 만큼 평안하고
명당이란 이야기입니다
속리산 동남쪽 상주 화북면의 7개 동리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동네가 진짜 우복동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모든 정황을 종합해보면
상주시 화북면 이곳 근처로 추정됩니다..
이곳은 속리산(1058m), 청화산(984m), 도장산(828m)의 삼각형
꼭짓점으로 둘러싸인 분지이지요..
그만큼 산이 깊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도 농사 짓는데는 아무런 걱정이 없는 곳이기도 하지요
실제로 한국전쟁 당시 이곳에 피난을 온 사람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이 그살기 좋다는 우복동 지역입니다.
저기 멀리 속리산 정상부분이 보이지요
오늘 역사문화 탐방 주최자이신
전종현 세르파 이십니다
간단한 설명으로 오늘 역사문화 탐방이 시작됩니다
오늘 산행은 역사문화 탐방 생긴이래 가장 힘든 산행이지요
약 15Km 의 산길을 강행군 해야하지요
충분한 준비운동으로 불의의 사고를 예방해야합니다
멋있다기보단
섹시한 김대성 세르파이십니다
크게 대성 하실분이지요
아니 이미 대성하셨지요
체조를 끝내고 정상을 한번 봅니다
보고 가야 감을 잡지요
속리산이여 기다려라! 바로 만날겁니다
가는길에 오송폭포를 둘렀다 갈 것입니다
몇번 왔지만 바빴나요?
한번도 오송폭포를 본적 이 없었네요
한번 가보지 뭐~~~
큰 길에서 잠깐 좌측으로 들어섰는데
또 성불사 왼쪽으로 가야합니다
그리 멀지는 않네요
오송폭포에대한 설명입니다
설명 그대로입니다
더 추가할 역사도 없구요
15m 5단 폭포입니다
사실 이정도를 폭포라 하기에 좀 어색하네요
하지만 땅이 작은 우리나라는 이정도면
충분히 용이 놀다 갈만합니다
오늘 이곳에서
역사문화탐방 기념 하기로 했답니다
단체사진 입니다
이제부터 문장대까지는 오르기만 하면 됩니다
속리산은 육산이지요
그냥 이길이 대로면 좋겠읍니다
쉽지요
정면은 우리가 가는길이고요
왼쪽은 물소리 팍팍나는 계곡입니다
우리가 왔다고 환영의 목소리가 꽤 높게 울립니다
신기한 버섯이지요
일명 망태버섯입니다
역사문화탐방온 우리 눈을 즐겁게해주려고
신령님이 보내셨나 봅니다
의외로 식용이라지요
총 3.3Km에서 벌써 반정도는 왔지요
습한 날씨이지요
속리산도 1000미터가 넘는산인데
땀도 많이나고요 힘든 핑개를 습한 날씨 탓으로 돌립니다
잠시 커다란 바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지요
계속해서 진행합니다
문장대쪽 거리는 자꾸 줄어가고있지요
참 속리산에는 없는것이 3개가 닜다지요
이름하여 3무입니다
첫째가 칙넝쿨이고, 둘째는 할미꽃이 없답니다
그리고 셋째는 모기가 없다네요
그 만큼 속세에 벗어나서 그런가요?
정말 모기는 없습디다.
커다란 바위가 있지요
덥고 지루하고해서요
앞에 가시는 분에게 부탁을 했답니다
바위좀 잠깐 들고있으라구요
제가 그 바위 밑에서 잠깐 쉬어가려구요
고맙습니다 힘들었지요
이곳의 공식명칭이 바위 쉼터인가요?
이 사진이 계기가 되어서
제가 오늘 이분 전속 사진사가 되었네요
그리고 나무사이로 하늘이 열렸지요
문장대에 거진 다 도달한 듯합니다
네 문장대입니다
원래의 이름은 운장대(雲藏臺)로 '구름에 쌓인 봉우리'라는 뜻이 었으나
조선조때 세조가 이곳에 올라 시를 읊은 후부터 그 이름을 구름 운(雲)에서
글월 문(文)으로 바꿔 문장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속리산 하면 대부분 문장대를 떠올릴만큼 속리산의 대표적인 봉우리 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속리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천황봉(1,058m)로 문장대(1,054m)보다 약간 높습니다.
