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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2018.03.17.쫓비산

매화

장미과의 낙엽소교목이며 열매를 매실이라 부른다

선인들은 ··를 추운 겨울철의 세 벗이라는 세한삼우(歲寒三友)로 귀하게 여겼고,

매란국죽 사군자 중에서도 매화가 으뜸으로 쳤으며,

매화를 즐기는 법을  '사귀(四貴: , , , )'라 하여

꽃은 무성하지 않고 드문 것을(),

어린것보다 늙은 노목을(),

살찐 것보다 야윈 것을(),

활짝 핀 것보다 꽃봉오리를() 귀하게 여기는 꽃"을

매화의 진 면목을 보는 방법이라 합니다.

또한 매화는 망울 때, 만개 때, 낙화 때 세 번은 보아야

진짜 매화를 보았다 할수있다

봄의 전령사 매화를 보기위해

매화축제가 열린다는 광양 매화마을을

그 곳만 간다면 너무 무의미해서 그 뒷산 쫓비산과 함께

블랙야크 역사문화탐방 동행했읍니다

전종현을 아시나요?

서울시문화해설사이구요

블랙야크 역사문화 세르파이십니다

그리고 블랙야크 역사문화 탐방을 6년째 주관하고 계신분 이십니다

이 행사를 1년에 10번씩 6년을 운영했다합니다

이 분은 엄청난 지식을 소유하고 계시며

그 지식을 재미있게 전달하는 달변을 가지고 계십기는 하지만

여자 만 좋아하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기도합니다

오늘의 산행은

산행이 맞지요?

버스가 구례쪽으로 접근해서 관동마을에서 시작합니다

하지만 차가 무척 밀리지요

정확히 말하자면 관동마을 500미터 전방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관동마을 계밭골 갈미봉 바람재 쫓비산 그리고 매실농장 으로

매실농장 주차장으로 버스가 오지 못해서

또 아스팔트길 2Km를 걸어서 마무리합니다

시작도 늦었지요

12:35 시작해서 18시20분 마무리합니다

집에 어찌가나 했는데 그래도 오늘 안에 들어갔답니다

이 분이요

어찌나 말씀을 잘하시던지

어떤 분이 질문하시네요" 혹시 자격증 가지고 계십니까?"

깜짝 놀랐잔아요 자격증이 없으면 어쩌나해서요

다행히 "서울시문화관광해설사"자격을 가지고 계십니다

질문 하신분은 아마 약장수 인줄 아셨나 봅니다

다 끝나고 가는 길에 만병통치약 사라고하시면 어쩌나 고민하신 듯

걱정마세요 약장수 아닙니다

언젠가도 이런 봉변을 많이 당하셨는지

자기 소개할때 신분증을 보여주시곤 했지요

약장사 아닙니다

확실히 자격증이 있으십니다

서울시문화관광해설사 11기 이십니다

약장사 아니 이분의 역사 해설은 계속되는데

모두들 집중도가 떨어지지요

똘똘하게 생긴 이분 빼놓구요

이분은 경청에 메모까지 합니다

사실 이분은 종현교 전도사입니다

말이 전도사지 사실은 바람잡이이지요

일당이요? 노란 봉투로 받읍니다

그러는중 그렇게 버스로 6시간을 달려왔읍니다

12:35

밀리는 버스에서 하차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약 500미터를 가야 관동마을 입니다

길이 워낙 밀려서 걸어서 갑니다

그런데 왼쪽 매화나무가 껌껌하지요

작년 이맘때 흰색인 눈부실 정도였는데

지난 겨울 워낙 추웠었지요

개화 시기가 예년보다 좀 늦은 듯하네요

왼쪽 파란버스가 우리를 태우고 온 버스입니다

아주 새차입니다

뽑고 손님 받은지 2번째라지요

어째든 차는 못가고 사람은 다 내렸서 걸어서 갑니다

500 미터가 생각보다 짧지요

벌써 관동마을 정자가 보입니다

처음이라 모두들 쌩쌩 합니다

그리고 길건너니

"매화와 섬진강의 마을"

"자연을 닮은 사람들이 사는곳"

