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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2018.12.15. 노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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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1,322m이다.

무척 높은산인데 명산 100 에도 명산 200 에도 들어있지 않다

겨우 300대명산에

아마 정선에는 그 정도 높이의 산이 줄비해서 

명산 이름은 다른 산에 양보한듯하다

실제로도 오늘 같이 산행한 아리랑 산은 노추산 보다 20M 가량 높다

그렇지만 아리랑산은 노추산에 가려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갔다온지 얼마만 지나면

노추산만 기억하고 아리랑산은  갔다 왔는지도 모른다

그 만큼 산이 많은 강원도이고 또 정선땅이다

하지만 이 노추산은 옛날 신리시대부터 유명한 산이었다

오늘 산행은 구절암이 있는 절골에서 시작했다

임도를 따라 쭉~ 가다가 암릉지대를 꽤 오래 지속했다

그리고 아리랑산 노추산 정상 이성대 그리고 구절리역 인근 구절교에서 마무리했다

총거리 10.85 KM 를 걸었다

당초 공지는 사달산까지 갔다오는것으로 되어있었지만

모두들 그럴 생각은 없는 듯 말로만 갔다왔다

3시30분 까지 오라했는데

실제 도착시간은 3시간 약간 안되었다

약 30분 단축 했지요

4시간 30분 소요되었다




절골 노추산 입구 입니다

문이 굳게 닫혀있네요

하지만 들어가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산행에 대한 대장님의 브리핑이 있읍니다

대장님은 산행을?

일루~ 저리루~

네!  알겠읍니다

그렇게 하겠읍니다

그리고 출발 입니다

시작입니다

눈치로 출발을 ~~~

성질 급한 사람이 먼저 출발하지요

바닥은 눈이 살짝 깔려있는 임도입니다

물론 저도 성질은 한성질 하잔아요

 같이 출발합니다

임도가 길어 지지요

길은 살짝 미끄럽고요

지루해 질무렵 눈요기가 있지요

일부러인지? 자연인지?

지금도 물을 뿜고 있네요

얼음 조각입니다


임도가 단조롭긴 하지요

그래도  지날 수록 모습은 자꾸 바꾸어 보여줍니다

이런 모양은 괜찬군요


임도가 끝났나요?

산으로 길이 인도 됩니다

이제 노추산 이야기 좀 할까요

옛날 신라 때 이야기입니다

태종 무열왕 즉 김춘주 때이지요

그 무열왕의 두번째 딸이 있었답니다

이름은 요석공주라 했지요

딸가진 부모는 늘 같은 생각이었나 봅니다

딸자식 배필을 만들어 주는거요

이렇게 이쁜  딸인데요

그런데 당대 아주 유명한 스님이 있었답니다

이양반이 "원효"라구요

이 양반 당나라 유학 갔다가 해골물을 먹고요 약간 맛이 갔나봅니다

헛소리를 하고 다닌 다자요

무열왕은  그게 헛소리로 들리지 않았나 봅니다

어쩌구 저쩌구 해서 둘을  붙여 주기로 맘 먹었다지요

김춘추는 궁궐 관리에게 원효를 찾아 데려 오라 명하였답니다.

원효가 남산에서 내려오다 문천교를 지나는데,

관리를 만나자 거짓으로 물속으로 떨어졌다지요.

위아래 옷이 몽땅 젖었는데.

관리는 스님을 궁으로 데려가 옷을 갈아 입히고 빨아 말리게 하였는데,

그러자니 자고 가게 되었지요, 공주가있는 그집에서요

그리고는 공주에게 태기가 있었다나,

그후 10달  설총을 낳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이야기는 어떻게하든

설총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노추산이 되거든요

 그래서 급하게 모셨답니다

이분 모자가 신라 화랑 같지 않나요?

그래서 오늘 이분을 설총을 정했답니다

“설총은 나면서 부터 영리하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

신라의 현인 가운데 가장 뚜어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지요.

삼국유사에는

우리말을 가지고 중국과 우리나라의 풍물의 이름을 통하게 하였으며,

더 나아가 경전과 중국 문학을 뜻 풀이를 하였답니다.

라고 전해지고 있읍니다

즉 다시 쉽게 말하면 이두를 만들어

우리말 이름니나 경전을 읽을수 있도록 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당시 국교는 불교였지요

하지만 그렇게 여러지식을 접한 설총은

당연히 공자,맹자의 공덕을  크게 받드릴수 밖에요


세상에 중이 아들을 났단 말이야?

