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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6. 강화나들길3코스

1,2코스를 사모님과 같이했지요

이번이 벌써 3번째이니 이대로 같이 전구간 마무리 가능 할 것 같네요

마누님 스케줄을 배려하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어요

오늘은 가정의 달  연휴인데요 그 중 가운데 날입니다

전날은 회사일 때문에 개인적으로 움직이는게 불가능했구요

그래서 오늘 가기로 오래전부터 이야기가 되었는데

비가 오네요

오후에는 개인다는 예보가 있어' 그냥 출발했답니다

비좀 맞지 뭐~~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대성공입니다

금방 끝쳤거든요

전등사가 있는 온수리에서 시작하는데 전등사는 3코스에 공식적인 코스는 아니지요

하지만 당연히 둘러야 할만한 가치가 있지요

3코스 고려왕릉 가는길입니다

흔히 고려왕릉이라고 하면 수도인 개성 인근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강화도에도 희종의 '석릉(碩陵)', 원덕태후 유씨(아래 원덕태후)의 '곤릉(坤陵)', 고종의 '홍릉(洪陵)',

순경태후 김씨(이후 순경태후)의 '가릉(嘉陵)' 등이 있답니다.

그리고 가릉 근처에있는 능내리 석실분이라는 왕릉급의 고분으로 추정되고 릉이 또 있답니다.

아마 몽고를 피해 천도했던 기간에 돌아기신 분들의 묘이겠지요

그러니 강화도에 있는 고려왕릉은 대부분 관리 상태가 좋지 못하겠지요.

왕릉이라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초라하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강화도의 고려왕릉은 무신정권과 대몽항쟁의 시대를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이지요.

그 왕릉중 홍릉(고종)을 빼고는 이곳 3코스에 있답니다

그래서 왕릉가는 길이라 이름 붙여 졌나 봅니다


오늘 걸어간 흔적입니다

전등사 입구인 온수리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버스 정거장 뒤 나들길 영사관이 있지요

거기서 비자 도장을 받고요 공식 출발합니다

전등사를 가기위해 조금의 헤깔림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좀 헤메기는 했지만 어때요 걸으려 나온건데요

전등사를 강화내성  북문으로 접근했답니다

그리고 정족산 사고를 거쳐 전등사를 보고나서

그후 3코스 정식코스로 연결 본격적인 탐방이 시작됩니다

헤메며 완던길은 2번째 지날때는콧웃음이 나오기도 했지요

길정저수지, 이규보 묘지, 곤릉, 석릉 그리고 가릉으로 마무리하는 코스가 3코스입니다


좀 헤메었는데도 18Km가 안되네요

시간은 큰 의미가 없지만 7시간15분 걸렸네요

그래도 비 때문에 걱정 많이 했는데 무사히 마쳤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요

09:50

강화도 수도사업소에 도착했읍니다

지난번 왔을때도 이곳에서 시작했지요

건물 바로옆이 공영주차장입니다 

나무사이 차량 서있는것 보이시나요?

휴일이라서인지 빈자리도 많이있구요

물론 주차료도 안받읍니다


뒷편으로 온수리성당 모습이 보이지요

지금은 비가 오고있는 중 입니다

일단 비자를 받아야하잔아요

전등사 입구 버스정거장 쪽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점심을 준비하지 못했지요

김밥을 준비합니다

명품 김밥집입니다

여기서 김밥을 준비합니다

탁월한 선택입니다 맛이 참 좋았어요

이집 유리창 안에 보이는거 있지요?

수제 도마입니다

김밥 사는 동안 눈에 확띠어서

흥정을

이쁘고 저렴한 것으로 하나 구입했답니다

사장님 동생분이 취미로 만든 거랍니다

재주도 좋으시지요?

이제 준비도 끝났으니

비자를 받아야지요

영사관이 밖으로 나왔네요

비는 오지요 찍기는 찍었는데

빗물에 자국이 시원치 않군요

자세히보면 보이는데 관리들이 보내줄지 모르겠네요

우산쓰고 출정 기념사진 남깁니다

셀카로 했는데

우리 사모님 얼굴 작게 보이려고 자꾸 뒤로가네요

그리고 출발입니다

일단 전등사가 목적지인데

나들길 표시대로 진행합니다

감사문이 있지요?

