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거서간(居西干)이 탄생한 나정(蘿井)과 신라의 종막을 내린 포석정(鮑石亭)도 이곳에 있다.
그외에 왕릉들도 이곳의 여러 군데에 있어 이 산을 신라 역사와 유적의 산이라 부른다.
더욱이 6세기초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후로는 부처의 산으로 신앙되어 많은 절과 탑이 세워지고 불상들이 조성되었다.
남산에는 높이 494m의 고위봉(高位峰)과 468m의 금오봉(金鰲峰) 두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이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계곡 이하 모든 산악을 남산이라한답니다
재작년 이곳을 찾았었다
이 먼곳인데 또 갈 생각을 하니 깜깜했는데
100산 시작했으니 가야는겠고요
이곳 저곳 기웃거리고
드디어 4월5일 남산을 가게 되었다
코스는 아래 지도와 같이 용장골에서 시작하였다
그리고 남산의 제일높은 봉우리 고위봉을 거쳐서 그유명한 칠불암을 보고
실질적 정상인 금오봉을 찍고 삼릉으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산행도중 알인케가 잠시 죽어있었다
이무기능선에서부터 칠불암구간 약 2KM 가 기록이 안되었다
그래서 궤적이 중간에 꾾기었다
내가 궤적을 직접 그려 연결해논 그림이다
해발 500미터가 안되는 산이다
하지만 산행은 딱 그만큼 힘들었다
거리는 약 10 KM 4시간30분 소요되었다
용장골에 버스에서 내린시간은 11시였다
이곳은 용장1길 2길의 경계이다
산으로 가는길은 이런 개울길을 따라 올라간다
시작점에서 바라본 남산은 오전까지 내린비 가 막그쳐서인지
산에는 중턱까지 구름이 걸려있다
용장마을을 통과하며
이지역 삶을 같이 동참한다
참살이 마을 어째 유기농 식품 냄새가 남다
용장사지와 고위봉 갈림길이다
우린 고위봉으로 직진한다
경주는 미나리가 유명한가보다
청정미나리 란다
생으로 먹는단다
미나리 전으로 먹어도 맛있는데
콘크리트 도로 왼쪽에 화장실이다
그대로 왼쪽으로 들어간다
이제부터가 남산을 산행하기 시작하는것이다
계수기에 내가왔음을 신고한다
남산
서울보다 한참 남쪽이다
멀리서온 손님을 이제한창인 진달래가 환영해준다
편안한 길가에 양쪽 모두가 활짝핀 진달래이다
암벽에 밧줄이 걸려있다
안개속이 바위능선이다
남산의 그유명한 이무기 능선이 시작되는곳인가보다
이어지는 바위능선이다
빗물에 젖어서
분홍빛이 청순해보인다
그래서 더 눈길이 가는 꽃이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렸나보다
꽃아니면 누가 진달래라 하겠는가?
나도 진달래야! 하고 외치는 듯하다
절정을 이룬 진달래 밭이다
길양쪽 도열해서 환영해주는듯하다
남산을 오르는 길 중에서 가장 힘들고 경치 좋은 코스를 꼽는다면 서슴없이 이무기능선을 들 것이다.
이무기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처음부터 가파른 경사와 밧줄을 타고 올라야하는 암반길이 대부분이다.
땀 흘린 만큼 바위와 어우러진 자연풍광은 감탄사가 저절로 발사될 정도로 좋다.
누구에게든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아름다운 등산코스다.
고위봉이 남산의 최고 정상이라고 하지만 정상에서 보이는 전망은 오히려 나무에 가려 어둡단다.
정상에서 동서남북으로 조금씩 내려와야 훤하게 트인 전망과 남산의 맛을 음미할 수 있게 된다.
바위로 이루어진 이무기능선도 고위봉 조금 못미쳐서 툭 튀어나온 첫 번째 바위틈에서 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꿈틀거리며 승천하는 이무기의 모습을 그대로 감상 할 수 있다. 전망 좋은 곳이란다.