하늘이 노했지요

벼락 맞을 일이입니다

이들 이야기는 정상에서 다시합니다

여기 까지는 선두로 왔는데

길이 왜? 이리 힘들어 집니까?

차곡,차곡 추월 당하고 있읍니다

뒤에 숨소리가 얼마나 거칠던지

그소리는 앞 사람에 대한 압박이지요

제가 도저히 앞에 갈수 없어서 비켜드렸답니다

그랬더니 금방 간격을 벌려 놓읍니다

이후 정상에서 까지 이들을 볼수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러는 사이 쉼터를 지납니다

이 무식한 대성인들은

쉼터를 쉼터로 보이지 않는가 보지요

하명도 쉬지도 않읍니다

계속해서 간격은 벌어지구요

또 다른 뒷분이 추월을 하십니다

이젠 질이났지요

그래도 위안 한다고

뒤에 5명이 더있다고 하지요

그러는 사이에 반을 넘었다는 이정표이구요

오른편 산에 능선이 보입니다

2.4Km면 저산은 정상이 아닌 듯합니다

저기였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2 번째 쉼터입니다

소나무 쉼터라나

하지만 대성인들은 여기도 그냥 통과 했읍니다

아마 한글을 모르나?

소나무 쉼터를 지나면서

로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험해지기 시작 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 길이 꽤나 길고 힘드네요

나무 사이로 보이는 산들은 눈으로 화장을 해서

보기가 좋읍니다

하지만 저는 죽을 맛입니다

그리고

나무 없는 왼쪽 산은

그냥 조용합니다

여기는 철쭉 군락지라지요

오늘 무리를 했나요?

정말 한발 한발이 천근 만근입니다

길은 계속 험하고

그냥 주저 앉았답니다

그리고 배낭에서 김밥 꺼내먹고

물한모금하고

다시 GO~~~

그사이 또 다른분이 추월하셨지요

5분이라했는데 4분이 추월했네요

1분 또 남았다는거지요

희망을~~ 자부심을~~~

그리고 다시 정상을 생각하며

다리는 계속 가지 말자 하네요

이럴때는 사진을 찍습니다

아무도 없지만 힘들어서 쉬는게 아닌듯이요

그란데 정말 사진 찍을만 하네요

구름과 조화가 된 강원의 산을 기록으로 남기며

힘을 내봅니다



일단 아리랑산이 먼저 나와야하는데

혹시 조기가 아라랑산이 아닐까?

마지막 인듯 힘을 내봅니다

아니네요

그냥 봉우리 였나 봅니다

그리고 또 내려서니

이정표가 있지요

또 실망시킵니다

노추산 800미터 입니다

그렇다면 조기보이는 산이 틀림없는 아리랑산 일겁니다

힘껏 속도를 내봅니다

드디어 아리랑산 입니다

먼저 오신분들이 사진을 찍고 계시지요

얼른 자라잡고 인증합니다

얼굴이 어떻습니까?

아직 힘이있어 보이나요?

다시 노추산으로

아직도 노추산은 700 미터나 남았답니다

아리랑산을 넘어오니

바로 봉우리가 보이지요

네 거기가 오늘 목적지인 노추산입니다

세히 보면 사람들이 보입니다


앞에 가시는 분들

부부이시죠?

눈에 많이 익숙합니다

오늘은 서로 다른 대열속에서 여기까지 왔지만

지난번 산행시 몇번인가 맨뒤에서 같이 산행한 기억이 있답니다

강물이 바다에서 다시 만나듯

우리는 언제든지 후미에서 만나게 되어있지요

한번 꼴찌는 영원한 꼴찌입니다

기분이 좋아져서인지

주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건 변기이지요

반달곰이 화장실로 이용하나 봅니다

이건 뭐 같읍니까?

난 침팬치 코같다구 생각했는데

아니면 돼지코?



