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 수도서울 더 나아가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강이 시작되는 곳이다.
이른 아침 피어 나는 물안개와 일출, 황포돛단배 그리고 4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어우러진
양수리 두물머리는 사계절 아름답게 변모하는 풍광이 기다리는 곳으로
한강 제1경(두물경)인 동시에 각종 드라마와 영화 촬영장소로 널리 알려지며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는 생태관광자원지이다.
또한 팔당댐 건설로 인하여 물길이 끊기기 전까지 강원도와 서울을 잇던 번창하던 나루터로
다양한 이야기가 함께 있는 역사와 문화 관광자원이기도 했던 곳이다.
오늘은 역사문화 탐방지로 이곳 두물머리를 찾았다
항상 그렇지만 우리가 자주 찾는 곳에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그런 것을 배우는 것이 역사문화탐방이다
지금 연꽃이 한창이 이곳에서 야유회 같은 역사문화 탐방을 시작합니다
운길산역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전거길 시작점에서 잠시 소개의 시간을 가지고
지금은 자전거길로 변한 양수철교릏 건너 양수리환경생태공원
두물머리 그리고 두물머리 나루터를 거쳐 양수역에서 마무리합니다
총 8Km 에 6시간이 조금 더 걸렸네요
10:30 운길산역이 모임 장소입니다
이제는 잘들 아시죠?
역사문화탐방은 종현교 종교행사와 같이 겸한다는 것을요
모임시간 보다 10분전 도착하니
주최측인 전종현교주 그리고 대표전도사인 김전도사가 인원 체크하랴
인사하랴 분주합니다
눈치빠른 교주님이 카메라를 인식 하였지요
두분 역시 종교인 답게
자연스럽게 자비로운 포즈로 촬영모드로 들어갑니다
자비로운 스마일~~~
그와중에 신도 관리도 잊지 안으시지요
주변에 모이신 몇분을 동참시키십니다
신도들은 왕창 은총 받은 표정입니다
빠지신분들 섭섭하겠지요
하여튼 "오지락 넓은 배려는"
그리고 "여자만 좋아하는 교주"는
종현교의 제1 지침이지요
모든 신도에게 배려를!
그리고 남는게 있다면 남자신도에게로
시간이 되었답니다
이제 최종점검하고
행사 장소로 이동이 시작 됩니다
날이 많이 덥지요?
하늘이 맑으니 더욱 햇빛이 따갑습니다
이 무두가 교주님의 은총에 비례하는 현상입니다
위에보이는 다리는 경의중앙선 철교입니다
용문까지 전철이 겸하고 있는 철교이지요
우린 철길 아래로 이동합니다
여기는 아직은 북한강이지요
건너가 양수리입니다
일단 다리밑 햇빛도 피하기 좋은자리이지요
이곳에서 오프닝 행사를 진행합니다
여기는 사대강 자전거길의 시발점이기도 합니다
모든 진행은 약장사 못지않은 달변의 교주님이 직접하시지요
원래 달변이 시지요 종교인 답게가장 자비로운 모습으로
옆에 자전거 타고 오신 분들도 집중합니다
우리 교주님 그들에게는 무심한 척하면서도 한 일종의 포교활동?
이분은 ?
종현교 창립 맴버입니다
누구보다도 어떻게 하면 하사금 봉투가 오는지 알고 계시지요
이미 수령이 된상태입니다
모르는 척 하늘보며 배낭에 집어 넣고 있네요
옆에 남자분 부러운듯 바라보십니다
이분은 종현교 바이블 "명산의 조건"을 발표하고
하사금을 받으셨답니다
보통의 종현교의 종교행사는 명산의 조건으로시작하지요
신도들의 자기 소개 시간이 끝나고
전도사들 소개가 이어지고 있읍니다
이들은 블랙야크신학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신
종현교 정예 전도사님들이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단체사진을 하고
이제 본격적인 종교 행사에 막이 올랐읍니다
정면의 보이는산을 보세요
한강 두물머리를 향해 입질하는 물고기 머리 형국의 운길산(雲吉山, 610m)이 보입니다.
운길산은 '구름이 가다가 산에 걸려 멈췄다'는 이름 유래를 갖고 있습니다.
또 태조 이성계가 '산에 구름이 많다'고 해 운길산이라고 했답니다.