여기가 관동 마을 입니다

등산로 입구는 조금 더 가야하지요

이정표가 되어있읍니다

이곳 관동마을도 매화농장에서 시작합니다

어쩌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시설은 안되어있지만

순수함으로 매화를 보기는 여기가 더 좋을 수도있읍니다

매화도 성질 급한놈들이 있겠지요

홍매화와 어울리는 화사한 꽃들이 서울에서 온 우리를 환영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무는 아직은 봄이 아닙니다

그래서 빨리 모습을 보인 꽃이 더욱 빛난답니다

우리 일행은

일단 넓은 자리를 잡고요

산행 전 체조를 합니다

체조요? 중요하다하지만 흔히들 그냥 지나치지요

하지만 역사문화탐방은 모범적으로 실행합니다

제멋대로입니다

제멋대로면 어떠습니까

몸만 풀면 되지요

그래도 꼼꼼히 몸을 풀고들 계시네요

참 열심이십니다

자원봉사 세르파님

사진 장비가 대단하지요

인물사진 전문이시랍니다

보통 하루 3000장은 찍는답니다

사진이요?

찍는것보다 파일 확인하고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

훨씬 손이 많이가는 작업이지요

그래서 봉사자입니다

그러고 보니 멋지게 생기셨네요

예술가 답지요

정말 고맙읍니다

그리고 단체 사진입니다

이럴때 찍사들만 찍습니다

모두 열심이시지요?

역시 고맙읍니다

자 이제 산행을 시작합니다

길가에 홍매화가 멋드러지게 피어있읍니다

홍매화가 개화 시기가 좀 빠르다고 하네요

그러니 오늘 우리는 좀 빠른 꽃 놀이입니다

홍매화에 포즈를 취하시는 여인네들

몇 분을 카메라에 넣어봅니다

인물사진 전문가가 계신데요

째비가 누가 될까 모르겠읍니다

맘에 안드시면 삭제할께요

 

그 다음 분이시지요

사실 오는 버스 제 옆자리에 앉으신 분입니다

떡도 주시고 과일도 주시고요

사진 잘 찍어 드리고 싶었는데

성의로 보아주세요

관동마을에서 시작하는길은

이런 콘크리트 포장길입니다

그렇다고 우습게보면 탈진할수 있읍니다

경사는 대단합니다

우리 교주님

무덤을 보시더니 원래 본능이 발휘됩니다

팔자 바꾼다는 말씀입니다

일반인 여자비석은 "유인 해주최씨 신위"8자가 들어갑니다

하지만 남편이 정일품이되면 "정경부인 해주최씨 신위"10자가되므로

8자가 바뀌었다 하는거랍니다

그래서 여자의 팔자는 남자에 달렸다나요

오른쪽에 대나무 밭입니다

역시 남쪽이라서 대나무도 잘 자랍니다

세한 삼우라 했지요 추운개울을 잘 버텨준 3명이지요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松竹梅)

교주님 지금 포교활동중이십니다

레이더에 잡히면 용서 없지요

이들은 이미 신자가 된것입니다

희미한 매화 꽃은 관심도 없읍니다

그래도 자세히보면

꽃이 핀것도 있읍니다

매화는 활짝핀 꽃보다

봉우리를 즐기라고 했다지요

봉우리 입니다

포장도로는 여기까지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여기부터 등산입니다

잠시 쉬어 가실레요?

꾸미지 않은 오래된의자가 정겹습니다

농장에 일하시는분들이 잠시 쉬어가는 의자입니다

포장이 없어졌네요

주변에는 밤송이들이 있읍니다

작년 가을 떨어졌던 흔적이지요

매화 이전에 이곳은 밤나무로 유명했던 곳이랍니다

지금은 매화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벌써 하산하시는 분들이 계시네요

정상은? 아니랍니다 조금 더 올랐다 내려오신다네요

부끄러운지 웃으시데요

개밭골오르는길입니다

숨을 크게 쉬게 만드는 계단이지요

공짜가 없읍니다

매화 이외에는 아직 겨울입니다

나무들 아직 잠에서 깨기 전이지요

13:40

버스에서 내리고 1시간입니다

여기는 게밭골(뱅댕이재)입니다

오른쪽은 매봉거쳐 100대명산인 백운산 가는길이구요

왼쪽은 우리가가야할 쫓비산 방향입니다

재에 올라서

크게 한숨쉽니다

게밭골이 뭐지?