둘레길,올레길 등 이런길 여러군데 다녀 보았는데요

부자동네는 표시도 못하게합니다

부자들은 사람다니는 것을 싫어하나 보지요

어째든 감사문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요 한참 가다보니 전등사와 자꾸 멀어집니다

이건 아니지 뒤로 빠꾸합니다

전등사로 질러가려고 온곳입니다

기독교 온수교회라고 되어있네요

교회 꽃밭에는 야생화가 가득합니다

이꽃은 매발톱이지요?

이쁘네요

이곳에서 교인에 물었답니다

전등사요?

이길로 가랍니다

비오는 산길이지요

가래면 가야지요

숲길에는 나들길 리본도 있읍니다

의심 할 수도 할리도 없지요

그런데

너무 좋읍니다

비가 촉촉히 내려주고요

바닥은 푹신하고요

각종 산속 나무 냄새가 혹시 피톤치드?

경사도 완만하구요

기분 좋게 가기는하는데

좀 길지요?

잘못왔나?

의심이 나네요

거진 20분쯤 올라왔는데

우리가 온 방향은 성공회성당 (1.59Km) 올라가는 길은 갈화내성 북문(0.6Km)

어떻든 성안으로 들어가면 전등사입니다

북문 방향으로 가야지요

전등사는 맞는데 돌아서 왔네요

다시 말하면 반대로 왔다는겁니다

600미터 북문가는 길은 상당한 경사지 이네요

그래도 길은 이것 뿐입니다

600미터가 그리 길지는 않읍니다

성이 보이지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로 인해 삼랑성이라고 한답니다.

일명 정족산성이라고도 부른다지요..

성 내에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 (3841)에 창건된 유서 깊은 전등사가 있으며

고려 고종 46년(1259)에는 이 성안에 궁궐(이궁)을 지었으나 현재는 무너지고 터만 남아 있다합니다.

조선 고종 3년 병인 양요시 양헌수장군이 이 성을 침입하는 프랑스군을 무찌른 전승지 이기도 하다지요

이 성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이 있고 남문을 제외한 3개 문에는 문루가 없고요 

지금 이문은 북문입니다

문루는 커녕 문이라 하기에 너무 작지요

문을 달었던 흔적도 없읍니다

그만큼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는 아닌듯합니다

 성벽은 거친 할석으로 축조되어 있지요

여장 부분도 없구요

시기적으로 보아 많이 회손되었을텐데

복원하지 않았나 모르겠네요

성내부입니다

외부와달리 흙을 쌓아 경사지게 하였네요

해미읍성이 이런 형태이지요

북문쪽 내부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 출입이 많지 않은듯

숲이 거칠게 형성되었네요

그리고 바로 기와집이 보입니다

정족산사고입니다

이곳은 한때 그유명한 조선왕조실록이 보관되었던 곳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정족산에있는  역사 史, 창고 庫라해서

정족산 사고라 불렀답니다

그래서 건물이 문서를 보관하기 좋게 통풍시설 등이 완벽하게 지어졌겠지요

원래 조선왕조신록은 그중요성으로 인하여

그 서책을 4개 복사본으로 만들어

한성의 춘추관, 충주,성주, 그리고 전주 사고에 나누어 보관하였답니다

일종의 BACK-UP 개념인 것이지요

그런데 임진왜란때 모두 불타고 전주사고 보관분만이 남았다지요

정말로 백업기능 역활을 제대로 한 것이지요

그 후 유일하게 남은 1부를 잘보관하기위하여

묘향산으로 갔다, 마니산으로 갔다가 이곳으로 옮겨 놓았답니다

지금은 그 원본이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지요

이집은 기념으로 복원한 집이랍니다

포토존입니다

비오는날 정족산 사고 인증합니다

이제 전등사로 들어갑니다

전등사 담장앞입니다

앞부분에 축대를 쌓은 넓은땅

뭔가가 있었을법 하지요?

정족산 사고를 지키는 군인이있던 집이랍니다

이름은 정족진이라합니다

제 기억에는 이쪽으로가면 고려 궁궐터가 있었나?

잘 모르겠네요

이젠 시간이 없지요

비오는 전등사 경내 모습입니다

전등사는 대웅전이 유명하지만

화장실이 급해서 근처에 있는  무설전부터 보기로합니다

무설전은 반지하라고 해야 하나요?

축대속에 만든 법당입니다

말그대로 설교가 필요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중앙에는 멋진 불상이 5개가있고요

주변에는 현대 미술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 서운이 들어섰다.
다시 말하면 갤러리 서운과 법당 '무설전(無說殿)이 겸용 사용한다 보면 됩니다.