보통 대(臺)라고 하면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한 너른 바위를 표현하는 데,
문장대는 산 정상에 위치한 넓은 봉우리로 문장대에 오르면 속리산의 각 봉우리들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또한 주변의 기암괴석들의 멋진 모습에 속리산을 찾으면 꼭 문장대를 찾게 됩니다.
문장대에 세 번 오르면 극락에 간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확실치는 않으나 문장대를 오르기 위해서는
법주사를 돌아서 등산을 해야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이번이 몇 번째인가요
세번은 훨씬 더 온것 같은데
7번째 인것 같읍니다
이정도면 반듯이 극락으로 가겠지요
7번째 문장대 인증합니다
이제 문장대로 올랐답니다
바위 정상은 평평한데요 이런 물 웅덩이가 몇개가 있지요
이 웅덩이는 수위가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마른 경우가 없다지요
이 물속에는 용이 쉬고있다고 사람들은 믿습니다
그래서 부정한 여자가 이샘에 오줌을 놓거나
지팡이로 물을 심하게 저으면 용이 귀찬아서 하늘로 올라간답니다
물론 용이 승천하는것은 아무도 모르게 숨겨야하니
구름으로 빛을 가리고 큰비로 이중으로 못보게 한답니다
그래서 이것이 기우제의 기본이 되는것입니다
이미 올라오신분들이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속리산의 속살을 즐기고 계십니다
우리도 전경을 보고갈까요
구름속에 천왕봉이 숨어있네요
역시 멋진 사람을보니 부끄러워 숨어있는겁니다
앵글을 아래로 내려봅니다
문장대 바로 아래 예전 휴게소가있던 곳입니다
앞 마당에 커다란바위가
이곳에서 수련하는 사람들의 운동장소인 듯 합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보은현편에 ‘속리산 문장대 위에 구덩이가 가마솥만한 것이 있어,
그 속에서 물이 흘러나와 가물어도 줄지 않고 비가 와도 더 많아지지 않는다.
이것이 세 줄기로 나누어서 반공(半空)으로 쏟아져 내리는데,
그 중 한 줄기는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이 되고,
또 한 줄기는 남쪽으로 흘러 금강이 되고,
다른 한 줄기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북으로 가서 달천이 되어 금천으로 들어간다’라는 기록이 있답니다.
앞에 봉우리가 관음봉입니다
그리고 뒤로 히미하게 보인는 곳이 상학봉 묘봉이지요
맨뒤로 천왕봉이 보이고
우리가가는 문수봉,신선봉 비로봉이 차례로 보입니다
희미하지만 이 곳도 기암 투성이입니다
왜? 국립공원인지 아시겠지요?
이제 내려와야지요
바로아래인는 바위입니다
병아리바위?
눈도있고 콧구멍도 보입니다
이분한테
오늘은 제가 전담 사진사로 고용되었지요
아까 바위를 들고 계셨던분인데
이러저런 포즈를 요구합니다
말 잘 듣지요
그리고 아까 병아리 엉덩이 입니다
지팡이로 꾹꾹 눌러 줍니다
아마 병아리가 아파서 눈물이 줄줄
그래서 비가 온 것입니다
책임 지세요
이 곳은 예전에 매점이있던 곳입니다
국립공단에서 잘하시는 일중 하나이지요
일단 집이있고 음식을 만들고
환경이 변하지요
모기도 없는 속리산인데요
이제 정말 복원을 잘해서 멋진 속리산 만들어주세요
식사에 열중하십니다
오신분들 시차 꽤있지요
벌써 끝나신분들은 땀이 식어서 추워서 쩔쩔매십니다
저두요
잠시 추위를 잊으려 산책을 합니다
운동 바위라 했었지요
최고령 세르파님이시지요
올라가셔서 포즈를 취해주십니다
물론 인증해야지요
그리고 이곳에서 바라본 주능선입니다
멀리 천왕봉이 빨리 오라하십니다
꺼꾸로 이곳에서 바라본 문장대입니다
완관쓴 대머리 아저씨?