남들은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나봅니다

난 그냥 고우 했지요

사실 이리로 올라오신분들은

백운산 가실리가 없지요

리본이 이쪽에만 쌓여있네요

나무뒤로보이는 윤곽이요

꼬깔처럼 날카롭다는 갈미봉입니다

나무가 참 빽빽하지요

여름에는 빛을 볼수 없겠네요

노오란 꽃이 피었네요

자세히 보아야지요

히어리입니다

히어리라는 이름은 마치 외래어처럼 느껴지지만 순수한 우리 이름이랍니다.

발견 당시 마을 사람들이 뜻을 알 수 없는 사투리로 ‘히어리’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이것이 그대로 정식 이름이 됐다지요.

히어리는 풍년화, 영춘화, 납매 등과 함께 봄이 오고 있음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나무로 유명하답니다.

이들 4인방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벌써 2월이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지요

어느정도 올라서니

산아래로 강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섬진강 이지요

섬진강 이름유래 중 가장 알려진 얘기는 "고려시대 왜구들이 강으로 배를 타고 들어와 약탈을 일삼았다지요.

어느날 왜구들을 실은 배가 강가로 다가오자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들이 새까맣게 몰려와 왜구들을 보고 울부짖자,

소름이 끼친 왜구들이 상륙도 못하고 도망쳤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두치강(豆恥江)이란 이름이 두꺼비 ()’ 자를 써서 섬진강(두꺼비 나루)라고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어(古語)를 연구하는 국어학자들은 두꺼비 자는 의 이두식 향찰표기로

섬진의 순 우리말은 달 나루크고 넓은 강이나 나루를 의미한다고 해석하고 있다고 설했지요.

역시 봉우리를 점령한다는건 쉬운일이 아니지요

다시 계단이 나옵니다

이 계단의 끝이 갈미봉일듯합니다

네 맞읍니다

정상입니다

정상 표시는 중간에 커다란 나무를 이용했네요

두개의 줄로 산악회 리본들을 걸어서 표시했네요

왼쪽에는 오르네 힘들었지 하고 쉬어 가라고 정자도 있읍니다

꼭 선황당 같은 갈미봉 정상 표지입니다

 갈미봉갈미또는 갈모라 불리는 물건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기름종이를 우산과 같이 만들어 갓 위에 덧씌워 비를 막았는데,

갈미봉의 생김새가 바로 그런 갈미와 같아 유래된 이름인 듯 합니다.

사전에 '갈모'를 찾아보면 '비가 올 때 갓 위에 덧씌우는 기름종이로 만든

고깔 모양의 가리개'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상 인증해야지요

이곳에서 보이는 섬진강입니다

여기서 섬진강의 역사를 되세겨 봅니다

일제의 패망으로 식민지 조선은 해방되었지만, 38선을 경계로 한 분단이 민족을 갈라놓았지요.

섬진강이 경상도와 전라도로 갈라 놓아 듯이

또 해방이후좌우 갈등이 격심한 지역이었답니다.

이 지역의 분단으로 인한 상처는 1948년 10월에 일어나 이른바 여순사건에서 극에 달하였지요.

여순사건은 여수에 위치한 14연대 장병들이 제주도 4·3항쟁 진압을 거부하며 일으킨 군인폭동이었는데.

여기에 여수와 순천을 비롯한 인근 지역민들이 합세함으로써 내란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지요.

이후에는 섬진강 유역이 빨치산 투쟁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답니다.

빨치산의 지리산 유격지구는 남한지구 유격대의 총 본산이라 할 수 있는데,

남로당의 거물인 이현상이 관할하면서 북으로 무주 덕유산, 남으로 광양 백운산을 연결하며 활동했다지요.

1953년 이현상은 생포되어 화개장 섬진강가 백사장에서 화장되고 그 재는 섬진강에 뿌려졌답니다.

우리 민족은 섬진강 유역을 배경으로 수만명이 피흘리며 싸웠던 것이 이 섬진강입니다.

