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블랙야크 역사문화탐방이 있는날이다
작년 주흘산에서부터 참여하여 서울북촌마을 수덕사가있는 덕흥산을 이미 참여했고
이번이 4번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산도아니고 여름휴가 때 잠시 둘렀다오는 우리가 가는 관광지인데
몇번이나 갔다온 기억도있기고, 오직 그것만을 바라고 가는 여행은 처음인지라
그때와 얼마나 다를까? 나도 많이 궁금했다
45인승 새버스 안입니다
종로에서 시작해서 서울시내를 한바퀴 다돌아서 빈좌석은 하나도없이 대성황이다
아마 이분 전종현셀파님의 기운이 온 버스안에 퍼졌기 때문일이다
해박한 지식과 친근감있는 외모 그리고 감칠나는 언변을 가지신 이분이
오늘도 좌중을 들었다 놓았다 하신다
낙산사에 도착했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 낙산사다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와함께 우리나라 삼대 관음성지중 하나이다
관음보살이 거주했던 산이있다 인도의 보타낙가라한다지요
바다 가에 있고요 하얀꽃이 많이 피어있어야합니다
이곳 낙산사 이름도 거기에서 유래되었지요
의상이 이곳 의상대에서 14일을 기도해서 관음보살을 만났다지요
이아름다운 낙산에서요
버스가 올라올수있는곳까지 올라와 우리를 내려주셨다
관광지 답게 적당히 붐비는 모습에
워낙 좋은 경치를 가진이곳 조금은 흥분되는 모습들이다
그런데
내려가란다
우리를 안내해주실 해설사분이 아래 대형주차장에 계신단다
조금은 짜증을 낼만도 한데
모두들 순응하며 이동한다
그리고 대형주차장
해설자분을 만나고
일단 단체사진 촬영부터한다
나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나는 사진에 찍혔을것이다
저분 카메라속에있겠지요
그리고 해설자분의 인도에따라
주차장 구석 오른쪽길로 낙산사를 향하여 오르기 시작한다
오르는 길이 좀 경사가 있지요
힘이드니 조금은 불평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반란까지는 아니다.
그 언덕 다 올라서니 홍예문(虹霓門)이 보인다
오늘 문화해설의 시작이다
매표가 우선이다
65세이상 그냥 통과합니까?
66세부터이십니다
상당히 무섭습니다
모자모자 사이 흐릿하게 나오신분이 검표하시는 분입니다
이분이십니다
깐깐해보이시지요
그러나 우린 이미 총무도 정해놓았구요
아무리 무서워도 우리 총무님이 더 무섭지요
통과합니다
아침일찍 출발했잔아요
지금이 11:55입니다
우린 우선 배고픔부터 해결하기로 했지요
절밥? 산채백반? 기대 많이 했는데요
생각보단 실망했답니다
하지만 전혀 못먹을건 아니구요
인사동 사찰음식점 정도를 기대했던가?
단촐하지요?
공짜였다면 그래도 만족했을텐데
예예~~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공양을 받읍니다
공양을 마친후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살펴봅니다
쑥부쟁이닮은 이름모를 꽃을 보며 신기하게 생각하기도하고요
꽈리같이 생긴 이 빨간열매는 ?
해당화랍니다
이꽃이 지면 빨간 열매로 재탄생합니다
파고라 벤치옆에는 샘물이있읍니다
세심정이라 이름 붙여 놓았네요
물딸아주는 동자승모습도 여유를 느끼게 해줍니다
자 이제 오늘의 메인 이벤트가 시작됩니다
이분이 현지 문화해설자이십니다
차분하시면서도 거침없는 해설을 해나가고 계십니다
이분이요?