'수종사 중수기'엔 '운길'로 나오고, 더 오래된 '동국여지승람'엔 '조곡산'으로 기록되었다합니다.
'조곡'이란 '두 산 사이 좁은 계곡' 또는 '물살 빠른 계곡'이란 의미입니다.
사진 오른쪽 조금 낮은 봉우리 밑에 옴푹파인 상처가 보이시나요?
그곳이 운길산 수종사입니다
조선시대 세조가 지병인 등창(피부병)은 고름이 줄줄 나오는 문둥병이 있었다고 합니다
세조는 백관을 거느리고 등창치료를 위해 금강산과 오대산 상원사 문수동자를 만나고 오다가,
양평 양수리에서 1박을 하게 됩니다.
잠결에 종소리가 들려 가보니 운길산 기슭 바위굴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였습니다.
세조는 이듬해인 1459년 쇠락한 절을 중창하곤 수종사(水鐘寺)란 이름까지 하사했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동합니다
망할노무 풀이라해서 망초라지요
잘라도 잘라도 또 나온다구 개망초라 합니다
그래도 꽃은 꽃입니다 이렇게 단체로 피어있다면 제법 모양이 나지요
이분들은 종현교의 장로쯤 되는 부부입니다
교주님 빼고 종현교의 정신적 지주이시지요
이렇게 기념하며 시작합니다
양수리로 가려면 옛 중앙선 열차가 달렸던 북한강철교를 건너야 합니다.
예전에 수학여행 갈때 이곳을 지나는 열차를 타고 갔던 기억이있읍니다
북한강철교 좌측엔 경의중앙선 전철이 다니는 양수철교입니다.
지금은 역활을 저 철교에 넘기고 자전거 도로로 변신했지만
중앙선은 1939년에 착공해 1942년 청량리역에서 경북 경주까지 연결되었답니다.
수많은 승객들을 날랐을 것입니다
날은 조금 더워도
이런 철길을 걸을수 있는게 신기하지요
녹슬은 철구조물이 나 너히보다 나이가 많아 하고 있지요
숟한 역사를 보고 가슴에 담고있는 다리입니다
북한강철교 끝자락 우측 계단을 내려가면 '양수리환경생태공원'이 나오는데,
이곳이 양평 물래길의 시작합니다.
북한강철교를 직진하면 양수리 전통시장이 나오고 곧 날머리인 양수역이 나옵니다.
북한강 철교 끝에있는 자전거길 상징 조형물입니다
하늘로 가는 자전거 같지요
자전거길은 북한강철교에서 춘천 의암호 북단의 신매대교까지 73㎞에 달합니다.
4대강 개발을 하면서, 전국에 자전거길은 참 잘 만들었습니다.
하늘에만 자전거가 있는것이 아니지요
이분 전도사님 맞지요?
아오자이를 입은 월남 아가씨 같네요
자전거로 베트남까지 ~~
종현교를 전도하러 갑시다~~
북한강철교에서 내려오면 양수리환경생태공원이 나오는데
이곳엔 갈대와 부들 그리고 능수버들이 무성합니다.
공원은 2000년 1500여 세대의 아파트 건축부지였으나,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생활오수 문제가 대두되자 한강수질개선과
자연보호환경이란 공익 실현을 위해
2004년에 환경생태공원을 조성합니다.
와우~~
이곳에 아파트 단지?
그럼 여기사는 사람들은 정말 좋았겠네요
경치좋구, 공기좋구
대신 우린 그사람들 배설물 먹고있겠지요
공원 안엔 두충나무 숲과 원두막 그리고 벤치 등이 자릴 잡고 있어
마치 소풍을 온 듯 한적하고 조용한 곳입니다
오늘은 휴일인데도 사람이 없네요
양수리환경생태공원 안엔 이리 저리 물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물길을 일컬어 '달팽이물길'이라고 부르는데,
물길 안으로 북한강물을 끌어들여 각종 식물들을 통해 정화시킨 후 다시 북한강으로 보낸다고 합니다.
글쎄요? 얼마나 북한강물이 정화될 진 모를 일입니다.
이물은 정화된 물이 다시 한강으로 나가는데요
그리 정화되지 않은듯하네요
북한강가를 따라 걷다보면 버드나무가 아주 많이 보입니다.