옛날에 옛날에 아주 먼~~엤날에

섬진강변 작은산 쫓비산에는 돈 많고 잘생기고 말잘하는 총각이 있었다니요

그런데 그총각 나이가 되도 장가를 못가

그래서 매일매일 쫓비산 갈미봉에 올라 신령님께 기도를 올렸다지요

비올까보아 기름종이로된 꼿깔을 쓰고요

제발 제발 이쁜 처자하나 점지해달라고

그렇게 그렇게 몇백년이 흘렀다지요

그러던 그날 오늘도 갈미봉에서 재를 지내고

혹시나 하고 기다렸답니다

그런데 어디서 사람들이 왕창 갈미봉에 올라왔답니다

그들은 그 총각을보고 홀딱 반해서 주변을 에워쌌지요

이미 그총각은 왕자입니다

총각은 신나서 자기자랑을 늘어 놓고 있읍니다

왕자가 된 총각에게 신령님은 너가 알아서 1명만 고르라 합니다

대신 누구든 이해할수 있도록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한답니다


그래서 기자 수행원도 보냈답니다

이들이 하는 행위를 모두 주시하고 기록해서 보고하는 의무를 가졌지요

심판관도 있답니다

모두 이쁘고 능력있지만 왕자가 반칙으로 공주를 선택할까 보아

반칙을 하나 판단해 주시는 분이지요

아! 이분이요?

입장권 28000원에 사가지고 이경기를 관람하려구요

28000원이면 공짜지요

서울서 버스비도 안됩니다

아무나 이겨라!

백설공주이시지요

머리가 흰게 딱 보아도 백설공주이십니다

제일 먼저 달려오셨네요

그만큼 왕자에 대한 끌림이 강했나 봅니다


신델렐라이시지요

왕자님 찾아 오셨는데

좀 맘이 여기 경선이 맘에 안드나보네요

어쩌지요 탈퇴? 그래도 끝까지 가보세요

이분은 콩쥐입니다

계모한테서 몰래 도망쳐 나왔지요

팥쥐가 올까봐 노심초사중이시지요

아! 인어공주님이 산에까지오셨네요

급하긴 급하셨나봅니다

그 의족 어디서 산겁니까?

늘씬하고 보기 좋은데요

이분은 숲속의 잠자는 공주님이시지요

아직도 잠이 덜깨어났지만

왕자을위한 일편단심은 끝이 없답니다

아랍에서도 오셨네요

종현교가 아랍까지 가셨군요

아라비안나이트 요술공주님이십니다

요술로 왕자님 잡아보세요

이분은 로마의휴일의 앤공주님이시지요

좀 늦었지만 왕자를 바라보는 눈은 가장 열정적이지요

내가 여기서 가장 어리답니다

나이로 승부하겠읍니다

이렇게 많은 공주님들을 보내주셨네요

신령님이 이분 여자 좋아하는걸 아셨나봅니다

왕자님 궁리 끝에 각종 경연을 준비합니다

일단 이번달은 이곳에서 사행시로 합니다

그리고 모델시험도 있구요

노래 시험도 있읍니다

무용 경연도 있나요?

그날자는 아래와 같읍니다

-4 14() 장충단 그리고 남산성곽 벚꽃터널, 목멱상화 속으로

-5 12() 안성 서운산 철쭉꽃 축제와 바우덕이 남사당패 놀이, 신바람 속으로(카플버스)

-6 9() 설악산 12선녀탕, 비경 속으로(카플버스)

-7 14() 양평 물레길과 두물머리, 연꽃 속으로

-8 11() 강원도 인제 아침가리골, 물길 속으로(카플버스)

-9 8() 북한산 구천은폭, 옛 이야기 속으로

-10 13() 오대산 선재길(월정사~상원사) 트래킹, 단풍 속으로(카플버스)

-11 10() 한양 서촌, 옛 이야기 속으로

-1222() [블랙야크 종산제] 충남 천안 광덕산, 종산제 속으로(카플버스)

그렇게 1년동안 시험을 시행할 예정입니다

왕자님께서

무시험으로 나에게 올사람을 물어보았답니다

여기저기서 난리이지요

서로 시중들겠다고요

그러니 시험을 안볼수 있나요 당연히 치루어야지요

그러는동안 우리 심사위원들은 채점하고 집계내고 바쁘지요

1년동안 공부하구요

결론은 시험이 다끝나야지요


헛소리 그만 하자구요?

그래요 자 이제 다시 전진합시다

쫓비산을 향하여

가는길에 종현 총각 닮은바위가 있지요?

숙녀분 2분을 거느렸네요

그리고 시선을 앞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쫓비산인가?