버스 기사님이십니다
기사님도 해설을 정말 열심히 경청하십니다
그리고 일일히 사진찍어서 나중에 버스 모니터로 보여주시는 서비스도 하셨답니다
담배 골초인거 빼고는 정말 멋진기사님이시랍니다
그리고 셀파님도 열심히 경청중이시지요
물론 천년고찰 낙산사에 대한 설명이지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전하고 이곳에 창건하였다지요
인도의 보타낙가에서 낙가사란 이름을 지었구요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낙산사, 보리암, 보문사)중 하나랍니다
화재로 8번이나 소실되었다지요
그래도 아직까지 번창한건 이곳 불심이 아직도 번창하다는 증거입니다
소실되고 다시 중건할때는 김홍도의 그림 낙산사도를 참고하여 복원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다시 단체사진 찍었답니다
홍예문앞에서요
여기 모이신분들 사진 찍자면 모두들 거침없이 달려갑니다
그리고 홍예문에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이문은 세조임금이 이곳 방문을 기념하여 만들었답니다
홍예문은 무지개 "虹"자에 무지개 "霓"자를 사용합니다
영어로 아치(ARCH) 모양의 우리말로 무지개 모양이라해서 홍예라고 합니다
동재문, 남대문등의 그곳도 홍예라고 불린답니다
이누각은 원래 처음만들때는 없었다지요
1963년 만들었다가
2005년 화재로 소실되고 그후 다시 만들었답니다
아치에 들어간 돌의 숫자를 세어보시지요?
13개입니다
요것이 앞뒤로 있으니 총 26개이지요
당시 강원도의 고을이 총 26개였답니다
고을에서 1개씩 가져와서 가공하여 세웠답니다
홍예에대한 안내판입니다
사실 홍예문은 사찰의 문이란 역활도있지만
바다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는 역활도 하지않았을까
배나무에 배가 주렁주렁 열렸읍니다
왠? 배나무가 관광지에?
낙산배 시조목 비가 있읍니다
낙산배의 유래가 적혀있네요
낙산배는 품종이 좋아 성종때 진상품이었다지요
100년된 나무이네요
원래 인도보타낙가에는 하얀색 꽃으로 뒤덥혀있었다지요
그래서 이곳에도 배꽃이 하얗게 뒤덥혔겠네요
배나무 옆으로 난길
이길은 원통보전으로 가는길입니다
이길은 꿈이시작하는길 이라 쓰여있읍니다
사실 이길의 나무들은 2005년 화재때 모두 소실되었답니다
그후 사찰을 중건하면서 수십만그루의 나무를 심어서 지금에 이르었다지요
그중에 저기 홍예문 왼쪽 삐죽 크게 자란나무는 그때 소실되지 않은 일부중에 하나랍니다
그이야기를 들으니 저나무가 더욱 멋져보입니다
원통보전에 가기전 제일 먼저 만나는것이 사천왕문입니다
어느절이나 있는 사천왕문인데요
특별한건 2005년 화재당시 화마를 피했다는겁니다
사천왕문과 연관되어 그안쪽에 벗나무입니다
이벗나무도 불길을 피하지못하고 불이 붙었는데
사천왕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불을 꺼버렸다지요
죽은줄알았던 벗나무가 그다음해 꽃이피고 입이 나고
아주 신기한 나무가 되었다지요
그만큼 이문이 효력이있답니다
다시한번 보시지요
이나무 속에 부쳐님이 계실수도 있답니다
해설사님의 진지한 손이 보이시나요?
또 그소리 경청하시는 우리 대원들이십니다
역사문화 해설이 잘 진행되고 있읍니다
팔짝지붕의 빈일루는 한자그대로 해를 맞이하는 건물이다
이는 산불로 타버린 낙산사를 복원하면서 단원 김홍도의 낙산사도를 보고 복원했다 합니다.
특히 빈일루의 바닥은 점돌은 대궐등에 사용하는 좋은 재료랍니다
낙산사 법종입니다
조선 예종 원년(1469)에 왕이 그의 아버지인 세조를 위해 제작해 낙산사에 보시한 범종으로,
성화 5년 기축 4월(成化五年己丑四月;1469년)에 주조하였다는 확실한 기록이 남아 있다.