어느덧 정상도 700미터전방이 되었다
그리고 또 바위 몇개를 오르고
내리고한다
이렇게 밧줄로 직하강도 했지요
그리고 안개속 사람소리 요란한곳
이곳이 남산의 최고봉 고위봉입니다
일단 고위봉 정상석에 신고합니다
그리고 내가왔음음을 인증하지요
더이상 지체할이유가 없어요
고위봉이 높기는하지만 남산의 정상은 금오봉으로 되어있답니다
세종대왕이 그랬듯이 형님들 제끼고 왕이되는 사례가 좀있지요
그래서 여긴 건성으로 통과합니다
다음 목적지 칠불암을 향합니다
처음 칠불암으로 향하는길
이렇게 행복합니다
주변의 진달래는 우릴 반기고있어서 발걸음도 가볍답니다
정오가 지나서 12시30분입니다
그동안 산허리를 감싸던 구름이 많이 물러났읍니다
멀리 경주 시내가 조망되네요
칠불암을 향하는데요
칠불암은 내려가는길입니다
다시 올라 갈 것을 생각하니 내려가는 길이 그리 반갑지는 않읍니다
암벽사이 내리막길을 지나고
구슬픈 대금소리와 함께 대나무 숲을 통과합니다
여기가 칠불암입니다
칠불암 부처앞에서 어떤분이 대금연주를 하고계십니다
뭔행사가 있는중입니다
부채에 그림을 그리시는분도있구요
하양 하복을 입고 인형같이 서계시는분도있읍니다
부처에게
차와, 향과, 춤 그리고 그림을 받치는 행사입니다
우리가 시간을 잘 맞춘거지요
이렇게 그림을 바치는거구요
향도 피워서 기원합니다
악기도 연주하구요
그리고 대금에서 풀피리로 바뀌더니
여지껏 모든걸 지켜보던 도사인 듯한 분이
선녀로부터 향로를 전달받읍니다
그리고 향로를 바라보며 엄숙한 표정을 짓고는
천천히 걸어갑니다
향무라하네요
향로를 들고 추는 춤인듯합니다
여기 신라에서오신 여인네들이죠
이분들도 신기한듯 스마트폰으로 기록합니다
우리같이 등산오신분들 정말 눈이 횡재했답니다
그져 신기하게 구경 잘했지요
담장에 걸쳐있는 기와들도
구경잘했다는 모습입니다
칠불암은요?
마당에 있는 바위에 아미타삼존불을 비롯하여 사방불(四方佛)이 조각되어 있기 때문으로서,
이 칠불은 조각수법이 빼어날 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방불의 연구에 귀중한 유물이 된다.
또, 이 절의 위쪽 신선바위(神仙巖)에는 반가상(半跏像)을 한 보살상이 있는데 매우 빼어난 작품이다
총 7개 불상이 있다해서 칠불암입니다
암벽이나 구릉에 새긴 불상 조각한 불상으로 마애불이라고도 한다.
한국을 비롯하여 인도ㆍ중국ㆍ일본 등에 퍼져 있으며 수법도 양각(陽刻:浮彫)ㆍ음각ㆍ선각(線刻) 등 다양하다
대단한 유물입니다
당연히 국보급이겠지
그러나 보물200호입니다
면면히 조각된 불상을 보세요
1000년을 버틴 조각들이
정말 섬새합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그당시 이런 조각을 기획하고 실행했다는것
자체가 더대단한듯합니다
아까 이야기한 칠불암위로 쭉 보면 보이는
신선암에있는 마애보살 반가상으로 올랐읍니다
우선 입구에있는 인형모양의 보살입니다
구색을 맞추어 놓은거겠지요
그리고 주연입니다
이험한언덕에 오랜동안 작업하여 만든 마애불상입니다
언덕밑 까마득한 그아래
아까 칠불암에 모인 사람들이 개미같이 보입니다
위에있는 저와같이 잘생긴사람에게 가도하는건 아니겠지요
그래도 제가 저아래 중생에게 축복을 내렸읍니다
밑거나 말거나
정면으로 불상을 바라봅니다
정말 정교합니다
이런 위험한곳에서 이런작업을 했다는거
그것도 1000년전에
그리고 이렇게 정교한 불상을 만들었잔아요
예전에는 아마 지붕도 있었나봅니다
다시 금오산을 향해갑니다
가는길 철갑을 둘른 소나무를 봅니다
이곳 경주 괜찬은 소나무 꽤있네요
가는길 암벽으로 좁은 바위길도 통과합니다
그리고 또 진달래가 나의길을 환영해주지요
진달래?
다큰것 같기도하지만
이렇게 좀 늦은놈도있답니다
그래도 이곳 경주는
대부분의 진달래가 이런 상태랍니다
이재 이영재를 통과합니다
이곳 이영재는
꽤 커다란 소나무가 숲을 형성하고 있지요
정말 볼만한 소나무입니다
임도길 같은 길을 가고있는데요
삼화령이라는 안내판이보입니다
위 안내도와 같은 방향으로 경치를 맞추어 봅니다
잘 맞지는 않구먼요
삼화령의 이야기는 지금도 이를 복원하여 다례를 지내고 있는 남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낭만적인 곳이다.
경덕왕 때 충담이란 스님이 해어져 누빈 옷을 입고 망태기를 지고 길을 가다가 임금님 앞에 불려 나간다.