버드나무는 '부들부들하다(부드럽다)'는 나뭇가지의 특징에서 온 이름으로
‘부들>버들’로 음운변화를 일으킨 듯 합니다.
버드나무는 부드럽고 연약한 것을 상징해 옛말에 '가는 것'을 표현하는 말로 ‘세류(細柳)’,
여인의 날씬한 허리를 ‘유요(柳腰)’란 낱말로 쓰이기도 합니다.
버드나무는 연못가나 하천, 제방, 다리 근처에 많이 있어,
물가에서 잘 자라고 물을 정화시키는 작용도 합니다.
버드나무는 뿌리가 많아 제방의 흙이 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잘 잡아주고,
아름다운 경관도 연출하며,
가지가 많아 차폐막(가림막)의 역할까지 있어 경계의 표시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1484년 성종 임금은 청계천(당시 개천 開川) 주변 아직 석축을 하지 못한 곳에
버드나무를 심어 토사를 방지했고,
창경궁 담장을 따라 버드나무를 심어 백성들이 궐 안을 보지 못하도록 조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버드나무에는 40여 종이 있다고 합니다.
가지가 축축 늘어진 걸 봤다면 그건 버드나무가 아니라 능수버들이나 수양버들입니다.
그 중 수양버들은 주변에서 보기가 싶지 않고,
대개 능수버들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버드나무는 새로 난 가지만 늘어진다고 합니다.
한 땐 버드나무에서 날리는 씨를 품은 솜털(유서)이 호흡기 질환을 일으킨다는 발표에
버드나무들이 베이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버드나무에 이야기를 살펴보면, 왕건과 처녀 유씨
그리고 이성계와 경처 강씨(향처 한씨)는 우물가에서 바가지에 띄운
버들잎에 뿅가서 결혼에 이르렀고,
연산군의 어머니인 중궁 윤씨는 비방 주문(呪文)과 비상을 버드나무상자에 넣어
권숙의 집에 던지는 ‘비상투척사건’으로 폐비가 되고
죽임을 당해 훗날 갑자사화의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숙종 땐 희빈 장씨가 인현왕후 민씨를 저주하기 위해,
창경궁 통명전 연못가에 각시와 붕어를 넣은 버드나무상자를 묻다가
발각되어 사약을 받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 버드나무 잎은 활쏘기의 과녁이 되기도 했습니다.
왕이 참석한 자리에서 최고의 명궁을 가리는 시합은 늘어진
능수버들의 잎을 맞히는 것으로 우열을 가렸다고 합니다.
북한강철교 우측엔 양수교(양수대교)가 보이는데 무척 멋진 다리입니다.
양수교가 놓이기 전 이곳은 두물머리 북단 돌데미나루(돌더미나루)가 있던 곳입니다.
돌데미나루의 나룻배는 양수리 두물머리 북편과 남양주시 조안면 진중리를 오갔습니다.
돌데미나루는 갈수기엔 걸어서 지날 수 있는 얕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양수교는 1920년대 축조했는데, 한국전쟁 땐 폭파되어 다시 나룻배가 다니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후 다시 다릴 놓았는데, 현재는 기존의 낡은 다릴 헐고 2015년에 새로 세운 다리입니다.
그래서 신 양수대교이지요
예봉산입니다
현재의 예봉산은 본디 운길산으로 불리우던 산이었답니다,
현재의 운길산은 본래 조선말까지 초동산, 수종산, 조곡산으로 통용되었다고 하지요.
또한 예봉산은 운길산(현예봉산)과 예빈산으로 나누어 부르기도 했답니다
아래 사진의 왼쪽 높은 봉우리는 운길산(현 예봉산),
사진의 오른쪽 타워크래인이 보이는 봉우리는 예빈산 이라 부리었다는 이야기도 있읍니다
특히 예빈산은 조선시대때 기후제를 지내던 곳으로 . 지금 천문대가 설치 공사중인 것이 같은 맥락?
예봉산이란 이름은
후대에 이르며 지명의 유래가 혼란스러워지자 예빈산의 禮자와 봉안역의 奉자를 합성하여
예봉산이 되었다고도 하는데 근거는 정확치 않다.
그리고 또다른 유래는
옛날 관리나 선비들이 강원도 춘천,영월 등에서 한양을 오갈때 삼각산이 마지막으로 보이는
이곳에 이르러 예를 올렸다해서 예빈산으로 불렸다는 설이 있읍니다.