1968년 12월 29일 보물 제479호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 4월 5일 낙산사 일원의 산불로 소실되어 같은 해 7월 7일 보물 지정이 해제되었다.
오른쪽 작은종은 복원하여 설치한 범종이다
누군가 담뱃불로 발화된 산불로 이귀중한 문화재가 소실되는
선진국을 지향하는이나라의 안타깝고 챙피한 이야기이다
응향각입니다
응향각은 나랏님이 머무시던곳이라지요
입구 전면 양쪽에 천사가 보이십니까?
좌측 천사는 책을 들고있고요
우측천사는 난을 들고있지요
이제 원통보전을 만나러갑니다
원통보전으로 가려면 대성문을 통과해야합니다
대성문은 높은 사람을 만날때 들어가는 문이라지요
계단을 통해 대성문을 통과합니다
대성문에서 바라본 원통대전입니다
팔작지붕의 대형건물에
앞에는 한쪽귀퉁이가 헐어 업어져버린 7층석탑이 모양을 더해줍니다
사찰에서는
석가모니를 모신 곳을 대웅전이라하고
관음보살을 모신곳을 원통보전이라하지요
이곳은 관음보살님을 모신 법당입니다
원통대전의 현판이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내신 경봉스님이 쓰셨다지요
지붕에 용머리이다
사실 새로 지은 법당이라 큰 의미는 없지만
그만큼 관음성지로서의 위용을 나타내는 모습이려니한다
그리고 가장중요한 관음보살상이다
2005년 화재시 옮겨놓아 화를 면할수 있었단다
고려후반에 만든것으로 추정되며 보물로 지정되어있다
이안내판은 공식적인 원통보전에대한 안내문이다
낙산사 칠층석탑이다
탑은 화강석으로 만들었고, 상륜은 청동제(靑銅製)이다.
1466년(세조 12)에 중수하면서 3층에서 7층으로 늘렸단다,
낙산사의 보물인 여의보주주와 수정염주를 비장(備藏)하였다는 석탑이다.
다른방향에서 본 칠층석탑입니다
그칠층석탑에대한 안내문이다
원통보전을 둘러싸고있는 담장이다
조선시대 세조때 만든담장으로 2005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다시 쌓은 담장이다
아주 멋과 풍치를 끄는 아름다운 담장이다
공식적인 설명이다
원통보전을 떠나 해수 관음상이있는 곳을 향합니다
아까 원통보전 담장의 바깥모습입니다
담장을 통하는길은 이런 아름다운 문을 통하여 갑니다
천당으로 가는길 같지요?
많은 사람들이 천당으로 가기위해 들어섭니다
그리고 이길은 많은사람들의 기원을 하는길인가봅니다
그기원에 참석하려 돌을 찾아도 돌이 없읍니다
이길은 꿈이이루어지는길이기 때문이지요
그꿈은 ?
여기서 잠깐
신라 시대에 세규사란 절에 "조신"이란스님이 계셨답니다.
스님은 그 절에 불공 드리러 자주 오는 태수의 딸을 보고 첫눈에 깊이 매혹되었다지요
그는 낙산사의 관음보살 앞에 나아가 그녀와의 결합을 남몰래 빌었답니다.
어느날 그는 깜빡 풋잠이 들어 꿈을 꾸었는데 김씨 처녀가 함빡 웃으며 조신 앞에 나타나서
스님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그녀와 함께 고향에 갔다.
가진것이 없어도 두 사람의 사랑만으로도 더 없이 행복하게 살았다.
십수 년의 세월이 지나고 슬하에 오 남매를 두게 되었으나 항상 가난을 면치 못했다.
너무나 가난해서 집없이 떠돌다가 열 다섯 살의 큰 아들이 굶어 죽고 말았다.
이미 부부는 늙고 병들었고 너무 가난해서끼니를 제대로 해결할수 없었단다.
어내가 말했지요
모두 모여 있다 함께 굶어 죽기 보다는 이제라도 제발 헤어집시다.
저는 고향으로 갈테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십시오."