그래도 법당 무설전이 우선이지요

법당 내부의 전체 구성은 디자이너 작가가 꾸몄답니다.

천장에 단청을 칠하지 않고, 등롱(燈籠) 프레임에 분홍색 등을 넣은 꼬마 연등 999개를 설치 작품처럼 배치해서

사실 법당같은 느낌은 안들지요

그리고 주변은 갤러리로서 전등사에 소장된 현대미술가들의 그림 150여 점을 번갈아가며 전시한다 합니다


자이제 무설전입니다

무설전의 본존불은 광화문 세종대왕 상을 제작햐셨던 김영원작가가 제작했답니다

청동으로 불상을 만든 후 자동차 도색에 쓰는 흰색 우레탄 도료로 칠했다지요.
본존불 얼굴은 석굴암 본존에서 영감을 받아 .
본존불 뒤의 후불화(後佛畵)는 프랑스 유학파인 오원배 작가가 그렸답니다

부처나 뒤 탱화도 미술 작품인 샘입니다

석가모니 본존불 좌우에는

보살이 2분씩 앉아있읍니다

맨 왼쪽 이분은 지옥에서 우릴 구제하시는 지장보살이시고요

그리고 걸그룹닮은 이분은 보현보살이십니다 

본존불 오른쪽 아이돌 닮은 이분은 세조임금의 피부병을 치료해 주셨다지요

문수보살이십니다

그리고 맨 오른쪽 이분은 자비의 상징 관세움보살님이십니다

이제 전등시 경내로 진입합니다

계단을 넘어 전등사라 쓰인 누각을 통과해야합니다

누각의 높이가 참 애매하지요?

일부러 이렇게 낮게 지었답니다

조선때 유교 우선 정책에 갓쓴 선비들이 거들먹 거리며

절에 왔다지요

그 꼴이 보기 싫어서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라고

높이를 낮게 했답니다

누각을 지나면 바로 대웅보전입니다

아주 유명한 곳입니다

예전에 도목수가 현재로 말하면 건설현장 소장이지요

전등사 건축을 수주했답니다

예나 지금이나 건설 담당자는 화류계에 강했나봅니다

마을 함바집 아줌씨와 연분이 생겼다지요

그래서 번돈을 그 아줌마에게 가져다 받쳤다지요

공사가 끝날무렵 더 이상 먹을게 없다고 판단되자 여자가 도망 쳤답니다

참순진한 현장소장 어찌하겠어요

허망하고 괘씸했겠지요

그 여자의 나상을 조각해서

처마 4모서리에 올려 놓았답니다

사랑을 배반하고 도망친 죄로 무거운 처마를 평생 지고 있으라는 뜻으로

그것도 나체로 말이지요

이게 전면 오른쪽이구요

전면 왼쪽입니다

유명하긴 한가봅니다

모조품을 만들어 놓았지요

노가다인 저도 그 목수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의미로 기념 사진 하나찍읍니다

비오는 전등사

우리 사모님도 왔다갔다는 기념사진 하나 남깁니다

전등사는 이제 고만 해야지요

동문으로 나갑니다

동문 바로 전에

비각이있지요

병인양요(프랑스)침공시 이곳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친

양헌수 장군의 승전비입니다

이걸 관연 승전했다고 보아야하는 것인지?


아름다운 동문의 모습입니다

벽돌로 홍예를 만들었지요

주변의 활석과 아주 잘~알 어울립니다

홍예속 우산쓴 여인네도요

전등사 매표소입니다

입장료가 3000원이네요

길 잘못들어 헤메인것 같기는하지만 덕분에 3000원씩

6000원 아꼈지요

전등사 주차장을 거치고

다시 원래 여권 도장찍는 버스정거장으로 왔읍니다

조금은 웃음이 납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은데요

다시 시작합니다

차 세워논 주차장 옆이지요

무거운짐 차에 넣어두고

비도 약해지고요

갈만합니다

비가 많이 그쳤읍니다

우산을 폈다 접었다를 반복합니다

멀리 산도 구름이 많이 걷혔네요

농가 꽃밭에 금낭화가 이쁘게 피었읍니다

황금 金 주머니 囊 꽃 花 금낭화입니다

주머니 囊(낭)이 생각납니다

낭중지추 [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으로,

뾰족한 송곳은 가만히 있어도 반드시 뚫고 비어져 나오듯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은 남의 눈에 띔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금낭화 역시 빼어난 아름다움입니다