또 조선시대 손님을 맡아보던 관아인 예빈시가
거주하여 관리하던 산이라서 예빈산이라 불렸다는 설도 있읍니다.
양수대교 아래입니다
덥지요? 여러가지 도구가 등장합니다
태극기부대?
선풍기?
정말 아이디어j의 극치를 보는듯합니다
정말 편안하고 시원하시겠네요
어째든 무슨방법이등 더위를 이겨야지요
한강 물환경연구소입니다도 없구요
편의시설도 휴식공간도 잘되어있네요
우린 여기서 점심도 먹고요
주님의 지도로 게임도하고 신도 상호간의 우의를 돈독히 할것입니다
잠시 혼란이 생겼읍니다
감히 교주의 말을 거역하는 견제세력이 등장했네요
모두들 긴장했지만
역시 교주님은 신도편이라
자비로운 결정으로 다시 평온이
보이시죠
평화가~~
종현교! 정말 여유로운 모습입니다
갈등은 없답니다
각자 가져온 도시락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행복한 점심시간을 ``
그리고
이런? 이건 뭐지요?
서슬 퍼런 사모님이 계시는데
이런 외도를?
괜찬은 건가요? 장로님
오늘 다정한 커플들 입니다
오늘은 소풍이지요
소풍에 재미는 게임입니다
여자부 게임입니다 손마주쳐서 넘어뜨리기 게임입니다
체격이 안맞는것 같지만
승부는 모르는겁니다
항복?
벌써 손드신건가요?
위장 전술인가요?
이분은 계속 날씬하신분만 만나네요
운이 좋은것 이겠지요
이런이런 손이 어디로 가나요?
아슬아슬합니다
드디어 결승전입니다
누가 이겼나요?
박장 대소입니다
누가 이긴들 어떻겠어요
즐거우면 되는거지요
부부게임입니다
자두를 바지 가랑이 좌에서 우로 통과하기요
바지가랑이 통과후 자두를 다 먹어야 이기는 겁니다
참가팀들입니다
모두가 부부지간인데
이팀만은 부부가 아니지요
남편의 승인을 얻어서 즉석 커플이 되었답니다
역시 아슬아슬합니다
이쪽 커플은 제법 빠릅니다
집에서 연습하고 왔나봅니다
아무래도 남에꺼? 다루기가 조심스럽지요
이해가 됩니다
역시 연습한 집이 빠르네요
벌써 통과하고 드시고 계십니다
이분은 계속 조심스럽구요
역시 자가용이 좋은거야
깨지든 말든 용감합니다
내껀데 뭐~~~
애기 다루듯 조심조심 완료했네요
이분 드시는것도 조심스럽네요
요조 숙녀 맞읍니다
그사이; 장모님 부부도 마무리 되었구요
자가용 부부도 끝났답니다
우승이요?
아무나 하면 어때요
아까 교주님과 맞짱 떳던 분이시지요
오늘 이만 먼저 가신답니다
로님 사모님 이내 아쉬워 인증사진 같이하네요
안녕히 가세요
첫번째 만나는 연꽃 밭입니다
멋진포즈 부탁했지요
연밭에 여인입니다
역시 멋지네요
이분들은 뭐지?
단체사진 찍는거입니다
일종에 기자분? 아니 봉사자들이지요
저는 단체사진 안찍씁니다
대신 그배경만 찍었답니다
운길산에서 예봉산 이 모두 들어갔지요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다리는 신 양수대교입니다
바로 그 다리 아래로 갑니다
소풍입니다
맑고 환한 여름날
좋아하는 분들과 함께
아무걱정없이 웃고 떠들며
적당한 산책을 즐기고 있읍니다
이곳은 양수대교입니다
46번 경강국도 팔당에서 양평으로가는 긴 다리이지요
다리밑을 아무 생각 없이 통과합니다
그리고 정말 평온해 보이시지요
푸른 벌판에 파아란 하늘
그리고 그기운 받아서 쪽쪽 커가는 초록색 거인들이 말이죠
우리팀
그중 한나무 밑에 모였답니다
느티나무죠
쉬기도하고요 엤날이야기도 만들고요
이평화속에
저도 이야기 하나를 만들었답니다
옛날 옛날에
아주 오래된 옛날이었지요
이곳 양수리에 누나와 남동생 남매가 농사지며 살고있었답니다
여름 어느날 강원도쪽에 비가 많이와서
농토에 물이 불어서 농사를 망치게 생겼지요
그래서 둘은 밭으로 나가 이리저리 물길을 뚫으려 바쁘게 움직여
겨우 밭이 침수되는것을 막을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남동생 눈에
옷이 물에 젖어 몸에 바짝 붙은 모습의 누나가 들어온겁니다
그 모습을 본 동생은 고만 가슴 속 저만치에 있는
자신도 모르게 성적인 상징이 돌출하게 됩니다.