그러며 산행을 하니 금방입니다

이제 150M 남았군요

이성대로 가려면 여기까지 다시 와야 합니다

그런 생각은 사치이지요

일단 정상부터

이제 꼴찌 부부와 함께 정상을 향합니다

기쁘지요?
다왔잔아요

정상 앞 헬기장입니다

시야가 엄청 좋읍니다

우리 대원들 모두가 여기서 식사 중이십니다

어라 대성인들도 밥은 먹는군요
신기하네요

여기도 계시구요

위에 데크있는 곳이 정상입니다

일단 정상인증합니다

신라 설총은 이곳에서 공부를 했다지요

공부하면서 불교 공부도 했지만

공자, 맹자를 좋아했지요, 그리고 많이 존경하기도 했나봅니다

공자는 노나라 사람이구요

맹자는 추나라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 앞자를 합쳐서 노추가되지요

자기가 존경하는 분들을 기억하며 

산이름을 만들었답니다

1322m 노추산 입니다

개인적으로 노추산은 이번이 3번째입니다

오른쪽 사진은 1998년도 사진이구요

왼쪽은 2009년도 사진입니다

정상석이 2009년과 똑같은것이네요

98년도에는 저도 꽤 젊었었네요



오늘 노추산 너무좋지요?

바람도 없구요

구름도 미세먼지도 없읍니다

그래서인지 시야도 정망 멀리보입니다

보이는대로 왼쪽부터 끊어서 촬영해보았읍니다

저뒤 어디가 설악산이라는데

저는 못읽겠읍니다

조금 오른쪽입니다

앞장과 눈쌓인곳이 겹쳐지지요?

그리고 그다음 오른쪽입니다

보기 힘드시죠?

핸드폰 카메라 파노라마 기능을 써 보았읍니다

한꺼번에 다 들어갔읍니다

멋지네요

설총선생 이야기를 적어 놓았네요

공자, 맹자의 나라 노나라, 추나라 입니다

 

 

식사는 끝났고 후식들 하고 계십니다

앞에 서 계신 2분이요

이분들 요석공주와 원효대사이지요

설총의 탄생은 한 스님을 파계 시킨 스캔들의 소산이었답니다.

정작 원효 자신은 파계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인 듯합니다. 

원효대사 중 신분에 결혼하고 아들낳고

그래서 어찌 되었겠어요

결국 속인으로 돌아와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고 부르며,

이때부터 도리어 일반 백성을 향해 부처의 이름을 더욱 높이 외쳐 알렸다.

그래서 인가요 이 양반 옆에 가면 계속 말씀이 많으시지요

오늘은 유난히 멋지십니다

푸른하늘입니다

그멀리 풍력발전도 보입니다

그리고요

제가 젤루 뒤에 온줄알았지요

이분은 더 뒤에 도착하셨지요

혼자서 식사를

같이 해드리고 싶은데

대성은 이런 것이 좀 약해요

여자분들은 왈가닥인뎅요 

남자분 들은 워낙 수줍음을 많이 타지요

천천히 드시고 오세요


다시 내려왔지요

이성대를 가야하니까요

이쯤이면 신사임당이나 이율곡이 나타나야하는데

신사임당의 강릉이 여기서 가깝지요

이율곡선생도 이곳에서 수양을 했다 합니다

그 무렵 이율곡과 친구들은

설총 할아버지를 이야기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며 그 염감님이 이곳에서 공부한 것도 알고요

그분이 공자 맹자를 좋아 한것도 아셨겠지요 

그리고 깊은산 이곳

특히 물이있는 이곳에 자주 와서

공자왈 맹자왈 하며 공부를 했을 겁니다

목마르면 물먹고

그러고 보니 설총이 좋아하던 성인 공자, 맹자를 공부 했겠지요

특히 조선은 유교가 국교였잔아요

제자들과 공자, 맹자 "사당"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겠네요

그렇다고 계시지도 않은 분의 사당을

이높은곳에 짓는데 2개씩 이나?

그렇지요 같이 져야지요 

그래서 이집 이름이 이성대입니다

"2명의 성인을 모시는집"이란 말이지요

이성대?

 옛건물은 건물 앞에 이름표(현판)가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대대는 무슨 돌림자처럼 끝자가 ○○전, ○○당, ○○각, ○○헌,○○루 등으로 끝답니다.

이름과 건물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건물에도 격에 따라 붙이는 이름이 다르답니다.

건물 주인의 신분에 따라 건물 이름에 붙는 끝글자들의 서열을 정리해 보면 대체로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이 된다.

당연히 임금님이 계시는곳,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는곳은 전이지요

그리고 서열에 따리 돌림자가 따라 갑니다

이성대이지요 여기는 "대"자가 붙었네요

"대"자는 사방으로 경치를 구경하가 좋은 곳에 이름을 붙인답니다 

이곳에서본 경치입니다


 



이성대 내부입니다

빈방이지요

평상시 이렇게 비워놓구요

외부 창고에 2분(공자, 맹자)의 위패가있답니다

제사 때 꺼내서 제사상을 차리고요

유생들이 모여서 제를 지낸답나니다

왠 여인?