에이 너무 가깝지요

좀더 가야합니다 2Km도 넘어요

상관 않고 모두들 소풍을 온듯

발걸음이 가볍읍니다

즐거움이 보이지요?

이것보세요 거기는 아니지요

아직 2.7Km나 남았는데

아직 멀었답니다

그 이정표에서

버스 옆자리 숙녀분들이 포즈를 취합니다

찍어달라는거지요

물론이지요 찍어드립니다

한분더

제 옆자리분이  빠졌잔아요

이래야 한팀이지요

좋읍니다

이제 아까와는 다른 노오란꽃이 보입니다

산수유꽃? 아닙니다 이건 생강냄새가 난다는 생강나무입니다

그리고 그봉우리에 올라섭니다

정면에 갈미봉이 잘 보이는 곳이지요

갈미봉 찍기위해서 빨간 모자를 엑스트라로 고용했읍니다

훨신 보기가 좋지요?

진달래이지요

막 꽃을 피우려 봉우리에 보라색이 잔뜩 들어있네요

내일 아니면 모래쯤 터질것 같읍니다

많은 분들이 갈미봉 전망을 즐기고 계십니다

꼬깔모양의 갈미봉

정직해 보이네요?

문뜩 하늘이 궁금해 졌읍니다

정말 죽여주는 하늘입니다

오늘 날자 잡기는 잘했지요

주최하신분 감사합니다

또 일렬로 전진 합니다

일단 쫓비산을 거쳐야 매화를 만날수 있지요

어! 다왔나봅니다

그렇게 단체로 걸으니 참말로 힘든지 모르고 정상에 왔네요

인증들 합시다

닥치는대로 찍어봅니다

1번이십니다 찍혔답니다









쫓비산 이름이 어렵지요?

물론 뜻도 모르겠구요

그래서 공부합니다

쫓비산의 이름유래는 그 내역이 확실치 않답니다

 흔히 다른 산에 비해 뾰쪽(쫓빗, 쭛빗)해서 얻은 이름유래설이 있지만 믿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쫓비산은 평범한 육산에, 뾰족하게 돌출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푸른빛과 자줏빛의 중간이쪽빛인데,

쫓비산에서 섬진강물을 바라보면 물빛이 쪽빛으로 보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설 중에서 매화 빛을 쫓는 산이란 설이 가장 맘에 듭니다.

사실 우리 고유의 산이름이 중국의 한자를 빌어 쓴 이두식 향찰표기로 바뀌며,

음을 딴 이름은 그 본래의 뜻을 다 잃었고,

훈을 빌어온 산 이름만이 지금까지 그 뜻의 명맥을 간직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여기까지 그분의 말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깨끗하단 섬진강은 200km 이상을 흘러 남해 광양만으로 흘러갑니다.

전라도 산골마을에서 모여든 실핏줄 같은 개울들이 모여 내를 이루고,

내는 샛강을, 샛강은 섬진강을 만들어 마침내 남해로 갑니다.

유역(하나의 하구로 모이는 모든 물줄기가 흘러온 공간)과 긴 것으로 따지면

 섬진강은 낙동강, 한강, 금강 다음인 4번째지만,

대도시를 낀 영산강에 밀려 4대강 공사에서 밀려났습니다.

섬진강의 슬픈 이야기입니다

정상을 즐기시는 분들 모습을 담아봅니다







또는 이렇게 다름사람과는 차별되지요

어쩌면 그림은 이런게 더 좋을수가있답니다

우리가 오늘 보러온 매화도 활짝핀 꽃보다 봉우리가 더 아름답다 하잔아요

활짝 피었을때를 기대하기 때문이지요

뒷모습? 어떤 미인일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자 이제 매화 만나러 갑시다

16:24

잠깐이요

약 20분만 가면 매화농장입니다

지금부터 자유시간입니다

5시40분까지 장독대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그렇지요 오늘 여기서 6시 이내 출발은 안될듯합니다

부지런히 내려와

농장 1.2Km전입니다

서둘러야지요

밤나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곳 매화는 율산 김오천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심습니다.

그는 191817세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1931년 귀국하면서 신품종 밤나무 1만 그루와 매실나무 5천 그루를 가져와 이곳 기슭에 심었습니다.