그후에도 동생은 누나의 그 모습을 계속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하던중
내가 어찌 누나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한단 말인가?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읍니다
그리고 는 마침네 결단을 내렸다지요
나 같은 놈은 세상에 있으면 안된다고요
나무에 줄이 걸려있지요
슬픈 이야기입니다
나무에걸린 줄을 보고
제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소풍 맞지요?
여유롭고, 즐겁고, 행복한 모습입니다
덥기는 하지만 모든것도 그런 생각인듯하네요
사진의 산은 예봉산입니다
예봉산의 협곡 입구에 옥녀봉이 있고,
그 산 밑에 미인촌이라고 하는 마을이 있답니다.
그 미인촌에는 대대로 끊이지 않고 절세미인이 나는데서 미인촌이란 이름을 얻었다지요
그런데 그 미인들이 어쩐 일인지 15,16세만 되면 죽는다고 하네요.
이곳 사람들이 말하기를 세상에 그들 미인과 짝이 될만한 준걸한 신랑감이 없기 때문에
하늘이 궁벽진 시골의 못난 지아비에게 줄 수 없다고 여긴 나머지 데려가는 것이라지요
그러나 실제는, 미인촌은 예빈산 아래 남양주시 팔당마을을 일컫는 것으로
이 곳은 예로부터 수많은 배와 상인이 통행하던 나루터였으므로
자연스레 술집과 예쁜 작부들이 모여들었고,
예쁜 작부들이 많다보니 미인촌이라는 이름이 생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답니다.
이 방향은 북한강 방향입니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이 325km 흘러 만나는 곳입니다.
북한강의 옛이름은 고조선 땐 북한강이 산간지역에서 흘러왔다고 산수(汕水)라고 했답니다,
이쪽은 남한강 방향입니다
강원도 태백시 대덕산 금대봉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이 394km를 흘러
이곳까지 왔답니다
남한강의 예날 이름은 낮고 습한 평지에서 왔다고 습수 (濕水)라고 했습니다.
이곳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쳐지는 곳입니다
이곳은 두물경(한강팔경 중 제1경) 상징석이 놓였습니다.
예부터 돌더미가 많아 ‘돌더미’라고 불렸던 두물머리,
두 물이 합쳐지며 수려한 경치가 펼쳐지고
새벽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광경은 두물머리 절경으로 꼽혀왔습니다.
'두물경'은 한국관광공사가 뽑은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됩니다.
두물경의 유래가 쓰여져있지요
두물경 앞 팔당 방향에있는 '족자도'입니다.
족자도는 무인도로 숲이 울창합니다.
이 섬엔 민물가마우지 최대 서식처로 섬이 쑥대밭이 됐는데,
그 이유는 가마우지의 배설물로 섬이 온통 하얗게 변했기 때문입니다.
족자섬은 일명 '머드럼산'이라고도 합니다
두물경 상징석이 보이는 곳에서
교주님의 심판아래 닭싸움이 벌어졌읍니다
교주님 귀여움을 독차지하기 위한 승부는
결국 이렇게 결판이 나버렸답니다
아멘!
그냥 그러네요
사람이 많지요?
여기가 정말 사람이 들끓는 곳입니다
그 만큼 볼거리가 많구요 접근하기도 쉬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살펴보지요
커다란 나무사이로 강물도 보이구요
그강에는 황포 돗단배도 있릅니다
더가까이 가볼까요
아 여기가 두물머리 나룻터입니다
지금은 과학적 측정을 통해 정확히 두 물이 합쳐지는 곳을 두물머리라고 하고 있으나,
옛날엔 민본주의로 사람이 왕래하는 곳을 위주로 지점을 정합니다.