난간이 꼭 왕관같지요 아니면 말구요
역시 멋집니다
아직도 식사는 끝날줄모르고
이분은 친숙한 분이지요
아마 이분도 종현교에 푹 빠진 듯합니다
아마 이분도 종현교에 푹 빠진 듯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전속모델이 또 와주셨네요
문장대 배경으로 한장 박아드립니다
멋지네요
그사이 또다른 모델을 섭외했답니다
괜찬아요?
다시한장 더 찍어봅니다
괜찬은것으로 가져가세요
우리 세르파님 다음일정에 대한 설명이십니다
항상 진지하시고 유머스러우시지요
그래도 눈은 여성분에게로 가있답니다
국립공원 감시경찰입니다
아마 술먹는 것을 단속하려는 것 같지요
몰래 드셔야 합니다
그럭 저럭 식사도 끝나고
이제 천왕봉을 향해서 출발합니다
벌이 와서 놀고있는 이꽃은 큰뱀무라네요
천왕봉 가는 길 자꾸 내려가서 속상하지요
어자피 또 올라가야 하는데요
그런데 전면 높은 바위위에 까마귀가 있지요
저기가 어딜까? 문수봉? 청법대?
확인 불가
우리가 찾는 봉우리들은 다들 등산로에서 조금 더 올라가야 한다지요
그래도 봉우리를 전부 올라 갈 수는 없읍니다
그렇게 지나가는 곳이 문수봉과 청법대입니다.
문수봉을 옆으로 지나가면.
남서쪽 암릉 아래로 속리 8대중 하나인 청법대가 있다는데.
여기인지? 저기인지?
아니면 요기인지?
이렇게 바위길을 내려갔다가 올라가면
신선대 휴게소 건물이 나옵니다
문장대 휴게소와 달리 신선대 휴게소는 사유지라서 철거가 되지 않고 았으며
등산객들을 위해서 간단한 주류와 전을 판매합니다
신선대 휴게소에 들렸던 많은 산꾼들은 이구동성으로
"신선주(당귀 막걸리)와 감자전이 맛있다"고들 합니다.
그냥갈수 없지요 한잔씩 나누어 맛을 봅니다
휴게소에서 오던 방향을 바라보면 엄청난 암벽이 보이지요
청법대입니다
청법대(聽法臺)는 문수봉과 신선대 사이 저 바위암벽입니다.
청법대는 속리산 내 최고의 기암괴석 중 하나로 꼽힙니다.
주변 바위의 모습이 부처님을 닮았다고 합니다
청법대(聽法臺)엔 "옛날 어느 고승이 속리산 절경에 혼을 뺏겨 방황하던 중이
바위 봉우리에서 흘러나오는 불경 소리를 듣곤 정신을 차렸다"는 전설이 있어
들을 "聽"자 불법을 말하는 법" 法"자를 써서 청법대라 합니다
휴게소 앞에 이런 표지석이있지요
여기가 신선대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진짜 신선대는
여기입니다
그 옛날 신선이 와서 놀다가 갔다는 전설이 전하며,
신선대는 '신선들이 백학을 타고 노닐던 곳'이라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청법대에서 정신을 차린 고승이 앞을 바라보니,
바위봉우리에서 백학이 춤을 추며 날아오르고,
백발이 성성한 신선 10여 명이 담소와 바둑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고승은 자신이 고대하던 신선세계의 일원이 되려 달려 갔지만,
아쉽게도 그곳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헛것을 본 듯 실망한 고승이 그곳을 떠나 다시 뒤돌아 보니
신선들이 백학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존재를 깨달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천왕봉을 향해갑니다
이곳은 경업대와 갈림길을 조금지나면
경업대는 조선시대 임경업 장군의 무예 수련장으로 전하는 곳이지요.
그리고 입석대가 나옵니다
나무에 가려 잘 안보입니다
입석 말 그대로 서있는 바위이지요
임경업장군이 이곳에 이르러 6년동안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장군의 기상을 닦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의 단련이 되었는 지를 알길이 없었다지요.