부인과 아이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자 조신은 너무나 괴로웠다.
그 순간 너무도 눈부신 빛이 쏟아져 꿈에서 깨어났다.
조신의 눈앞에 빙그레 미소 짓는 관세음보살이 보였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그의 머리털이 하얗게 새어 있었다.
조신 스님은 실제 백년의 고생을 모조리 겪은 듯
인간 세상에서의 삶에 대한 뜻이 사라져 버렸다.
조신은 어리석은 중생심을 꿈으로 가르쳐 주신
관세음보살에게 그간의 일들을 깊이 참회 하였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조신의 꿈이야기입니다
원통보전에서 간절하게 기도하니 꿈속에서 이루어 졌답니다
역시 위대하신 관음보살이십니다
기도하십시요 꿈은 이루어집니다
이길이 그길입니다
저기 보이시지요?
해수관음보살상입니다
관음보살보다 먼저 바닥의 돌판을 주목해주세요
이 넓은 돌판이 108개가 있다는군요
그래서 돌판을 하나하나 밟으면서 인간의 고뇌를 내려놓고 관음보살을
접견하라하십니다
그렇게 한바퀴 돈후 이제 보살님을 접견합니다
그리고요 보살님 정면에
이런 구조물이있구요 여기 유리가 달려있지요
유리에 비친 우리들 모습입니다
그러나 여기는 그아래 법당의 하늘을 향한 창문입니다
이연못은 지붕이구요
아래 건물은 조금있다 보구요
일단 우리모두 기념사진 찍읍니다
하나,둘, 셋 찰칵~~~
아래 법당을 향하는 이곳 절경입니다
낙산사 어디하나 절경이 아닌곳이 있나요?
아빠의 촬영에 모델이 되준 우리 어린 대원입니다
그곳에서 바라본 낙산 해수욕장입니다
사람들은 빠져나갔지만 파도는 여전합니다
그 경치 역시 여전하구요
아까 말씀드린 그법당입니다
정말 경치좋은곳에 자리잡았지요
정면으로가서 법당안을 들여다봅니다
될수있으면 자세가 낮을수록 좋지요
부처님 만나는데 높은자세는 안되잔아요
그래야 이모습이 보입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해수 관음보살 관람을 끝냈지요
다음으로 이동합니다
이동중 또다른형태의 담장도 확인합니다
여기가 어디냐?
해수관음공중사리탑입니다
물론 보물입니다
이탑이 기울어져있었답니다
2005년 산불로 소실되었을때 탑을 다시 세웠는데
이속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등 많은 유물이 출토 되었답니다
그유물은 보타전에 보관했답니다
해수관음공중사리탑에대한 안내판입니다
여기는 보타전입니다
보타전은 7관음과 32음신 그리고 1500관음상이 봉안되어있단다
낙산사가 괌음성지임을 나타내는 또하니의 상징이다
이곳의 관음상은 백두산 적송으로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모두 금칠을 하였답니다
보타전안의 관음상입니다
마치 태국등 남방 불교의 부처님처럼 많은 팔과 머리를 가지고있네요
그만큼 많은걸 보아야하고
많은걸 만져야한다는 의미 이라네요
이곳 보타전 앞에는 연못이있어서 산불 피해도 보지 않았답니다
아마 저나무도 그랬을 겁니다
보타전 앞 새로 지은 돌탑입니다
뭔가 비슷하지 않나요?
원통보전 칠층석탑이요
그탑과 똑같이 만드었답니다
이 탑속에 아까 해수관음 공중사리탑에서 나온 진신사리를 모셨답니다
전 새로만든건 모두 의미없어 보이지요
그리고 이제 그유명한 의상대입니다
의상대사는 양양 바닷가에 관음보살이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낙산 바닷가로 옵니다.