강화 체육관을 지납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농가마을입니다

부지런한 농부들

벌써 봄농사 준비가 끝났네요

무럭무럭 자라기만하면 됩니다

12:00

길정 저수지입니다

저수지길 그리고 이규보 묘지길 선택하라지요

이규보 묘지길이 조금 길지요

그럼 그리로 갑니다

저수지를 끼고 오른쪽으로 갑니다

먼산에 구름이 걷치는 모습이 보입니다

날이 정말 갇기 좋읍니다

쭉~ 가는길이 농가 마을입니다

시골에 조막만한 땅도 없는 우리는

이곳 주인인듯

이곳에 증거 남깁니다

우리도 이런거 하나 살까?

돈도 없으면서

그리고 그 마을입니다

들어가는 입구가 우리 걸음을 멈출 만큼 이쁘네요

기념사진 한장더 합니다

이어진 곳은

멋진 펜션입니다

사모님 사진좀 찍어달라네요

전화번호보고 언젠가 와서 자구 싶다구요

그리고 목초지가 있읍니다

소를 키우나? 농장을 하나?

사실 내가 알바는 아니지요

멋지기만 하면 되지요

그집 사과나무에 꽃이 활짝입니다

이게 부러울 따름입니다

오늘 비에 더욱 풍부해 졌네요

시골 마을 눈이 즐겁습니다

여긴 보리밭입니다

이삭이 제법 보리 같읍니다

보리가 보리 닮은게 이상한가요?

영화속 같네요

보리를 더 근접해봅니다

아직 알곡이 덜 아물었지요

지나가는 길은 농부의 일터입니다

그 만큼 일한 흔적이 밭에 있읍니다

파,부추,고구마,....우~~골고루도 심으셨네요

모내기 준비도 끝난거죠?

이정도면요?

포도 나무도 봄볕에 싹이 제법 자랐답니다

사슴 농장도 있네요

이 녀석들 처음보는 사람이 신기한 듯 바라봅니다

뿔이 없네요

누군가의 목숨을 살리는데 썼겠지요

마을회관입니다

실내체육관 인가요 이촌구석에?

게이트볼 장입니다

그렇지요 주민들 맑은날은 일하고 비오는 날이나 되야 게임을 할수있겠네요

잘하는 일입니다

철판에 구멍을 뚫어서 간판을 만들었네요

멋진 마을 사시는분들은 생각도 멋지시네요

이고을 지나면서 조기 멀리

이규보 묘역이 보입니다

이규보는 고려의 문호로서 관직이 문하시랑평장사()에 이르렀다 합니다.

시문에 뛰어나 호탕한 민족 영웅시인 《동명왕편》과

8만대장경의 기원문인 《대장경각판군신기고문()》을 지었고

저서에 《동국이상국집》등이 있답니다

어렵지요 쉽게 이야기하면 무신정권시대에 문관이었답니다 (딸랑딸랑?)

고려왕조의 빛나는 문사 이규보의 묘는 상당한 명당이랍니다.

묘역 뒤로는 푸른 잔솔이 에워싸고 있고,

먼발치 앞으로는 수령이 상당해 보이는 곧게 뻗은 소나무 대여섯 그루가 수문장처럼 서 있는데 기품이 수려하고 늠름합니다.

주변의 넉넉한 기운과 어울려 한결 풍정을 좋게하지요

현재 묘역에는 상석과 장명등(長明燈:무덤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이 있으며,

좌우에는 문인석·무인석·망주석과 석양(石羊) 한 쌍씩이 세워져 있다.

봉분 하단은 둘레돌이 둘러쳐 있으며 1967년 후손들이 묘역을 정화하고있답니다

이는 같은시기에 조성된 고려 왕릉보다 더 잘가꾸어져있지요

그시절 세도가의 묘 답다는 생각입니다

왜? 양이 여기에 있는지 모르지요?

이규보가 양띠인가요?

어째든 석양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고려시기의 조각으로 평가되고 있다지요

묘 주변의 석물 중 문무석은 매우 고졸하여 당시 유풍을 알 수 있는 귀한 조각이랍니다,

특히 눈꼬리가 위로 치켜있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듯하지요

제생각은 무서운사람 즉 몽고사람을 표현한게 아닐까요?