신사임당이 환생하셔서 오셨나요?

율곡은 없는데요

아! 그럼 이분이 율곡?

신사임당이 너무 젊으시네요

이제 이성대를 뒤로하고

하산합니다


하산시 처음 만나는 것은 너울 길입니다

우~~ 이많은 돌들이 어디서 왔나요?

지질학적으로는  이근처 높은 곳에 커다란 바위가 있었답니다

그바위에 금이가고 그 금속으로 물이 들어 가서 겨울에 얼어 버리면

바위가 쪼개 진답니다

그런 행위가 수없이 반복되는거지요 수백억년 수천억년

그러면 바위가 쪼게지고 또 쪼게지고

이런 너울길이 생긴답니다

이런길은 가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만들곤 하지요

옛날 이곳 아랫 마을에 이쁜 부인이 살았다지요

그런데 이웃 마을 노총각이 있었는데 그만 그부인한테 뽕~ 반했답니다

그래서 항상 호사 탐탐 기회를 엿보다가

그 여자 남편을 몰래죽이고

강제로 그 부인을 데려다 살았답니다

그 후 어느 비가 오는 날이었다지요

새로 남편이된 남자가 비 맞은 바위를 보고 웃고 있었답니다

부인이 물어 보자 그 남자는 남편을 죽인 이야기를 했고

바위 모습이 죽인 남편을 떠오른다나

그래서 웃었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있던 부인이 억울하고 분통했겠네요

그래서 새 남편을 이곳으로 유인해 죽였다합니다

슬픈이야기입니다


어째든 바위를 하나 하나 쌓으면서

기도를 하면 신통하게 들어 준다지요

모두들 소원 빌고 가셨지요?

참나무 숲입니다

그 참나무 저기 꼭데기에 둥근 것이있네요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입니다

여기 저기 지천에 겨우살이입니다

하지만 너무 높아서 딸 수가 없지요

같이 가시는 분에게

겨우살이 따는 연장을 이야기해주었더니

다음 산행때 남편에게 말해서 준비해 오겠다 합니다

깊은 상중이잔아요

버섯도 달려있지요?

우와~~

이건 일엽초 입니다

이분 다음에 연장 만들어오신다는 분인데요

일엽초 한주먹에 얼굴에 활짝 피었읍니다

꽁짜는 좋은것이야~~

그리고 옹달샘을 지나고

임도까지 내려왔지요

설총님 제자들을 이끌고 기다리고 계시네요

안 기다리셔도 잘 찾아 갈수 있는데

이제야 뭐 그냥 내려가면 됩니다

제자들 설총선생의 지휘하에

열심히 하산합니다

고냉지 밭을 지나고 있지요

그리고 아름다운 소나무 길을 지납니다

꽤 많이 내려 왔읍니다

이정표는 조주선관 삼거리입니다

문제가 생겼네요

여기서 부터 저는 또 혼자가 되었답니다

앞에도 뒤에도 아무도 없네요

길은 임도지만

산은 깊지요?

그래도 길가의 억새는

살랑살랑 손을 흔드네요

반갑다고


그리고 임도를 돌고 돌아

드디어 도로를 만나지요

그리고 이 2차선 도로를 끼고

약 5분

타달타달 내려옵니다

다른 도로를 만나고

그앞에는 다락가든 입니다

그앞에 버스가 있네요

광산이었지요 이곳 석탄을 캐서 연탄을 만들곤 했지요

지금은 석탄을 사용하자 않지요

그광산이 생산을 안하면 폐광이라 하지요

석탄과 함께 번창했던 구절리역입니다

퍠광과 함께 역도 필요가 없어졌답니다

지금은 놀이시설로 변환되어있지요

그 놀이시설도 예전에 이곳이 기차역이 었음을 조금은 보여줍니다



추운 겨울철

산악회가 예전 같지 않지요

적은 인원으로 운행하니 승객인 우리는 편안한데

주최측 한숨이 보이는 듯합니다

오늘 산행 나름 몸관리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맨 앞에서 중반까지 잘 갔거든요

하지만 강물이 바다에서 다시만나듯

역시 꼴지로 가게 되네요

한번 확 차고 나가야 하는데~~

다음번에는 확실히 차고 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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