자기 체력을 시험해 보고자 했으나 기준 조차 알길이 없어 매우 당혹하게 여겨오고 있었는데
하루는 석굴에 앉아 정신을 수련 중인데 형체는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이 들려왔답니다.
정신을모아 그말을 들으니 「마주 보이는 석벽에 올라가 누워있는 돌을 비석처럼 세워 놓으면
너의 수련을 완성할수 있노라」하는 내용이였답니다
곧 경업대에서 마주보이는 곳에 올라가 커다란 돌을 일으켜 세우는 데 아직도 힘이 부족했다지요
다시 열심히 체력을 단련하기를 1년 마침내 반석(般石) 위에 돌을 세우는데 성공을 했답니다
그 후부터 돌을 세웠다 고해서 입석대(立石臺)라 오늘에 이르고있다는 전설이 있읍니다
또 진행해야지요
날도 습하고요 벌써 많은 거리를 걸었답니다
지치기도 했지요
가는길 옆길이있읍니다
세르파님 바람 불어 좋은 곳이라 인도하십니다
바위아래는 낭떨어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지요
전속 모델 또 사진을 요구합니다
찰칵 잘나왔어요
바람이 참 시원하네요
다시 바위를 넘습니다
더위 탓인가요 녹음이 우거져서인가요
비로봉이 나와야하는데 안보이지요
그냥 지나친듯합니다
비로(毘盧)는 비로자나불의 줄인 말로써, 인도말로 몸의 빛,
지혜의 빛이 법계에 두루 비치어 가득하다는 뜻이 있답니다
이는 ‘부처의 진신’을 일컫는 말이자, 광명을 의미한다.
법주사를 창건하신 진표율사가 속리산에 온 다음날 아침 새벽 방안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데,
별안간 밝은 빛이 방문 가득히 비췄다.
깜작 놀라 방문을 열었더니 맞은편 봉우리에서 눈부신 햇빛이 오색 무지개를 띄고 사방팔방 빛을 발하고 있다.
대사가 황급히 합장배례를 하고, 그곳으로 달려가 보니
비로자나불이 암석에 앉아 있다가 서쪽 하늘을 향해 구름을 타고 떠났다 한다.
이곳을 비로봉이라 이름 붙였다 한다.
그리고 다시 탐방은 진행되고요
커다란 동물모양의 바위가 나타나지요
뭐지요?
고릴라 바위이군요
자세히보니 그런 모양이 있긴이네요
그리고 이곳도 8석문 중 하나이지요
상고외문입니다
이곳 속리산은 정말 기암이 많아서
예전부터 소금강이라 불리었답니다
멋진 돌무덤 뒤로 천왕봉이 엄청 가까워 져있네요
도룡용 바위라는데
사진의 오른쪽 끝바위인데
역시 비슷한가요?
보는방향에따라 달라집니다
이바위는요
길에 안내판이있지요
두꺼비모양이라고 두껍등바위랍니다
속리산에는 8자와 인연이 많다하지요
8명(산이름이 8가지 있고)-광명산, 지명산, 구봉산, 미지산, 형제산, 자하산, 소금강, 속리산
8대(8가지 경치좋은 암벽이)-문장대, 입석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은선대, 봉황대, 산호대
8봉(8가지 봉우리)-천황봉,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보현봉, 수정봉, 요봉 관음봉
8석문(8가지 석문)-내석문, 외석문, 상환석문, 상고내석문, 상고외석문, 비로석문, 추대석문 등
이있다고 합니다
이곳비로봉 밑의 석문은 비로석문 또는 천왕석문이라 부른다지요
일일 전속모델께서
포즈를 잡아주시네요
이바위도 놓쳤읍니다
어느분이 찍어 올려주셨네요
이 바위는 옛날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모집할때 강원도 설악산의 울산바위가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설악산 경치에 매료되어 산새를 구경하다가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구성하는데 참여를 못하고
설악산에 머물렀다 하듯이
속리산 걸방바위도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에 현재의 위치에 쉬면서 속리산 경치를 구경하다가 늦어서
속리산에 머무르게 되었다 합니다