귀신도 무서워서 도말가도록 말이죠

이문무석 모양은 고려왕릉에도 계속됩니다

묘역의 오른편에 재실(齋室)과 왼편의 유영각(遺影閣)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답니다.

 오늘 점심은 이곳에서 해결했지요

비오는날 지붕이 되어주니 가장 적당하더라고요

그래서 기념사진 한장 남겼답니다

이규보 묘를 넘어서면

울창한 송림입니다

그리고 내려서면

연등 국제선원이라 하지요

사찰인가요?

현대식건물인데

차량이 많이있지요

오늘휴일이라 신도들이 많이 찾아주셨나봅니다

이분이요?

이 국제선원의 포교사님이시랍니다

선원에대한 말씀 그리고 불교에대한 폭넓은 말씀 많이 해주셨읍니다

외국인 신자들이 많이 오신다지요

기회되면 이곳에서 템풀스테이 한번 해보고 싶네요

뒤로 제법 사찰 같은 모습이 보이지요

대웅전도 보입니다

연등국제선원이잔아요

부처님오신날도 다가오고요

그래서 인지 연등이 조화롭게 있네요

국제선원을 나오면 다시 숲길입니다

오늘 숲길이 참 좋읍니다

비온뒤가 되서 그런지 더욱 좋아보이네요

쭉쭉 뻗은 송림입니다

피톤치드가 팍팍 나오고있지요

안보이십니까?

보인다구요 맞아요 팍팍입니다

송림을 지나면

동화속에나 있을법한 흙집이 나옵니다

나들길 팬션이라네요

정말 한번 자보고싶은 이쁜집 입니다

그집 전경이구요

정말 집도 멋지지만

주변 조경도 맘에 쏙 드네요

산책길 안내도입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주인이 어떤분인지 보고 싶네요

그리고 길을 건너면

디딤원이란 식품공장으로 길이 이어집니다

잠깐 알바를 했지요 설마 공장안에 길이 있겠나 해서요

그런데 그러네요

아마 떡 같은걸 만드나봅니다

방아체험 박물관이있는데 일요일이라 문이 잠겨있네요

한번 보고싶었는데

공장 끝에 다시 숲으로가는 계단이있지요

정말 오늘이 걷기 제일 좋은날 인가 봅니다

반복되지만 너무 좋읍니다

나들길 리본을 보면서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네요

다시 숲이 지나고

축산 농가가 나옵니다

소가 저리 많은데 분료 냄새가 안나지요?

유기농법인듯하네요

강화 화이팅!

길건너고

개가 길을 막고있는 작은집을 돌아

또다시 숲으로 올라섭니다

보세요

숲하고 하늘하구요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지도상으로 곤릉이 있는데

저 계단? 현대식인데?

혹시 모르니 올라봅니다


이런 어느 부자집 무덤입니다

실망하고 내려갑니다

다시 넝쿨을 헤치고

지난 가을 한목을 한 허수아비와 인사를 나누고

거친 숲을 헤치고 리본 따라 갑니다

가는길에서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갑니다

뭔가 시설물이 보이지요

여기가 곤릉입니다

보통 능이라고 하면 왕과 왕비, 대비의 무덤을 이야기한다지요.

왕과 달리 왕비나 대비의 경우 일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치적이나 자세한 에피소드를 알기는 어렵지요.

곤릉의 피장자인 원덕태후도 마찬가지인데,

<고려사>에는 원덕태후와 관련한 짧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답니다.

기록을 살펴보면 원덕태후는 본래 유씨가 아닌 왕씨 성을 가진 종실의 후예로,

왕성의 딸로 기록하고 있다.

희종이 폐위된 이후 강종이 즉위하자 '연덕궁주'로 책봉이 되었으며,

책문에는 '타고난 현숙한 자질과 옥같이 아름다운 모습을 지녔으며,

오로지 착한 마음과 온유한 행실을 지녔다'고 적고 있다.

강종과의 사이에서 고종을 낳은 원덕태후는 1239년 세상을 떠나고,

아직 대몽항쟁이 끝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곤릉은 강화도에 조성되었다.

참 초라하지요

아까 지나온 이규보 묘보다도 초라합니다

아니 아까 속아서 올랐던 부자집 묘보다도 초라하지요

어째든 여기 온기념을 합니다

곤릉의 경우 가는 길의 일부가 개인 사유지라 초행길이라면 다소 찾기 어렵다.

