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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8) 2014.11.08. 주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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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1.106m문경의 진산(鎭山)인 주흘산은 ‘우두머리 의연한 산’이란 한자 뜻 그대로 문경새재의 주산이다명산이란 계곡과 풍경 그리고 역사가 있어야 한다 했다여인의 하반신과 흡사하다 하여 이름지어진 "여궁폭포"를  비롯한 깊은계곡을 가지고있고 육산과 바위산의 멋을 겸한 빼어난 산세와 함께 문경새재를 끼고 있고

통일 신라시대에 보국 국사가 창건했으며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했다는 혜국사가 있는 이산이야 말로 명산인것이다.오늘 역사문화탐이 바로 명산 주흘산 인 것이다

오늘산행은 역사문화탐방을 겸하고있어 시간이 많이 소요되므로

아쉽지만 영봉은 제외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오늘은

주차장-제1관문 - 여궁폭포 - 대궐터 - 정상 - 전좌바위 - 꽃밭서덜 - 제2관문 - 주차장

이렇게 하였다

지나간 트랙이다

지나간 거리를 볼때 좀 길지 않았나 생각했지만

어째든 나의 알케인은 15Km를 걸었다고 했다

그 총거리는15.32Km 인데 소요시간이 7시간 20분이나 걸렸다

하지만 지루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또다른 재미가 있었다는거다

 

 

서울서 6:30분 출발해서

이곳 주차장에 도착한시간은 10:15이다

작지않은 주차장인데

버스로 가득하다

이버스는 우리가 타고온  조인성이가 그려진  버스이다 

버스가 어디에 서있어야하는건 기사님일이다

우린 상관하지않고 바로 산행에 들어간다 

앞에 3명은 버스에서 보지못했던 가족이다

그런데 블랙야크 자켓을 입고있다

버스 예약이 끝나서 개인적으로 차를 가지고 이탐방에 참가했다한다

우리오길 기다려서 합류한 것이다

매표소 입구이다

차량통행 불가능하며

주변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들이 조하롭게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있다

역시 과거보러 가는 길 답게

입구 좌측에 선비상이 서있어 길의 의미가 더한 듯하다

그리고 옛길 박물관

우린 주흘관(제1관문)까지는 각자 가는것으로 되어있다

여기도 역시 전국적인 걷기열풍에 비껴가진 못했나보다

소조령길 36Km를 4개구간으로 나누어 갈수있도록 유도하는것같다

여기가 문경새제이다

경상도에서 서울로 오는길중 충청도로 넘어가는길

험하고 높아서 새도 넘기 힘들어 조령이라고도 한다

물론 지리적으로도 영남과 구분되지만

군사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고개이다

임진왜란?

이곳에 현명한 장군이있었다면 역사가 바뀌지않았을까? 

 

이길은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을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이 찾는 길이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걷기길이 되었다

걷기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전기 자동차가 다닌다

정말 미련한 사람들이다 

지금은 볼수없는 사과박스이다

문경의 또다른 특산물인 사과를 상징하는듯

사과박스로 하트를 만들었고

사람들은 환호한다

잘했다

 

1관문으로 가는길

관광객을위해 단풍으로 길을 꾸며놓아서

관광객들 마음이 푸근하다

역시 잘했다

단풍나무가 끝날무렵이다

붉은 나무아래 남대문이 보인다

아니 주흘관이라 되어있다

보기 좋다

역시 잘했다

제대로 된 전경이다

뒤 주흘산이 배경이되서

보기가 참 좋았다

단풍을 지우고

다시한번 주흘관을 조망해본다

제대로다

문 오릉쪽 성곽이다

성곽에 뚫린 수문과 햬자(적의 침입 위해 주위 둘러서 못)? 이다

기록상 이문은 시구문으로 되어있다

성내 시체가 나가는 문일것이다

물론 적들이 들어가는것도 막는 장치가 되어있을 것이다

성곽에 모이는 사람들이 보이시나요?

우리팀들은 모이고

다른 관광객은 빠져나갑니다

"채"가있지요 채보다 작은건 다 빠져나갑니다

건덕지만 모이는거지요

건덕지가 바로 블랙야크 회원들입니다

그 중심에 선분이지요

오늘을 기획하고 진행하시는 세르파이십니다

정렬적인 몸짓과 현란한 말솜씨가

우리 40여명 흡수하기 충분합니다

사르파의 설명이 계속됩니다

최명길은 조선중기 인조때 영의정까지 오른 문신이었다.