또 다른 전설은 조선시대 인조때 임경업 장군이 속리산에서 7년간 수도를 할때 큰 암석을 걸방으로 져서 놓았다해서
걸방바위라 칭하는데 그바위에는 이처럼 걸방끈 자국이 나타나 있어서 그런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천왕봉과 법주사로가는 삼거리입니다
천왕봉 올때 보통은 이로 올라오지요
그리고천왕복을 갔다가 다시 이리로 와서 문장대로 가는삼거리입니다
그리고 헬기장입니다
저보다 먼저오셔서 정상인증을 하시는분들이 계시지요
아주 특별한 분이십니다
1년6개월만에 100산을 완주하신 부부이십니다
오늘 버스에서 따끈한 떡도 먹었지요
사진 찍고 계신분이 부인인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아니면 말고요
이렇게 100산을 서로가 인증해주고 여기까지 오셨답니다
막간을 이용해서
전속모델도 천왕봉 정상 인증합니다
그리고 버스 제 옆자리 계신분도요
역시 100산 인증하시네요
물론 저도 해야지요
지난번 기도해서 효엄을 받았던 천왕봉이잔아요
그냥갈수 없지요
잠시 제주변에 계신분들을 생각했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두요
또한 세계평화도 생각했답니다
약사는 돌고 도는겁니다
자 다시 100산 완주 행사입니다
100산 세레모니가 시작됩니다
부부인데 현수막을 각자 준비하셨네요
최복순님 먼저 인증하십니다
작년1월1일 체감온도 영하30도 날씨에
설악산 대청봉 일출을 보며 시작하셨답니다.
그 엄동설한에 꼭 이루겠다는 각오가 오늘이 되신것 입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또한분이지요
박복수님
부부의 이름 가운데 자가 같지요
복이 2개이니 복복 정말 천생연분이십니다
아마 이분 부인이 없었다면 완주 가능했을까요?
제 생각입니다
내내 말씀하시는것이 부인께서 인도 하셨을것 같읍니다
뭐 그게 중요한가요
목표를 이루었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이들 부부 복만 많으신게 아니시지요
만약 저였다면
돈이 아까워서 1개만 만들었을 것인데
현수막을 각자 만들었지요
재력도 꽤 되시는 부부인가 봅니다
시방 정상에 계신 모든 분들이 축하에 참여하십니다
정말 고생 많이하셨구요
죽하드립니다
너무 조용하지요
조금더 요란하게
축하의 지팡이를 머리 위로 들었답니다
정말 속리산 정기 받아서
아니 명산 100산 정기를 몽땅 받아서
가족의 행복과 하시는 모든 일에 행운이 가득 할 것으로 믿사옵니다
종현교 교주님도 힘을 보테실 것입니다
이렇게 세레모니를 마칩니다
다시 천왕봉입니다
천왕봉은 우리나라 십이지 종산의 하나이자, 세 갈래의 큰 물길,
즉 한강․낙동강․금강의 물길이 갈라지는 삼파수봉으로 불리웁니다.
삼파수는 달천수 우통수와 함께 조선시대의 3대 명수로 알려져 있지요.
천왕봉에서 발원한 달래강은 북쪽으로 삼백 리 길을 흐르다가
충주 탄금대에서 남한강으로 합류합니다.
달래강 인근 지명에 아직도 남아 있는 ‘달천’ ‘단월’ ‘단호’ 등은
모두 그 물맛이 달다는 뜻으로 달래강에서 비롯되었답니다
2007년 12월 중앙지명위원회에서 속리산 최고봉을 일제가 만든 천황봉에서
천왕봉으로 바꿨습니다. 사실 원래에도 천왕봉이었답니다
우리나라에 천왕봉이란 이름을 가진 산만 해도 10여개나 된다지요.
속리산 천왕봉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천왕봉에서
우리가 타고온 주능선 배경으로 한장 인증합니다
문장대가 꽤 멀리보입니다
저기서 걸어온것 입니다
계속해서 정상 인증이 이어집니다
여기까지 정상을 간직하고 하산합니다
이제 올라오시는분들이지요
무지 씩씩해보입니다
사실 올라도 별 볼일은 없는데
구름만 보이지요
내려오면서
바라본 천왕봉입니다
그냥 밉밉하지요
빗방울도 떨어지고요
구름이 잔뜩입니다
전속모델님이 따라오셨네요
천왕봉 인증해드립니다
뒷 언덕이 천왕봉인것 아시나요?