의상대에서 일주일간 좌선수행을 하다가 동해용왕을 보았다고합니다
그리고 그용왕에게 수정염주와 여의보주를 얻었지요
그후 일주일을 다시 좌선수행후 바닷가 굴속으로가서 관음보살을 친견했다합니다
그 의상이 기도하던곳 이곳에 정자를 지어서 의상대라 했답니다
의상대에서 바라본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만났다는 바닷가 동굴 홍련암입니다
그리고 홍련암을 멀리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바다절벽 그위에 홍련암을 지었네요
그마루바닥 밑이 용암이 왔다갔다하는 바닷길이라지요
여기서 오늘의 주인공 전종현 셀파를 기념합니다
왜냐구요?
똑같은 자리에서 저를 인증하기 위해서랍니다
이렇게 말이죠
이사진이 제얼굴 나온 처음입니다
그리고 왁자지껄 단체분들 앵글에 들어왔지요
보기 괜찬은데요
의상대에서바라본 태평양의 일부입니다
멀리 수평선넘어 미국도있겠지요
또 딴방향을 봅니다
해수관음보살상이보입니다
숲속에서 머리 내밀고
" 너희들 뭐하니? 다보고있다"하고 말씀하시는듯합니다
이제 홍련암으로 갑니다
가는중에 보는 의상대입니다
절경입니다
의상대사 기도빨 깨나 받았겠지요
그 절경을 촬영하십니다
사람들 보는 눈이 똑같지요
내가 좋으면 너도 좋은거야
좀더 전진했지요
이젠 바다까지 한 화면에 넣을수가있읍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홍련암앞에 이런 봉사를
한점 집어 먹었읍니다
정말 좋은 일이 생길것 같지요
감사합니다
이분도 맛있게 드시고 계십니다
맛있지요?
이제 홍련암입니다
홍련암이란 이름은 의상대사가 친견한 관음보살이 붉은 연꽃 위에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또한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한 곳이 홍련암 바로 밑 바닷가 동굴(일명 관음굴)이기 때문에
그 위에 지은 홍련암은 관음굴이란 별칭으로도 불렸습니다.
* 홍련암에서 꼭 봐야 할 것은,
내부 마루바닥의 유리창을 통해 바닷속 관음굴을 오가는 동해용왕입니다.
동해용왕이 홍련암에서 울려 퍼지는 염불소릴 듣기 위해 홍련암 아래 굴 속으로 온다고 합니다.
용왕이 목탁소리를 들으러 온다는 해저 동굴입구입니다
출렁이는 물결이 정말 용왕이 올것만 같읍니다
마루바닥에 난 구멍입니다
작아요 타일한장정도
사진 찍지 말라고 되어있지요
절하는척하면서 찰칵했답니다
이것이 마루바닥을 통해본 해저 동굴입니다
용이 보이시자요?
난 보이는데요
이분 복전함에 돈 넣으시고 그냥 가시려하기에
두꺼비(삼족섬)를 만지라 했읍니다
꿈과 소원이 이루어 질겁니다
삼족섬’은 세발달린 두꺼비이다.