출입금지 푯말이있는데 무시하고 올라야합니다

이제 석릉을 향해 달려갑니다

여기는 어디냐?

팬션이 쭉있고요 텃밭이지요

농부같지 않은 농부가 밭을 가꾸십니다

솔직히 농부 아니지요?

그렇다고 하시네요

인천에서 주말농장

이건 복분자구요

이건 고구마 입니다

주말마다 열심히 시랍니다

아직은 구입한지 몇해가 안되서겠지요

잠시 그집을 우리집인듯 포즈를 취해봅니다

250평인데 총 3억 투자하셨다네요

부럽습니다

다시 계단을 오르고

계단끝에 거울이?

나들길 순례도 예의가 필요한가봅니다

만나는 사람에게 이쁘게 보일 필요가있지요

흩어진 모습보단 훨씬 좋겠지요

어째든 고맙습니다

그리고 샘물을 만납니다

목이 마렵고해서 한모금 해야 겠네요

하지만 바로 참기로 했읍니다

겁나네요

그리고 잠깐입니다

석릉 간판이있지요

빨리 보고싶습니다

석릉을 만나는건 쉬운일이 아니네여

언덕이 심해요

석릉입니다

돌石자 석릉입니다

강화도 나들길 3코스 능묘가는길의 대표 표식이 여기있읍니다

물론 고려 왕릉 그리고 이규보 묘등 릉과 묘가 많은길이라 그런 이름을 가졌겠지요

석릉은 고려 21대 임금 희종의 묘입니다

1.태조 2. 혜종 3. 정종 4.광종 5.경종 6.성종 7.목종 8.현종 9.덕종 10.정종 11.문종 12.순종 13.선종 14.헌종 15.숙종 .

16.예종 17.인종 18. 의종 19.명종 20.신종 21.희종 22.강종 23.고종  24.원종 25.충렬왕 26.충선왕 27.충숙왕 28.충혜왕

29충목왕 30충정왕 31공민왕 32우왕 33창왕 34공양왕

고려임금 34명의 순서입니다

이중 강화천도시절은 23 고종, 24 원종 입니다

강화도에 있는 고려왕릉 중 21대 희종의 '석릉'은 강화 천도 이전에 왕이었지요

그런데 어떻게 강화도에? 당연히 의문이 들지요

석릉이 강화도에 있게 된 배경을 이해하려면 무신정권 시대의 특징을 이해해야 하는데,

희종은 당시 실권자인 최충헌에 의해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를 갔던임금입니다
'무신정권(武臣政權)'은 고려 의종 때 무신들의 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던 시기를 말한다.

이때 의종은 폐위되고, 의종의 동생인 왕호가 왕위에 올랐는데 이가 명종이지요.

무신정권에서는 집권자의 의지에 따라 왕을 입맛대로 교체하는 일이 잦았다.

대표적으로 이의민을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한 최충헌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최충헌은 집권 후 명종과 태자인 왕오를 폐위시켰다.

이후 명종의 동생인 왕민을 왕위에 올리니 이가 신종이구요.
희종은 신종의 맏아들로,

희종이 즉위할 당시 이미 모든 실권은 최충헌에게 있었기에,

이 시기 고려의 왕은 말 그대로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겉으로는 최충헌에게 비위를 맞추며 왕위를 유지했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희종은 1211년 측근을 보내어 최충헌을 궁으로 유인한 뒤 암살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암살은 실패로 끝나고, 이에 격분한 최충헌은 희종을 폐위한 데 이어 강화도로 유배를 보냈다.

그리고는 자신이 폐위시켰던 명종의 태자 왕오를 옹립하니 이가 강종(재위 1211~1213)이다.

이때 재위에 오른 강종과 원덕태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고종이니,

강화도의 고려왕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신정권의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총 5단의 석축으로 이루어진 석릉은 1단에 돌로 쌓은 곡장과 봉분, 훼손이 심한 석인상이 하나 자리하고 있으며,

2단에는 표석과 함께 또 다른 석인상이 자리하고 있읍니다.

석릉의 석인상과 관련해 <강화 고려왕릉의 석물연구> 논문에 따르면,

곤릉이나 홍릉, 가릉의 석인상과 달리 조각 수법이 다른 점을 들어

다른 곳에서 있던 석인상을 석릉에 가져다 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죠? 앆본 문인상보다 많이 순해보이죠?