그에게는 문경새재 성황당과 관련된 전설이 전한다.

최명길이 소년시절 안동부사로 있는 외숙을 찾아가는 길에 문경 새재를 지나가게 되었다.

소년 최명길이 집을 떠나 어두워지는 새재길을 바쁘게 걷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웬 젊은 여인이 그를 따라오고 있었다.

“누구시오” 하고 최명길이 여인에게 물으니,

여인은 “혼자 가기가 무서우니 함께 걸읍시다” 하고 동행을 요청했다.

그는 무서웠지만 한편 안심이 되기도하여 기꺼이 승낙하고 그녀와 동행하게 되었다.

 

최명길은 섬뜩한 마음도 들었다. 

'이 여인이 혹 귀신이거나 구미호일지도 일지도 모른다' 고 생각하며 정체가 궁금하여,

바짝 경계를 하였다. 드디어 그 여인이 솔직하게 얘기해 주었다.

“저는 사람이 아니오라 새재 성황신입니다.

어느 날 안동에 사는 모 좌수가 서울에 갔다 오던 길에 성황당 앞을 지나면서

성황당에 걸려 있는 치마를 보고 욕심을 내어 훔쳐다가

제 딸년에게 주었으니 이런 고약한 자가 어디 있습니까? 

지금 좌수의 딸을 죽이러 가는 길인데 우연히 공과 동행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최명길은 속으로 몹시 놀랐으나 겉으로는 태연하게 말했다.

“인명은 재천인데 그만한 일로 사람을 죽일 것까지 없지 않겠습니까?” 고 넌지시 타이르듯 말을 건네었다.

 

“공은 머지않아 정사공신(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에 1등 공신)으로 영의정에 오를 분이시며,

 호란(뒷날 1636년의 병자호란)시에 큰 공을 세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명나라는 망하게 되고 청나라가 흥할 것이니 부디 청나라와 화친하여

이 나라 사직을 보전하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 좌수의 딸을 죽일 것이나 공의 체면을 보아 징벌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그러니 공은 제 체면을 세워주십시오.” 라고 말을 한 뒤 홀연히 사라졌다.

 

최명길은 성황신를 만난 것을 이상히 여기고 서둘러 안동 좌수댁을 찾으니

과연 좌수의 딸이 급사하여 집안이 매우 어수선하였다.

이에 주인을 찾아 인사를 드리고 나서 딸을 살려주겠다고 말을 한 뒤 딸의 방으로 갔다.

좌수 딸의 방 안에 들어서자 새재에서 보던 성황신이 좌수 딸의

목을 누르고 있다가 공을 보고 반기면서 “이제야 오십니까?” 라며 인사를 하였다.

 

집안 식구들은 성황신과 최명길이 대화하는 것을 들을 수는 있었으나 성황신을 볼 수는 없었다.

소년 최명길이 좌수에게 성황당에서 가져온 치마를 불사르게 하고 깨끗한

음식으로 제수를 갖추어 제사를 지내게 하였더니 딸이 다시 회생하였다.

병자호란시에 주화파 계책이 일찌기 성황신과의 인연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野史에 전한다.

하는 말씀으로 정렬적인 진행합니다

 최명길은 인조반정에 공을 세우고 호조판서 직위로 있을 때 병자호란(1636년)이 일어났다.

 인조와 조정 신하들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

산성에 포위되어 농성을 하는 와중에도 청나라와 끝까지 전쟁을 계속하자는

김상헌과 3학사들로 대표되는 척화파 신하들의 주장이 우세하였으나,

최명길은 홀로 청과 화친을 주장하는 주화파로서 항복문서를 쓰고,

화청和淸정책을 써서 국난을 수습하였다.

 

최명길이 영의정이 된 것은 병자호란이 끝난 후이며,

우의정 좌의정을 다 거치고, 최고의 관직인 영의정에 올랐다.

한차례 역임한 후에 물러났다가 재차 중임하는 중에

임경업 장군 등 반청이 알려지자,

김상헌과 함께 청나라에 불려가서 고초를 당하고,

1645년에 귀국하여 인조를 보필하다가 2년 후에 별세하였다.

는 말까지

그리고

후삼국시대 후백제를 건설한 견훤왕은 문경출신이었다. 그에 얽힌 설화이다.