옛날 세발로 태어난 기형두꺼비를 죽이지 않고 잘 보살펴준 사람이
어느 날 그 두꺼비가 동전을 물고온 뒤로 대부호가 되었다나,,, 어쨌다나,,,
그 뒤로 조금은 흉물스럽지만 중국이나 우리나라 귀염을 받고 있지요
어떨땐 다기로 만들어지기도 한답니다
이제 홍련암을 떠납니다
다시 의상대 앞입니다
홍련암 관람 마치고 일행을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일행들을 담아봅니다
그리고 또한분
의상기념관을 갈차례인데
이런 공사중입니다
여긴 다음에 따로 와보아야할듯합니다
이렇게하여 낙산사 역사 탐방을 마칩니다
다시 주차장으로 가는길입니다
낙산사 유람하는 꽃마차입니다
잠시 눈을 감고 저 마차를 타고 의상을 만나는 상상을 해봅니다
이제 다음 순서로 갑니다
진전사지입니다
진전사는 설악산가는길에있읍니다
낙산에서 10Km정도 거리이지요
약20분 버스로 달려갑니다
큰길을 지나 오솔길로 접어들고 잠시 오른쪽에 공사장 가설재로 포장되어있는 석탑이 보입니다
국보122호 진전사지 삼층석탑입니다
진전사를 이야기하려면 선종과 교종부터 이야기해야하지요
신라에 먼저 전파된것이 교종이지요
불교가 처음 전파되었을때 귀족의 종교였읍니다
왕족, 귀족에서 시작했구요
당연히 책으로 교리를 공부하는사람들의 종교였읍니다
그들의 종교가 교종입니다
그에 비해 대중의 종교가 선종입니다
선종은 교리를 몰라도 기도와 믿음만 가지고 부처를 섬기는거지요
대중속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선종이 전파되기시작합니다
그선종을 퍼뜨린 제1세대가 도의국사입니다
그도일국사가 창건한 절이 진전사입니다
지금은 그때 만든 이삼층석탑과 약1Km뒤에 설치된 부도가 남아있어
여기가 진전사지로 추측하고있지요
진전사,도일국사에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중입니다
이분 자녀들과함께 역사문화탐방 개근이신분입니다
역시 진지하십니다
1층탑신에있는 여래좌상입니다
1000년이 넘었는데도
선명하지요
국보급 가치가 충분합니다
가설재가 가리고
울타리가 쳐져있어 실감은 덜하지만
1000년세월견뎌온 우리 문화재입니다
공식적인 설명서입니다
1000년전 이곳에 절이있었겠지요
여기저기 주춧돌이 나열되어있읍니다
설명을 듣고 모두들 탑돌이를 합니다
비록 담장밖이지만
부처님은 마음을 알아줄겁니다
한바퀴 돌아 오시는 분들입니다
비록 대화를 곁들인 탑돌이이지만
마음만은 진지하답니다
이렇게 두손모아 돌고 계시는분도있구요
손은 안모았지만 경건한 마음을 부처님께 전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이분도 손을 뒤로하며 걸으며 1000년전을 상상하십니다
그리고 약 1Km떨어진
진전사지로 갑니다
이곳 3층석탑에서 1Km떨어진곳에 사찰터가있다함은
얼마나 큰절이었는지를 말해주는겁니다
절에대한 기록이 별로없어서
모든걸 상상하라는 해설사님의 말씀입니다
지금은 이름만 같은 진전사라는 절이 들어서있읍니다
도의국사요?
대관령 국사당에가면 신전이있지요
거기 도의국사 신전이있답니다
강릉 단오제가 시작하는 곳이지요
신라교종에 밀려 이곳에서 40년간 수도하며 후진을 양성했지요
진전사를 찾은 오늘은 잔칫날입니다
오늘따라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많지요
우리땅 걷기 답사단이 버스2대로 우리와 같이 이곳을 찾았답니다
그전에 도의국사부도 헌다 예식을 하고있었구요
거기에 갑자기 비까지 찾아왔답니다
여기는 진전사지부도탑입니다
정면에는 천막하고 제례음식이 차려져있구요
아낙네들이 법의를 입고 다기를 들고 제례행사를 준비중입니다
오늘 행사에대한 현수막도 걸려있구요
그혼잡한속에서도 행사를 진행하고 있답니다
행사는 행사이고요
우리땅 답사자의 가이드는 확성기로 부도에 대한 설명이 한창이십니다
이부도는 물론 보물이고요
일반 사리탑과는 모양이 많 특이하여서 가치가 더있답니다
도의국사 부도탑이 아닐까 한다지요
새로지은 진전사입니다
고증이나 복원같은 개념은 아닌듯 합니다
불당에 적광보전이라 쓰여있는데 안에모신 불상은 석가모니불상을 모셨네요
서가모니를 모셨다면 대웅전이 되어야하는거 아닌가요?