어디에서 오는 중인가를 묻는 임금님에게 "소승은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에 남산 삼화령에 있는 미륵세존께 차를 달여 드립니다.
지금도 차를 올리고 막 돌아오는 길입니다." 라고 대답한다.
차를 달여 차 공양을 드린다는 바로 그 삼화령이 남산에 있고,
지금은 경주박물관으로 옮겨다 놓은 삼화령 삼존석불이 바로 그 때 충담스님으로부터 차 공양을 받던 그 석불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충담스님은 향가를 잘 짓기로 이름이 나 있었는데 임금의 청을 들어 '안민가' 한 수를 읊고 간다.
<안민가>
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사랑 많은 어머니요
백성은 어리석은 아이라면
백성들이 어찌 임금 신하의 사랑을 모르리
꾸물꾸물 생명을 이어 사는 백성들
그들을 먹여 다스리네
그렇다면 백성이 이땅을 버릴 수 있겠는가
자연히 나라가 유지되리라
아..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한다면
온 나라가 태평하리라.
저그림과 같은 모양을 찾읍니다
이바위 모양이 비슷하지요?
이러면서 삼화령을 통과합니다
용장골은 남산에서도 가장 깊은 계곡에 속한다.
용장마을에서 법당골로 들어가 절골과 열반골로 나뉘어지고
절골에서 줄곧 오른쪽으로 깊이 오르는 골이 김시습이 은거했던 은적골이다.
용장사지 쪽으로 향하면 절터가있고 삼층석탑이 나오는데
오늘은 시간 관계상 그냥 통과하기로했다.
이길이다
좌측 옹장마을쪽 그냥 통과한다
계속되는 임도길이다
양쪽이 모두 금오봉이란이정표이다
죄측길로 금호봉을 택한다
비파골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있다
사진 모양과 같은 계곡을 찾을수는 없다
그리고 정상을 향해 전진한다
정상이다
인증을 위한 사진이필요하다
몇장의 사진을 부탁했는데
구도가 맘에들지않아서 계속 부탁했다
7~8컷을 계속했지만 마찬가지이다
그분을 모델로 내가 시범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찍어달라고
하지만 역시 맘에 안들어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그분 내려가신후 다른분에게 다시부탁한다
겨우 인증사진 한장 건진다
그리고 정상석도 한장 남기고
그리고 한장더 인증하고 정상을 마무리한다
남산이 생긴 유래를 이야기한 안내판이다
남산은 남자신이 산이되었고
망산은 여자신이 산이되었답니다
저기 멀리 보이는 부처님이 상선암 마애석가여래좌상입니다
지남번 왔을때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데
이제 완성되었나봅니다 비개가 모두 철거되었읍니다.
카메라 망원을 한번 써봅니다
선명하게 잘보이네요
지금까지 올라 오면서 불상들의 이름을 부를때 마애불이라고 하였는데
(문) 마애란 무슨 뜻 일까요.?
(답) 마(摩) 갈마자요. 애(崖) 낭/더러지 애 자를 씁니다.
그래서 마애란 암벽이나, 석벽에 그림, 이나 글자,나 불상을 새기는 것을 말하는 것 입니다.
가까이서 보진 못하지만 굉장한 유물임이 틀림없읍니다
중간이지만 오늘 온길과 내려갈길을 잠시 생각합니다
내려갈길 삼릉 주차장방향인데
그길은 전번 산행에서 왔었으니
이번에 삼불사 방향으로 가기로 맘먹읍니다
옛날 국사곡 어귀에 외로운 할아버지가 홀로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동네 아이들을 보면 손자를 보는 듯 귀여워하였읍니다. 특히 피리라는 소녀를 더욱 좋아했다지요.
할아버지가 80세를 넘었을 때 피리도 자라서 어느덧 꽃다운 처녀가 되었고
이제 피리는 80이 넘은 노할아버지를 많이 보살펴 드렸답니다
그러던 어느날 피리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말았다.
그이후 할아버지의 눈에는 피리의 환상이 보일정도로 그리워 했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피리가 동네 손녀벌로가아닌 여자로서 그리워하는것을 느꼈답니다
그런 생각 느낌이 잘못된것을 인지한 할아버지는 국사곡 산정에 올라가서 피리가 피리를 기리다가 나무에 목을 메어 죽어 버렸답니다.
할아버지의 혼은 그곳에 큰 바위가 되어 피리가 살고 있는 마을을 늘 바라보고 서 있었다지요.
그후 피리는 무서운 꿈을 꾸게 되었다. 눈만 감으면 큰 뱀이 몸을 칭칭 감고,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며 덤벼드는 것이었다.