그리고 입구에 음각으로 쓰여있는 축조한사람들 이야기까지

정말 진지하게 말씀하심에 우리말고

지나던 모든 관광객이 감동합니다

이쪽이 성곽 바깥쪽이지요

제1관문, 제2관문은 남쪽방향이 바깥쪽이랍니다

왜구를 막기위한거고요

제3관문은 북쪽이 바깥쪽입니다

북쪽의 오랑케 여진족를 막기위함이랍니다

제1관문 이름은 주흘관입니다

그리고 성 안쪽현판은 이렇게 영남 제1관이라 쓰여있지요

영남은 조령의 남쪽에서 유래되었다지요

제1관문을 들어서니

우리축산물 홍보중입니다

그일환으로 찐계란을 나누어줍니다

우리야 좋지요

간식으로 하나씩 가져갑니다

정식으로 산행행사를 진행합니다

우선 체조부터 합니다

세르파 한분의 지휘하에

둥글게 서서 모두들 따라합니다

사실 바쁘게 가기가바쁜데 정말 잘하는 겁니 다

정말 진짜 산행이 시작됩니다

시작은 모두 신나지요

즐겁게 용감하게 출발합니다

폭포휴게소 첫번째 삼거리가 나왔읍니다

폭포를 통하는길과

바로 정상으로 가는길 삼거리입니다

우린 폭포를 가야합니다

세르파님이 이야기를 준비했거든요

주흘산

명산이기에 역사만이있는건 아니지요

산높이가 1000미터가 넘는만큼

충분한 계곡이있답니다

또 그만큼 이쁜 계곡도 가졌지요

산세도 또 계절에맞는 단풍도

명산에 맞는 절경을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도달한곳입니다

멀리서보아도 폭포다! 소리지를만 합니다

해발 340미터 여궁폭포입니다

세계어딜가도 여궁폭포라는 이름을 가질수 있을까요?

폭포아래에서 위로쳐다보면

여자의 자궁같은 모습이 보인답니다

폭포물이 모이는 이곳입니다

이곳은 파랑소라합니다

파랑새라고 아시지요?

사람얼굴을 닮은새가 파랑새입니다

파랑새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새라지요

파랑소 역시 같은 의미랍니다

이따 하산시 나올껀데요

용추폭포가 있답니다

용추에 용 역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상상속에 짐승입니다

그래서 용소는 용이 놀수있을만한 호수를 용소라 합니다

이곳 파랑소에서 돌을 굴리면 용추폭포에 건질수있답니다

하늘과 하늘을 연결하는거지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내리는 폭포는 새롭게 보입니다

폭포를 뒤로합니다

아까 삼거리길 과 연결되는 삼거리 의미없이 지납니다

다시 정상을 향한 산행이 됩니다

물론 명산의 풍광도 즐겨야지요

그리고 가을로 화장한 그모습까지도요

사실 단풍은 사진이 훨씬 좋아보입니다

실제는 별로인데

간혹 몇그루의 나무때문에 환호하지요

우리산의 대다수는 참나무입니다

참나무잎은 단풍이아니라 낙엽이지요

그색깔 하나한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단풍과 같이보면 괜찬거든요

바닥을 참나무 입으로 도배를 했네요

그리고 어울러진 계곡의 물줄기

아직은 소리가 요란한데

점점 작아지겠지요

동장군이 먹어버릴테니

그낙엽과 계곡이 갚은 가을을 보여줍니다

여기는 작은 양폭을 만들었군요

좋읍니다

아주 보기 좋읍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세르파님 돌무덤에대한 설명이십니다

마을경계

호신

전염병 등등

설명한내용으로 퀴즈까지 진행하십니다

그리고 계속 전진

계곡에 아치교라?

보아줄만합니다

잘하셨네요

 그러니 나무사이로 멀리 사찰이 보입니다

혜국사이겠지요 

등산로는 오른쪽이지만

혜국사 보고와야겠지요

잠시 다녀오겠읍니다

이정표뒤로 혜국사가보이고

정상까지는 아직도 2Km임니다

아래에서 혜국사 전경을 살펴봅니다

혜국사가 비구니 절이라지요

여인을 품은 절이라서인지 아름답다는 생각입니다

진입하는 계단도 곡선을 이요합니다

여인의 엉덩이같이

혜국사에 올라 아까 삼거리를 뒤돌아봅니다

우리팀 주류가 도착했네요

안내세르파를 중심으로 사람들 모여있읍니다

신나게 이야기중이십니다

혜국사 요사체입니다

난과함께 수수함이 그대로입니다

긴계단위 대웅전이 보입니다

구조 배치 그리고 산과의 조화가 예사롭지않읍니다

혜국사는요

신라 말에 보조선사()가 창건하여 법흥사()라 하였다.