반대로 속세를 배경으로 속리에서 찍습니다
속리는 하늘이지요
하늘에서 내려온 여자를 무엇이라 하나요?
하늘에서 오신것 맞지요?
장각폭포 갈림길이있는 헬기장입니다
비가 오네요
아주 작은량인데
문장대 웅덩이를 건들지 말라했는데
누가 건들였나 봅니다
후미까지오려면 시간이 좀
주변을 살펴봅니다
역시 속리산이 왜? 국립공원인지를 말해주는듯합니다
멋진 풍경입니다
100산부부도
속리산을 마음속에 그리고 계시지요
그감격 오래 간직하셔도 됩니다
장각폭포까지는 5Km입니다
급 경사길 이기도 하구요
100산 부부 비롯하여 몇분들과 달려서 하산합니다
역시 100산부부 저력이 있더고 생각했읍니다
어떤때는 주1회 어떤때는 주2회 또어떤때는 주5회도 산행을 하셨답니다
하산길 전혀 거침이 없으시지요
우린 그냥 따라만 왔답니다
속리산은 그래도 육산이라 내려오기는 어렵진 않네요
비가와서 바닥이 미끄러운것 조심좀 하구요
습도가 높아서 땀이 좀 많이 나지요
정신 없이 하산 했읍니다
드디어 물도 만나고 잠시 얼굴의 땀도 닦았답니다
그리고 또 고우~
약1시간10분쯤 내려왔지요
상오리 7층석탑입니다
구경하고 가야지요
석탑전경입니다
탑은 고려시대 탑으로 추정된답니다
탑이있던 곳으로 보아 이곳이 절터였으것인데
흔적은 없지요
탑에대한 설명입니다
이곳에 장각사라는 절이었다네요
탑이 무너진것을 1978년 원형 복원하였답니다
아마 오래전 도굴꾼들이 탑에 내장품을 도굴하기위해
그냥 무너뜨렸던 것이 아닐까합니다
그리고 그냥 방치했다가 문화재 의식이 강화되면서
복원설치 되었을것입니다
다시한번 번창했을 장각사를 그려보며
장각 폭포로 향합니다
폭포에 가기전에
목욕재개해야지요
잠시 시냇물을 거쳐갑니다
산행도 길었구요
땀도 많이 났지요
시원한 물에 발을 담궈봅니다
좀 용감하신 분들은 이렇게도 했지만
대부분은 이렇게
잠시 휴식을 취해봅니다
장각폭포가 나와야하는데
여기는 유원지이지요
멀리 버스도 보이네요
여기가 장각폭포입니다
사실 폭포라면 산중에있어야 하는것이 아닌가요
이건 유원지입니다
아무리 설명을 잘해놓아도
이건 아닌데
폭폭포전경입니다
아니지요
오래 머물 필요가 없네요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에 한창입니다
장각마을은 소의 기다란 뿔처런 완만하고 긴 계곡이있는 마을이란 뜻이랍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땅덩어리리가 작아서 이정도 폭포면 대단한것이지요
폭포는 길게 뻗어 하늘로 올라가는 길로 여겼다지요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폭포에 비했겠지요
하여간 용하고 관계되었다면 기후제를 지냈던 곳이랍니다
어렵게 어렵게 역사문화 탐방을 마치었습니다
오늘 운동량이 대단했지요
모두들 이 정도는 할수있는데
우린 제목이 역사문화 탐방이잔아요
그래서 다들 룰루랄라 일 것으로 생각하고 왔겠지요
준비가 안되어서요 많이 힘들었답니다
하지만 종교의 힘인가?
모두들 무사히 잘 마치었답니다
물론 속리산에대한 역사까지도 머리속에 팍팍 저장하구요
다리근육도 팍팍 체웠답니다
모두들 수고하셨구요
특히 주최하시고 진행하시고 열변을 토해주신
전종현 세르파님 정말 고생 많으셨읍니다
블랙야크 역사문화 탐방이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