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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0) 2016.12.31. 감악산

내가 12월31일에 산에 가는 이유는?

올해 내가 산에 간 횟수가 49번이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 몇 년간 산행 횟수를 카운트 했었다

그후로는 일년이 52주 인데 그 이하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100산을 달성한 이번해 오늘 전까지 49회인것이다

그래도 50회는 해야지, 발음이 다르잔어

그래서 오늘 아침  산에 가기로 한 것이다

아래사진은 새로생긴 감악산 출렁다리이다

10:53

법륜사 입구 아스팔트 길을 꼬불꼬불 돌아서

감악산 데크길 중 청산계곡길 입구

여기서 더가면 주차 불가능할 것 같다

하차 후 산행준비한다

이분은 오늘 산행 동반자이다

원래는 혼자 갈 생각이었다

차를 몰고 집에서 나와

그냥 전화했다

집이 십니까? -  네`

오늘 뭘 하실껍니까?  - 백운대 갈 예정입니다

저하구 감악산은 어떠세요? 제가 모시러 가겠읍니다

그래서 이루어 졌답니다

예상 외로 도로 입구에 출렁다리가 있네요

저기를 먼저 가야하나?

우리는 산행 후 둘루기로 합니다

그래서 법륜사로 Go~Go~

도로 왼편 고드름이 엄청나지요?

내년 봄 낙석이 우려됩니다

오르는길에 출렁다리를 조망해 봅니다

많은 돈을 들였을텐데

위치가 감동스럽지 않군요

어째든 하산길에 만납시다

법륜사에 왔읍니다

범륜사  이 절은 옛 절 운계사(雲溪寺)터에 근년에 새로 중창한 절이다.

이제 운계사의 흔적은 찾기 어렵다.

눈 비비고 찾으면 완전히 새로 파헤친 계곡가에 공기돌 만한 기와돌이 보이고,

절마당에 근년에 찾아 세운 고졸한 3층 석탑이 옛터를 찾아 온 객(客)을 반긴다.

자리만 그 자리일 뿐 대웅전도 부처님도 절마당도 크게 크게 세워 놓은

석물(石物)과 관세음보살 입상(立像)도

기증자의 이름만 잔뜩 붙여존 이범종도 모두 다 남 같다.

다행히 깊숙한 안쪽 극락보전(極樂寶殿) 우측 담 밑에 옛 비석이 하나 서 있다.

조선 세조(世祖)가 하사한 비라고 한다.

실록 세조 2년 3월조에는 집현전 직제학 양성지가 전국 영험한 곳 기도처를 정할 것을 상소(上疏)한다.

이 때 감악산(紺岳山)도 명산으로 삼는다.

또 다음 해인 3년(1457년) 8월조에는 세자가 병이 나서 신하들을 여러 영험한 곳에 기도하러 파견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세조는 향(香)과 축문을 내렸는데 상호군의 업무를 행하던 이연손이 감악산에 기도하였다.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보람도 없이 의경세자는 끝내 이 해에 2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이 분이 요즈음 TV연속극에 자주 나오는 인수대비의 남편이자 연산군의 할아버지이다.

그렇다면 세조가 하사하였다는 비는 언제 무슨 내용을 담고 세운 것일까?

아들의 회복을 기원하는 아비의 마음을 담은 것일까?

마모가 심하여 판독할 수가 없다.

그비 왼쪽 극락보전이다

백옥석 관음상

역시 낮설다

십이지신상이 쭉~~ 나열되어 있는데

역시 거기서 사진 요청할 줄 알았다

그져그런

석물들을 뒤로하고 산행에 들어간다

600여m 오르니 숯가마터가 나타난다.

 가난하던 시절 참나무가 많은 산에는 숯가마를 만들어 숯을 구웠다. 

왼쪽에 휴식공간도있구요

숫가마터랍니다

안내표지판은 다 지워져서 하얗지만

자세히보니 숫가마터란 글이 읽힌다

파주군에서 복원한듯 깨끗이 정리되어있네요

복원할때 숫 몇조각이라도 넣어두면 좋았을걸?

다시 200여m 오르니 비교적 너른 평탄지가 나타난다.

 안내판에 묵은밭이라고 쓰여져 있다.

 예전 화전을 일구었던 흔적이다. 농터가 없던 농민들은 산 속으로 들어와

평탄한 땅에 불을 질러 초목을 태운 자리에 밭을 일구었다.

 그러다 보니 산림을 훼손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에서는 급기야 1966년 ‘화전정리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정당한 절차 없이 개간한 화전들을 모두 정리대상으로 하였다.

  배고프던 그 시절 많은 화전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이 곳 묵은 밭도 그 때 이 곳을 떠난 이들의 흔적이리라

그리고 또 이정표가 나타난다

우린 임꺽정을 만나길 원한다

그리고 임꺽정봉으로 가는길이다

우린 임꺽정을 만나길 원한다

그리고 20여분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부터는 임꺽정이 정상으로 변했다

길이요?