그 뒤의 중창 및 중건의 역사는 알 수 없으나, 고려 말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서 이곳에 머물렀답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 절에서 의승()이 많이 나와 나라를 구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으므로,

나라에서 절 이름을 혜국사라고 하였다합니다

우리세르파님 사람들이 많아지자 정말 신이나신듯합니다

그리고 전 혼자가 되었읍니다

그렇게 그렇게 오르니 혼자 대궐샘으로 왔네요

홍건족에 쫒겨서 피난온 공민왕이 임시 대궐을 짓고 살았다지요

그때 물이 있어야 임금님 진지상을 차렸겠지요

이곳에서 공민왕도 물을 먹었겠지요

누군가가 이곳을 정비해놓고

자기자랑을 했네요

100번 정말 좋은 숫자입니다

우린 100산을 향해가잔아요

대궐터입니다

비운에왕 공민왕입니다

홍건족에 쭞기고 왜구에 시달리고

이때까지도 자기가 고려 마지막왕이라고는 생각 못했을겁니다

대궐샘을 지나면서부터는

이런 계단길입니다

아주 긴길입니다

나보다 저질체력들 다들 넘어서서 올라왔답니다

그리고 계단이 없어지고

다왔는지 알았지만

아직 더많은 노력이 요합니다

그리고 나타난 길입니다

데크길

좋은길

뒤에오시는 좋은 분들

앞에가는 사람들 도둑넘

가는길 사람들 감탄하는 언덕 잠깐 들러봅니다

구름만 없었다면

정말 눈으로보는 것에비해 1/3정도입니다

여기는 오른쪽

여기는 왼쪽

그리고 아래부분입니다

절경입니다

남들이 감탄을 이해합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전좌바위 뒷편입니다

그리고 계단 조금더해서 정상에 오릅니다

정상이요?

사진찍기 정말 힘드네요

남들 사진 찍는데 정상석만 빌려왔지요

그리고 빅딜 아시죠?

제가 먼저 찍어드렸답니다

그리고 겨우 인증샸

그리고 인증 필요없는 자유사진까지 해결합니다

아직 주 병력은 아직 안왔구요

일부 회원만 보입니다

정상한쪽구석 점심만찬 준비했답니다

우리 사모님 준비해주신거거든요

막걸리 캔까지요

그런데 혼자서요

추워서 오리털 꺼네입구요

정상에서 바라본 주흘산입니다

오늘도 역시 보이는게 없네요

주흘산에서 바라본 오늘의세계

깜깜합니다

식사 끝내고 하산 하러 내려갑니다

주력부대 이곳에서 식사합니다

먼저먹고 내려가다 기다리는 이몸 불쌍해 보입니다

조금 친한척 해도 될텐데

기다렸읍니다

인내는....

다시 하산중

전좌바위입니다

공민왕이 앉아서 홍건족 소식을 기다렸다지요

얼른 이곳 산중생활 청산하고 대궐로 돌아가고픈생각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는 전좌바위입니다

좌우 바위가 문과같다해서 전좌문이라고도합니다

잠시 장기자랑입니다

이분 독학으로 국악을 했다는데

아리아리 아라리요~~~

보통이 아닙니다

상품 나갔읍니다

그리고 제2관문을 향합니다

내려가는길은 가을입니다

가을은 미끄럽읍니다

겨울과는 다른 미끄럽입니다

속임수

낙엽이 바위를 숨겨놓았지요

산 전체가 가을입니다

이게 뱀인가요?