저와 비교해 봅니다

비숫한가요?

제가 봉산탈춤 같다구요?

그럼 문인상이 더 한국사람 같다는거지요?

심하게 훼손된 문인상입니다

여기도 비교해보지요

정말로 똑 같지요?

정말로 똑 같지요?

이렇게 석릉을

기념하며 고려왕릉 가는 길 속에 빠져 봅니다

다시 가야지요

진강산으로 갑니다

무덤이있는

꽃으로 가꾸어논 밭을 지나고요

이제 카토릭 대학 부지에 들어섭니다

출입금지라 쓰여있지만 별로 다른 방법이 없네요

그냥 무시하고 갑니다

대학건물이보이기 시작하고요

울타리가 쳐져있읍니다

들어가지 말라는 걸까요?

나가지 말라는 걸까요?

울타리 넘어에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조형물로 설치되어있읍니다

카토릭대학 답다 하겠지요

가는길에

앙증 맞지요

쉼터입니다

당연히 쉬어갑니다

쉬지 않을 방법이 없는 가꿈입니다

특히 다리없는 의자가 눈길을 끄네요

그리고 계속해서 숲이 연결됩니다

이제 물좀 먹었으면하는데

팬션입니다

물좀~~

줄사람이 없네요 그냥 참습니다

그리고 만나는 정자

이곳이 진강산 줄기임을 알려주네요

그지요

진강산 그리고 능묘가는길 의 이유도 쓰여있읍니다

17:00

그리고 이제 마지막 여정인 가릉입니다

가릉은 원종의 부인인 순경태후의 무덤입니다

비운의 왕 원종이지요

무신정권의 눈치보랴 몽고와 항전하랴

그 아내인 순경태후는 어떻겠어요

고종의 아들인 왕정(=원종)과 혼인하여 '경목현비'로 책봉이 되었다가

이후 왕정이 태자로 책봉되면서 태자비가 되었답니다.

한편 원종과의 사이에서 충렬왕을 낳았는데, 출산 과정에서 세상을 떠났다지요.
당시 개경으로 환도하기 전이라 강화도에 능역이 조성되었다니다.

이후 원종 때 정순왕후로 추존이 되었으며, 아들인 충렬왕 때 순경태후로 격상되었답니다다.

강화도의 고려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석실의 내부를 볼 수 있다는 점과

가릉의 뒤에 좌우로 석수 1쌍이 세워져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무덤 뒤 좌우에 설치된 석수모양입니다

문인상입니다

다시 그모양으로 돌아왔읍니다

무서운 몽고인이 지키게해서 귀신들이 침범못하도록

가릉 관람을 마치고 오늘의 순례를 마무리하는데

단체로 오신분들이 계시네요

나들길을 단체로 하네요

반갑지요. 수고하셨읍니다

자 이제 마무리 해야지요

어쩌지요 능내리 석실분을 보지 못하고 왔네요

다시가기 싫지요

4코스 할때 보고 가지요

이제 마무리합니다

주차장으로가는길

위에서 본 마을입니다

전원주택단지 이군요

이제 농촌도 이런 방향으로 가야하나 봅니다

언젠가 경관 농업이란 말을 들었는데

단순히 식량 생산보다는 보기도 좋으면 더 좋겠지요

그냥 겨우 사는 삶이 아닌 삶의 질을 높이는 그런 농촌이요

17:00

10시에 시작했으니 꼭 7시간 소요했읍니다

출입국 관리소를 둘러서 마무리합니다

출국 도장 받읍니다

여권에 출발 도장이 비 때문에 흐려졌네요

그래도 자세히보면 보이니까

인증해주시겠지요

온수리로 가야하는데 차편이 해결 안되네요

결국 간판보고 편의점까지왔읍니다

편의점 오면 정보가 있을까 해서요

목이 말라 물도 하나사서 한 모금하고요

하지만 동네분들 버스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네요

그져 버스가 다녀요 정도입니다

할 수 없이 114 이용해서 콜택시 타고 마무리합니다

이렇게 인증 사진과 함께요

강화도 나들길 3코스 능묘가는길입니다

전등사에서  시작해서 강화도의 평범한 농촌 마을 거치고

고려 무신정권에 협조한 문인 이규보 묘도 보고요

그시절 정말 고생이 많았던 왕릉들

곤릉 석릉 가릉도 보면서

고려  무신정권과 항몽에 대한 생각을 잠깐 해보았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