몸부림을 치며 깨어나면 그것은 꿈이었으나 너무나 소름끼치는 무서운 꿈이었다.
그 무서운 꿈은 한번만 꾸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으면 또 다시 되풀이되고 하니 피리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몸은 점점 쇠약해져서 볼품없이 되어 가는데 동리 사람들 사이에는 수군수군 이상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피리를 생각하다가 죽었기 때문에 그리워하던 생각이 상사뱀이 되어 피리를 찾아오는 거라는 이야기였다.
오랫동안 밤잠을 자지 못하여 괴로움에 지쳐 있던 피리가 어느날 몽롱하게 잠이 들었는데 몸을 감고 있던
뱀이 할아버지로 변하면서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아 죽어 버렸는데
죽어서도 잊혀지지 않아 피리 아가씨를 괴롭히고 있으니 용서해 주시오.
살았을 땐 죽을 길이라도 있더니 이제 죽었으니 죽을 길도 없구료."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힘없이 국사곡으로 들어가 바위가 되어 자기를 바라보고 서 있는 꿈을 꾸었다.
피리는 자기를 생각하다가 죽은 할아버지가 죽어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피리는 조용히 일어나서 할아버지가 힘없이 가던 길을 따라 국사곡으로 들어가서
정상에 서 있는 그 바위에 올라섰다. "할아버지, 인간세상에서는 나이 때문에 소원을 못 이루었으니
나이를 아니먹는 바위가 되어 원한 맺힌 소원을 풀어 드리겠습니다." 하고 바위에서 뛰어 내렸다.
피리의 영혼은 또 하나의 바위가 되어 큰 바위 옆에 나란히 섰으니 세상 사람들은 이 바위를 가리켜 상사바위라 한다.
지금 큰 바위부분에 붉게 보이는 반점이 있으니 그것을 피리의 핏자국이라 한다.
상사바위하단이다
뭔가 구조물이있었던 흔적이있다
상사바위 안내판이다
경주시내를 한눈에 볼수있는곳이다
사진대로 찍어보았다
날이흐려 제대로 볼수없군요
삼불사쪽을 택해서 하산한다
이쪽은 문화재가없네요
대나무밭 삼불사에 접근한듯하다
삼불사 먼저 만나는건
삼불사 경내에서 조금 떨어진곳에있는 배리삼존불입상이다
반대방향에서 3불상을 모두 넣어보았다
배리삼존불입상은 선방사 터 부근에 흩어져 누워 있던 것을 1923년에 모아서
세워놓은 것이라고 했다
이곳의 삼존불입상은 남산의 유물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곳으로 알려졌다.
중앙의 불상은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불이다
왼편은 자애로운 미소의 관세음보살이고 .
오른쪽은 대세지보살이라고 한다.
경주에 가면 눈에 띄는 오래된 석물들은 모두가 문화재로 보인다.
석물들이 얼마나 오랜세월을 버텨왔는가, 속절없이 흘러온 세월을 되짚어 보고 싶어진다
그위에 작은 부처를 세워서 외로움을 달래준다
그리고 이렇게 화려한 불상도있다
그리고 삼불사 경내이다
산신각인듯한데
이름이 없다
경주도 남녁이ㅣ지
벌써 드릅이 나잡어먹어라 하며 커가고있네요
삼불사는 알려지지 않은 작은 절이지만
오래된 석탑과 삼존불입상이 있어서 그냥 지나치지 않은 사찰이다
탑의 지붕도 여러탑의 것을 주워 모아놓은듯
모양이 다르다
이쁜 꽃들과 어울러진
삼불사의 맑은 봄날 풍경이다
삼불사 옆 길가에있는 절 망월사이다
망월사는 불교 원효종의 사찰이란다
그래서인지 일반 절과는 좀 다른 모습이 있지요
일반 절에있는 사천왕상이없구요
대문에 그림으로 그려놓았답니다
대웅전 인듯하구요
상당히 고풍스러운 사찰입니다
경주시내 벗꽃길입니다
버꽃이 한창이지요
길가에있는 석물가게입니다
최근 만든것이겠지요
하지만 경주에 있다는것이
문화재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경주는 돌하나에도 문화재일수 있지요
마지막으로 벗꽃 구경을 합니다
그리고 삼릉 주차장으로 왔답니다
토함산간 버스가
꽃놀이 차량에 막히어
1시간이나 지체되었답니다
이렇게 남산 산행을 마치었답니다
처음왔을때 남산에 대한 느낌을
이번에 더했으면 하는생각이었지만
오늘은 역사 탐방보다는 산행에 주력한듯합니다
30번째 명삼 100산을 이렇게 마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