율산은 일본을 오가며 필요한 신기술을 익혀 밤나무와 매실나무를 마을 곳곳에 보급합니다.

1965년 김오천씨는 23세 밀양 처녀를 며느리로 맞으면서,

그 이후 매화나무는 더욱 늘어나게 됩니다.

매실나무보다 밤나무를 지키려는 시아버지(김오천 씨)

매실나무를 더 심자는 며느리(홍쌍리 여사) 사이에 갈등도 있었습니다.

당시 밤 한 가마를 팔면, 2~3 가마를 살 수 있었기 때문에 매실나무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섬진강 기슭에 한 그루 한 그루 심은 게 10만평이나 됐고,

이젠 사방 30리 길이나 산비탈 그리고 마을담장에도 매화나무 한 두 그루 이상은 흔하게 보이는 매화마을이 됐습니다.

그래도 아직 밤나무도 많이있읍니다

그리고 드릅도 있네요

이렇게 매화를 보기위해서는 눈을 정화해야합니다

화면조정시간이 끝나고

이제 매화 농장이 보이기 시작하지요

멀리서 보면 희미하지만

땡겨서보면

이정도도 장관입니다

아마 작년에 확핀 경관을 안 보았더라면

지금이 못 마땅하지는 않았을텐데

한참 부족해보입니다

농장으로 들어서기 바로전입니다

진달래가 피었습니다

그런데요 꽃에는 꼭 여인이있지요

여인네들이 꽃 앞에 나란이 섰읍니다

누가 더 이쁠까요?

멋진데요

이게 쪽빛인가요?

섬진강 강물이 유난히 파아란 색을 띠고있지요

그래서 쫓비산이란 말도 있잔아요

멋지네요

이쪽이 농장쪽이지요

작년에 이곳은 온통 하얀색이었는데요

많이 아쉽네요

그래도 눈밭은 아니지만 약한 상고대는 되는듯하지요

그런대로 즐겨야지요

남여 세르파분들이 포즈를 취하셨네요

보기 좋습니다

너무좋으면 안되니까 그정도면 되겠네요

단원 김홍도는 매화를 너무 좋아해서 "그림을 팔아 번 돈 3천냥 중 2천냥은 매화를 사고,

8백냥은 술을 사먹고, 2백냥은 처에게 쌀을 사줬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조선의 선비들은 매화를 선호했고, 백성들은 살구와 복숭아꽃을 좋아했습니다.

선비들이 매화를 좋아한 이유는 물론 예쁘기도 했지만

만물이 추위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을 때,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려 봄을 알렸기 때문입니다.

 

퇴계 이황은 마당에 백 그루의 매화나무를 심곤,

매화가 필 때면 나무 주위를 맴돌았다고 전합니다.

겨울 달밤엔 추위를 이기려고 숯불을 피워놓고 매화 곁을 떠날 줄 몰랐다고 합니다.


꽃피는 시기론 너무 일찍 핀다고 해 '조매(早梅)',

음력 섣달인 납월(臘月)에 피는 매화를 '납월매',

겨울에 핀다고 '동매(冬梅)',

눈 속에 피어 '설중매(雪中梅)',

봄기운이 완연할 때 피는 '춘매(春梅)' 등과

꽃빛깔론 붉어 '홍매화(紅梅花)',

희어 '백매화(白梅花)',

푸르러 '청매화(靑梅花)' 등등 매화를 두고 부르는 이름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꽃들좀 감상하시지요





매화를 즐기는 법을  '사귀(四貴: , , , )"하였지요

이런 꽃이 진짜라 했답니다

첫번째가 입니다

꽃이 이렇게 무성하지않아야한답니다

이정도로 듬성듬성있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두번째가 입니다

어린 나무는 깊이가 덜하겠지요?