불당안에모신 석가모니 상입니다
우리땅 걷기 해설가이십니다
꽤 유명하신 분이랍니다
다시쓰는 택리지의 저자 신정일씨라지요
우중에 해설에 여념이 없으십니다
우리 대원들도 사진 찍기 에 여녀이 없으십니다
우중 진전사 탐방을 마칩니다
빨리 하조대를 탐방하고 서울로 가야하니까요
그리고 그사이 비는 그쳤답니다
다시 낙산사 들러서 해설사 내려드리고
이곳 하조대 약 1시간에 걸쳐서 도착합니다
이곳도 동해를 따라 이어진 해파랑길의 한구간입니다
그해파랑길중 강원도구간을 낭만가도라 부른답니다
그리고 이곳 하조대
하씨와 조씨가 경치좋은곳에서 술한잔 하셨다지요
얼마나 경치가 좋았으면 바쁘신 분들이 여기까지와서랑
잠시 정자먼저갈까? 등대먼저갈까?를 망서립니다
등대를 택합니다
등대가지전인데
동해바다가 눈에 확뜨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출렁이는 파도를 맞이하는 바위들
그물결에 이런 멋진 모습이 되었을겁니다
다시한번 멋진 풍경에 눈을 빼앗깁니다
누가 더 멋있는지를 내기하는듯합니다
도찐 개찐 거기서 거기다
둘다 우수한단 말입니다
바다만 보니 바위가 말하지요
나도 좀보아달란말야!
그래그래 너도 멋져~~
그리넓진 안ㅎ네요
바로 등대 입니다
단숨에 올라갑니다
등대옆에 돌고래 상으로 만껏 멋을 냈읍니다
없어도 멋있는데
그리고 정자쪽 풍경을 바라봅니다
왼쪽바위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애국가" TV에서 틀어줄때 나오는
바위에 뿌리내린 소나무라지요
이따 정자에서 보면 더 멋있을겁니다
이바위인데요
정자에서 보는게 더 좋을겁니다
이곳에서 사진찍는분 몇분 올려봅니다
이분은 타임이 조금 늦었나봅니다
그레도 배경이 좋으니 받아가세요
이제 정자로가는중입니다
바위사이로 보는 애국가 바위 괜찬치요
힘찬 태평양 물줄기를 바라보며
힘을 만들어봅니다
아자!
정자로 오르는계단입니다
쉽지않네요
산행으로 왔다면 오히려 쉬웠을건데
정자입니다
정자에서보는 모습 기대가 됩니다
이분들 약혼사진 찍으러 오셨나요?
아주 잘알 어울리십니다
하조대
여기가 정식하조대입니다
여기서 하씨조씨가 술을 먹었나보지요
오래되었을테니 정자도 수십번 지었다 헐었다 했겠지요
재개발사업이요
아 그애국가 소나무입니다
역시 멋집니다
그바위에 뿌리내리고
얼마나 오랜세원 버티고있읍니다
우리민족같이요
우리모임 총무님입니다
사진을 찍어드린이유가있읍니다
이사진을 얻기위함입니다
고맙읍니다
또 다른분도 한번 담아봅니다
잘 어울리네요
이곳 정자에서본 등대입니다
역시 바다는 등대가 있어야겠지요
멋들어집니다
하조대를 끝으로 오늘 역사탐방을 끝냅니다
그냥 여행시 경치가 좋구나 하며 의미없이 찾았던 낙산사입니다
그낙산사에 의상대사를 알고 원효대사를 알고
8번이나 중건한 낙산사가 우리민족의 수난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절입니다
그만큼관음의 기가 서려있는 절이란 이야기겠지요
우린 수많은 폐사찰을 봅니다
그사찰들은 그만큼 영험이 다했기에 폐찰이 되지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는 현대를 살아갑니다
역사는 현대의 스승이라 합니다
낙산사만 보더라도 얼마나 숨기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있지요
그런 지혜를 우리는 배우는겁니다
경치좋은 의상대 하조대 그리고 천년고찰 진전사
아주 보람된 기억을 남기고 왔읍니다
주최하신 전종현셀파님 정식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 역사 탐방이 기다려 지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