즉 옛날엔 나루터를 중심으로 한 지점을 두물머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두물머리와 옛 두물머리가 위치가 좀 다릅니다.
옛 두물머리 나루터는 남한강 최상류의 물길이 있는
강원도 정선군과 충북 단양군에서 물길의 종착지인 서울 뚝섬과 마포나루(삼개나루)까지를 이어주는
마지막 정착지였지만 팔당댐 건설 후 물길이 끊기면서 옛 역할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두물머리나루터는 광주시 남종면과 양평군 양서면을 이어주던 나루터였습니다.
옛 두물머리 나루터 인근엔 약 40여 호가 거주했었고
배는 40여 척 정도가 있었습니다.
이곳에선 주로 땔감 등이 거래됐고,
주로 뗏목과 조운선 등이 이곳을 거쳐 한강으로 갔습니다.
이곳은 정선 아우라지에서 출발한 뗏목꾼들이 한강의 뚝섬, 마포나루 등으로
가던 중 휴식을 취하던 해상교통의 요지였습니다.
팔당댐이 건설되면서 선착장 기능은 완전히 상실했고,
양평호는 서울 사람들에게 먹을 물을 대는 식수원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또 다른 나루터 표시입니다
두물머리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에 대한 전설이 있습니다.
"옛날 서해바다에 하늘로 올라가 용이 되고픈 이무기가 살았는데,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까지 물을 타고 올라가면
하늘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이무기는 한강을 거슬러 강원도 태백시 금대봉 기슭 검룡소까지 갔지만
물은 거기서 끊겨 하늘로 오르지 못한 이무기는 끝내
용이 되지 못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전설에서 검룡소를 들먹인 걸 보니,
전설이 근대 이후 스토리텔링을 위해 생겼거나 오대산 서대 염불암
우통수를 검룡소로 바꿨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루 한구석에
저를 박아봅니다
많이 더운날인데
커다란 나무밑은 시원해 보입니다
그냥 시골동네 마을앞 정자나무 같지요
경치가 좋은 이곳
엣날에도 그림쟁이가 찾아왔나봅니다
조선시대 화가 겸제 정선도 이곳에 그림을 남겼답니다
이렇게 그렸다는데요
카메라로 그모습이 안나오네요
이곳에 명물이 또있지요
대형액자입니다
모두들 이곳에서 그림속 주인공이 되고 싶어합니다
액자속 여인 정말 멋진 그림입니다
두물머리 나루터를 지나면 평시엔 황포돗단배를 안 맸다가,
7월과 8월 연꽃 시즌에만 황포를 매단 돛단배가 보입니다.
황포돛단배는 2004년 국내 유일 조선(造船) 장인(匠人)이 건조했습니다.
멋진 황포돛단배와 함께 사진 한 장 찍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인 듯 합니다.
이분이 찍혔읍니다
사진을 찍는데요 배가 나와야 한다네요
저는 사진 찍을때 항상 배가 안나와야 한다고 했는데
재미있네요
아주 배가 잘 나왔읍니다
황포돛단배를 벗어나면 두물머리 소원나무가 나옵니다.
예부터 두물머리엔 소원을 들어주는 '도당할매와 도당할배'란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도당할매나무는 팔당댐 건설 때 안타깝게도 강물에 수몰돼
현재는 400년 된 도당할배나무만 남아 두물머리 랜드마크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도당할배나무 아래선 두물머리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도당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새로 자라났는데,
할매나무와 할배나무의 후손이라며 이곳에 들린 사람들은 ‘두물머리 소원나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두물머리 도당제 터(현재 쉼터)에선 예부터 기우제나 소원을 비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소원은 주로 기자속(祈子俗)으로 느티나무에 옷고름 등 헝겁을 매달고 남아의 잉태를 빌기도 했습니다.
또 이곳에선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 CF, 영화 등을 촬영하기도 한 곳입니다.
우리나라 나무 중 4대 장수목(長壽木)을 꼽으라면 느티나무, 은행나무, 팽나무, 회화나무입니다.
그 중 마을마다 신성하게 여긴 당목이나 도당목으론 느티나무가 가장 많습니다.
도당할배나무 아래 넓적한 바위가 하나 있습니다.
1974년 문화재청에서 발굴조사를 하는데,
북두칠성 성혈(性穴)이 새겨진 고인돌을 발견합니다.