동양화를 보면 고목나무에 매화가 많지요

그렇듯이 제대로된 멋은 역시 연륜이있어야지요

세번째는 입니다

가지가 살찐것보다는 야윈것을 보라 했지요

아무래도 굵은 가지에 달린 꽃은 균형이 안맞지요

역시 야윈 가지에 흰꽃이 앙증스럽게 달려야 보기 좋단 말이구요

마지막으로 "雷뇌"라 하지요

이렇게 활짝 핀 꽃도 이쁘지만

이렇게 피기직전의 봉우리를 보면

꽃이 되었을때의 이쁜모습을 상상하며 기대가되는

그래서 진정매화를 즐기는 맛은 이런 봉우리를 보며 즐기라 했지요

그것을 매화를 즐기는 4귀라 했답니다

매화 자체를 즐기도하지만

매화사이로 보이는 풍경을 보는 재미도

보는 방법중 하나입니다

오늘도

매화속에서 봄을 맞이하며

이렇게 놀다 가려합니다











이분이 이농장을 만드신 율산이란분이랍니다

매화꽃은 세 가지 색깔이 있는데요,

하얀 꽃에 푸른 기운이 섞인 청매화,

향기가 진하고 복숭아꽃처럼 붉디붉은 홍매화, 그

리고 눈처럼 하얀 백매화입니다.

열매는 빛깔에 따라 청매, 황매, 금매로 나뉘는데요,

매실의 효능은 첫째 소화불량에 탁월하며,

둘째 해독작용을 하고,

셋째 간 기능을 회복시켜주고,

넷째 열을 내려주고 염증을 없애주는 효과가 있으며

다섯째 혈액순환과 피부에 좋다고 합니다.



동화작가 정채봉의 창작동화 오세암 동상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최고입니다.
시인이자 동화작가 정채봉(1946~2001)이 다섯 살 아이가 부처가 되었다고 하여

생긴 설악산 오세암 암자에 얽힌 전설을 바탕으로 쓴 창작동화로 엄마를 찾기 위해

앞을 못 보는 누나 감이와 여행을 하는

다섯 살배기 길손이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작가는 오세암으로 1986년 새싹문학상을 받았으며,

동화책으로 12만 부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 작가가 되었으며,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고 한다.

2003년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고, 김혜수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연인입니다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매실 농원에는 3,000여 개에 이르는 전통옹기가 있는데요,

30년 동안 50년 전에 만들어진 항아리만을 수집해 매실과 된장, 고추장 등을 담근다고 합니다.
멀리 섬진강과 백운산을 배경으로 다닥다닥 붙은 옹기가 예술이지 않습니까?
청매실 농원에 매화꽃이 필 때면 전국의 유명 사진작가들은 모두 광양에 집결한다는데 바로 이런 장면 때문이지 싶습니다.



청매실 농원은 홍쌍리 여인의 매실가로 46년의 정성이 깃든 매실 농장인데요,

80여 년 전 가난한 강촌에 처음 밤나무, 매화나무를 심은 김오천 선생의 며느리입니다. 

 김오천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밤나무는 식량 대용으로,

매화나무는 약용으로 들여와 야산에 심었는데요,

거름을 주고 나무를 가꿔 오늘날 청매실농원의 기틀을 마련했고,

홍쌍리 여사는 매화나무를 늘리고 종자를 개량해 매화 박사라는 별칭을 얻고

시집와서 22년 만에 치마를 입을 정도로 노력한 결과 정부지정 명인 14호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차가 없네요

버스를 이곳까지 안보낸다 합니다

그래서 약2Km 전방 주차장에 있다지요

평지를 걷는것인데요

즐겁게 걷읍니다

오른쪽은 섬진강

가로수는 하얀 매화가 가득합니다

어찌 걷기를 마다하리오

환영해 주지요

아직도 오는 차는 거북걸음입니다

통제를 불평으로 하기보단

수고로 보아야할듯합니다

여유있게 걸어가지요

다 왔읍니다

약20분 걸었네요

정리하고 서울로 출발합니다

전철 없을 것으로 걱정했는데요

예상보다 많이 빨리와서요

제때 집으로 갈수 있었답니다

역사문화탐방을 마칩니다

정말 먼길이지요

꽃도 만개한것도 아니구요

그다지 역사적으로 내세울것도 없는곳이지만

그곳도 우리 조상의 삶이있는곳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배웠답니다

글이 좀 늦었답니다

바쁘기도했지만 잘쓰려는 생각이 많았나봅니다

운동할때 힘빼라는 소리가있지요

그런생각이 잘 글이 안되는가봅니다

그냥 막써야하는데

어째든 재미있는 여행이었구요

재미있는 꽃구경이었읍니다

그리고 글속의 사진 빌려주신분들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읍니다

불편하시면 삭제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