눈은 조금 깔려있구요

경사도 그리 급경사는 아니지요

갈만합니다

한번도 쉬지 않았답니다

임꺽정봉이 700미터 남았다는데

계단이 보이지요

뒷편에

역사적 유물인줄알았지요

그런데 군인 초소네요

임진강 유역, 한강 유역은 본래 마한(馬韓) 땅인데 백제가 이어 받았다가

고구려 광개토대왕, 장수왕 때 빼앗기고 말았다.

그 후 신라와 나제동맹을 맺어 잠시 수복하였다가

신라의 배신으로 이 땅을 다시 신라에 빼앗겼는데 배신으로 빼앗은 땅에

신라는 신주를 설치하고 삼각산 비봉에는 신라의 강역(疆域)임을 선언하는 진흥왕 순수비를 세웠다.

 이 때 세 나라가 빼앗고 빼앗겼던 성과 보루가 한강과 임진강 사이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곳은 군사적으로 요충지이다

그래서 감악산 곳곳에 이런 초소가 있는 이유일 것이다

아까 그계단 끝이다

아직 장군봉은 아닌거 같구요

일단 인증부터합니다

이사장님 더 아슬아슬한곳까지 가세요

더는 못가신답니다

오케이! 좋아요

잘나왔읍니다

좀 땡겨볼까요

오케이

오케이

사람 바꾸어봅니다

정말 무섭네요

딱 한발작만 더 뒤로 갔읍니다

세워서도 찍으셨네요

이렇게도 찍으셨어요

고맙읍니다

이곳에서 바라본 정상쪽입니다

바로앞 장군봉  그뒤가 임꺽정봉

다시뒤로 저기 안테나가 정상입니다

그리고 바로밑 절벽

멀리 산과산 사이에 저수지가 보입니다

훌쩍 내려와서 다시 계단을 오릅니다

장군봉이겠지요

오르는길에 고인돌? 아니면 천국으로가는문?

아무러면 어떻읍니까

앞서가던 이사장 불러봅니다

오는중에 구멍으로 보이는 다른세상을 바라보고

기록합니다

그자리에 앉혀놓았읍니다

생각보단 그림이 좋진 않군요

사람이 바뀌어도 별로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가던길 계속 올라가지요

조금더 올라야겠지요

저기가 장군봉입니다

장군봉 지도 아래서 기념사진요

어때요?

저양반이 하면 저는 또 꼭해야 한답니다

이제 임꺽정봉으로 가야하는데

300미터가면 얼굴바위가 있다지요

오늘 급한것도 없는데 갔다 오지요

길을 못찾아 조금은 헤메었는데요

결국은 찾았답니다

내려가기 실허서 찔끔 찔끔가다가

고개를 돌려 지나온 장군봉을 바라 본다.

  로마인처럼 이목구비가 완연한 얼굴바위가 능선 아래서 빛나고 있지요

좀 땡겨 봅니다

사람얼굴 같지요?

같은 표정 지어달라 했지요

하라면 하네요

같아 보입니까?

전 똑같은거 같은데요

선암사지를 가고 싶은데

힘들어서 그냥 갑니다

임꺽정 봉을 향합니다

계단을 오르면 임꺽정 봉이지요

먼저 인증부터 합니다

얼굴표정까지 잘보이도록 한장더요

그리고

임꺽정봉에 대한 설명도요

임꺽정 굴이 있다지요

이사장님이 하면 저도 합니다

똑같이 합니다

임꺽정(설인귀) 굴을 찾아봅니다

깍아지른 봉우리 앞에는 절벽 아래로 굴이 하나 있다 했지요.

하지만 무서워서 더 이상 갈수가 없어요 
그굴은
임꺽정이 이 굴에 은거했다는 전설도 남아 있다.

 임꺽정(林巨正)은 명종때 황해도 구월산에서 활약한 의적인데 고향이 양주 불곡산 근처였다 하니

양주와 한양쪽으로 산길을 탄다면 응당 감악지맥을 탔을 것이다.

그러니 임꺽정굴이나 임꺽정봉도 실제가 아닐까?

포기하고 내려가는데

다시 정상부분을 쳐다보게 만듭니다

결국은 못찾았지만

다시 미끄러운길을 내려서고

다시 오르는길입니다

안테나가 보이지요

네 정상입니다

감악산 정상

이제 점심도 먹어야지요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정상은 넓기도하구요

사람이 많아도 한가할정도이지요

밥부터 먹자니까

인증부터 하잡니다

그래야지요

이렇게 한장더

이사장님 감악산 인증입니다

인심이다

한장더합니다

똑같이 하는거 아시죠?