북두칠성 성혈(Cup marks)도 새겨진 걸로 보아 청동기시대 만들어진
고인돌 덮개로 보인다고 추정했습니다.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론 청동검, 청동거울 그리고 고인돌 등이 있습니다.
고인돌 위 성혈의 지름이 10cm 미만이면 '알터'라 하고,
알터가 새겨진 바위를 '알바위'라고 합니다.
성혈의 지름이 10cm 이상이면 '용알터' 또 그 바위를 '용알바위'라고 합니다.
옛 조상들은 바위에 북두칠성을 성혈로 새겨,
다산과 풍요 또는 영원한 삶이나 무병장수를 기원했습니다.
고인돌 알림판입니다
두물머리 지금 때는 연꽃철입니다
여기저기 각종 연으로 가득하지요
그럼 지금부터 연이야기 좀 하겠읍니다
제친구가 이근처에있는 영화촬영소 소장을 했었는데요
그곳에는 심청이가 들어갈만한 큰 연꽃이있다네요
연꽃은 저녁애 오무렸다가 아침에 벌어지는데요
그정도 큰연꽃은 벌어질때 소리가 크게 들림답니다
쩌억~~쩌억~~하구요
환상적 일것 같지 않나요?
연꽃은 아침저녁으로 3,4일 피고 접고를 반복한다지요
특히 아침에 꽃입이 벌어질때 자체 발열로 꿀과 향기가 많이 발산한다지요
그래서 3째날 쯤 저녁에 꽃입이 오므러지기직전 녹차잎을 꽃속에 넣어두고
꽃을 묶어 논답니다
그러면 아침에 꽃이 피려고 몸부림치며 녹차에 연꽃향이 가득 베어들겠지요
그대로 비닐에 싸서 냉동실로 보관하여
차를 마실 때마다 탕기에 울려서 먹는답니다
연꽃 녹차차가 되는 거지요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지요.
진흙이나 더러운 물에서 자라지만 결코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아름다운 연꽃은 마치 세속에 있으면서
그곳에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는 깨달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부쳐님의 탄생설화에도 연꽃이 등장합니다
부쳐님이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해 사방으로 각각 일곱 걸음을 걸었는데
옮기는 걸음마다 수레바퀴 같은 연꽃 송이가 피어올랐다고 전한다지요.
그래서 석탄일 연등을 켜는 이유이지요
연꽃은 활짝 핀 꽃이 이쁘지만
사실 옛사람들은
이렇게 봉우리로 있을때 가장 아름다움을 느낀답니다
피게되면 얼마나 아름다울까를 상상해서이지요
연의 종류를 알아볼까요
붉은색을 띠고있으니 당연히 홍련이겠지요
요건 수련입니다
요건 무슨년일까요?
맞다! 2개가 같이있으니 쌍년이네요
그럼 요건?
하나가 삐죽 나와 있으니 도도한년?
그럼 요거는?
숨어있잔아요
그래서 수줍은년이지요
이건 흐트러져있지요
그래서 미친년
이건 늙어서 다 버껴졌네요
늙은년이지요
참이쁘네요
그래서 이쁜년
요건 화려하지요
그래서 화냥년입니다
연꽃 구경도 끝나고
또 게임을
홀쭉이 선발대회를 합니다
쉽지 않네요
탈락!
이렇게 웃고 떠들고
두물거리 트레킹을 마칩니다
종착지인 양수역으로 가기전 상춘원과 배다리(열수주교 洌水舟橋)로 연결된 세미원이 보입니다.
상춘원은 진귀한 나무들이 있는 정원으로 세미원 입장권을 지참 시 볼 수가 있습니다.
세미원은 온갖 연꽃들이 만발한 곳이지만, 입장하지 않았답니다 돈을 내라랍니다
이렇게 입구를 바라보는걸로 만족했네요
교주님 힘드시죠?
얼굴표정에 힘듬이 역역합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교주님이있어서 우리또한 행복했답니다
그리고 다음이 또 기다려 집니다
정말 정말 우리는 교주님을 믿읍니다
집에가는 전차에서도
여교우 들에 은총을 주기위해 여념이 없으십니다
종현교 교주는 여자는 무조건 사랑하시는 분이잔아요
그래서 신도의 90%가 여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