당근이지요

이건 왜 안보았겠어요

물론이지요

빗돌대왕비, 비뚤대왕비, 설인귀비, 몰자비(沒字碑) 등 이름도 많다.
이 비석의 글자가 모두 마모되어 비의 내용을 읽을 수 없다 보니 비석 모양과 전설에 따라 이름이 붙은 것이다.

 1982년 동국대에서 이 비를 조사하였는데 제5의 진흥왕순수비(巡狩碑)가 아닐까 추정하였다.

  물증은 없지만 비의 모양, 지정학적 위치, 추정 연대, 비가 서 있는 산 정상 등등 모든 면에서

 또 하나의 진흥왕순수비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이론이다.

점심을 거나하게 즐겼다

물론 늘하듯이 클래식 음악과함께이다

그리고 정상을 다시한번 둘러본다

축대위에 오래된 비석이 진흥완 군수비면 어떻구

당나라 장수 설인귀의 비석이면 어쩌겠나

모두 우리의 역사인것을

현대와 고대

안테나와 비석은 무슨관계일까?

그 정상석 앞에서 오늘 참가 기념 사진을 남깁니다

ㄱ병신년 올해는 얼른 떠나고

밝아오는 정유년 빨리 오거래이

그리고 하산합니다

하산길은 운계능선길이랍니다

까만 나무로 지어진집 어딘지 우리 전통 기와는 아닌듯하네요

뭐억지로 그런 말을 써도 되겠지만

옛절 운계사 이름을 따서 붙이지 않았을까?

첫번째 만나는 정자입니다

까만 나무로 지어진집 어딘지 우리 전통 기와는 아닌듯하네요

그리고 조금더 하산하면

또하나의 전망대가있읍니다

여기서 아래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위를 바라보지요

아까 정상의 안테나

그리고 까만 정자도 보이지요?

그리고 임꺽정봉 장군봉도 조망하구요

전망대 바로아래 고사목을보며

죽음이 왜? 아름답지?

계속 하산입니다

삼거리이지요?

묵은밭가는길

그리로가면 아까 올라온길이지요

가본적 없지만 손마중길로 향합니다

구름다리 저편을 기대하면서요

가는길왼편에

무슨표시?

난 알수 없지요

그리고 또 3거리

계속해서 신고개쪽으로 갑니다

또 삼거리가 나오지요

왼쪽은 계속 범륜사입니다

오른쪽 이번엔 충혼탑인데요

구름다리를 기대하며 오른쪽으로 갔지만

100미터쯤 아래로 보이는 출렁다리는 너무 왼쪽에있네요

다시 원점인 이곳으로 범륜사 방향으로 향합니다

이사장 님 잠시 앉아계시나요?

아니요 넘어지셨답니다

본인은 아프시겠지만

보는 나는 즐겁읍니다

범륜사로 가는길

길이 멋지지요

그길을 따라가다보면

또다시 3거리가 나옵니다

전망대?

올라올때 보던 정자일껍니다

 한번 둘렀다 가야지요

예여기입니다

전망대에서는 구름다리가 한눈에 보이는군요

도로를 넘어가는 구름다리입니다

이쪽은 범륜가 방향입니다

특히 계곡이 멋져 보이지요

그계곡입니다

폭포수준입니다



거기에 얼굴 한번 넣어보았답니다

오늘따라 여유가 넘치십니다

자기가하면 나도한다

오늘은 꼭 따라하고 있답니다

데크길을 따라서 산행을 마감하고있읍니다

아까 멀리서본 폭포가 코앞에 와있네요

물이 쌀뜸물을 뿌려놓은듯 뿌였읍니다

이절에서는 신도가 많아서  밥을 많이 하나봅니다

아니면 그렇게 보이려고?

데크 끝즘에 동굴이있네요

그렇게 찾다찾다 못찾은 임꺽정굴이 여기에 있는건가요?

이런굴을 보면 뭐가 생각 나나요?

마늘 먹는 곰이 생각나지 않나요

범륜사를 멀리서 바라보며

오늘 산행을 마칩니다

그렇지만 또 해야할 일이 있지요

출렁다리를 보고와야지요

출렁다리 입구입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다리를 건너며 찍은 사진들입니다

















이제 오늘 산행을 끝내려합니다

감악산 여러번 왔었지요

삼국시대 서로 뺐고 빼았기는 요지였구요

당나라 장군 설인귀의 이야기도 나오고요

양주골 도적 임꺽정이가 활동했던 흔적도있다지요

하지만 그어느것도 명문으로 증명된것은 없다지요

그런 역사가 있어서 좋은산 감악산입니다

거기에 새로운 명물이 생겼다해서 기대를 걸고 왔읍니다

규모나 시설은 정말 좋은데

위치가 그러네요

다리의 규모나 시설은 정말 좋은데

더 높은 곳에 설치 되었으면 어때을까? 합니다

돈도 많이 들였을텐데

아쉽네요

그만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