나무가 나무를 감싸고 올랐네요

신기합니다

다시한번 다른방향입니다

돌무덤이 나왔지요

잠깐의 해프닝이있었읍니다

615 미터

퀴즈도있었지요

통과합니다

자연은 아니고요

조형물도있어지요

오래된 성곽의 흔적도 만납니다

그리고 점점 짖어지는 가을을 바라보지요

마자막으로 소리내며 가을을 지키려는 계곡입니다

물론 낙여1으로 화장하구요

여기요

영봉에서 내려오는길입니다

이추세라면 영봉 거쳤다면

불켜야했겠네요

그리고 도달한곳 꽃밭서덜입니다

서덜은 너덜길의 사투리랍니다

다시말하면 꽃밭너덜이겠지요

짜잔~~~

이곳이 꽃밭서덜입니다

커다란 바위에 물이들어가서 얼었다 녹았다한다지요

그럼 거바위가 쪼개져서 흘러내리면 너덜길이 됀다지요

이곳 너덜은 꽃과같이 이쁘게 되어있답니다

옛날 이곳 마을에 이쁜 부인이 살았다지요

그런데 이웃마을 노총각이있었는데 그만 그부인한테 뽕반했답니다

그래서 항상 호사탐탐 벼르다가

그여자 남편을 몰래죽이고 그부인을 데려다 살았답니다

그후 어느 비가오는날이었다지요

새로 남편이 된남자가 바를 보고 웃고있었답니다

부인이 물어보자 그남자는 남편을 죽인이야기를 했고 비오는 모습이 죽인 남편을 떠오른다나

그이야기를 듣고 부인이 새남편을 이곳으로 유인해 죽였다합니다

슬픈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곳 돌에 이렇게 올리고 기도를 하면 모든게 이루어진답니다

멀지않은곳에 이상한 바위가 있지요

작난 삼아 지팡이를 받쳐놓았읍니다

이지팡이가 이니면 쓰러질것같지 않나요?

제2관문으로 가는길입니다

단풍과 바닥의 낙엽이 가을을 꾸며줍니다

온산은 낙업으러 뒤덥혔지만

아직 물줄기는 힘차게 흘러내립니다

저 고개 산속에 성같은 흔적이 보입니다

성일까?

아닐까?

조금더 내려오니 뚜렸하게 성이 보입니다

총안도 있구요

여기가 어류성(임금이 머물던 성)입니다

고려왕건에 대항해싸우던 지역족장이 버티던 성이라지요

자연이 남대문도 만들었네요

지나가는 등산객 눈요기도하고 허리운동도하라구

산신령의 배려입니다

이제 산길은 끝난듯합니다

여전히 낙엽은 성시를 이루고있읍니다

그리고 제2관문에 도착했읍니다

제2관문(조곡관)에대한 설명입니다

조곡관 전경이구요

앞에는 조곡관이구요

뒷면은 영남 제2관입니다

성내부 사람들이 쉬고있는 모습이구요

성주변을 꾸며주는 단풍입니다

조곡관앞 조곡교를 지키는 해태입니다

임진왜란입니다

순찰사 이일장군이 고니찌에 패하자

조정에서는 신립장군을 전투에 투입합니다

신립은 기병입니다

문경새재는 험란하여 기병이 싸우기에는 어울리지않지요

그냥 문경새재가 뚫렸다는겁니다

싸웠다기보다는 그냥 통과했다지요

신충원이란 시장잡배가있었답니다

힘이좋아서 왜장 목을 부러트렸다지요

나라에서 공명첩을주어 성을 쌓게했답니다

그냥 일반 시민이었다지요

지금으로치면 조폭두목

오른쪽 성벽 모습입니다

이곳은 성 왼쪽으로 연결된 매봉이라고

매우 험한 바위산이었답니다

도저히 성만 지키면 왜적이 갈수 없는 험한곳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지휘관이 똑똑해야합니다

매봉 전경입니다

성안에 물도있어야겠지요

약수터표지가 있읍니다

저기서 물을 해결합니다

제2관문을 지나

문경 새재길입니다

처음보이는 곳이 물없는 폭포 조곡폭포입니다

조곡폭포는 정말 커다란 바위로 이루어 졌읍니다

큰바위 자세히 봅니다

뭐라고 글이 쓰여져있네요

뭘까요?

공적비입니다

이곳 현감들이 자기 머물렀다간것을 공적으로 해서 여기 명문화한것입니다

비석을 만들징않고 이렇게 명문을 한것이 오히려 괜찬은 관리랍니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비까지 만들려면...

이건 요즘만든 수로인듯 합니다

수로의끝에는 이렇게 물레방아를 만들었네요

요즘만들었겠지요

관광상품이지요

많이들오라구

매음자 음암폭포입니다

문경새재에는 매바위 응암폭포등 매가 참 많지요?

여기뿐아니라 우리나라 지명에 매가 유난히 많다

서울에만해도 응암동,응봉동, 청계산 매봉......

어원은 산이 꼭데기는 뫼로 불렸다 뫼가 매가되었다고 하는 학설이 많다

특히 우리나라는 독수리는 없고 매가 가장큰새이다

그래서 높고 험한곳에는 매의 이름이 많은거랍니다

 

응암폭포도 역시 험한 바위입니다

지금은 물이 안보입니다

조선시대 산불조심바위입니다

그때도 산불은 무서웠겠지요

간직할 가치가 있는 바위입니다

설명이구요

문경새재길은 많은사람이 찾읍니다

그사람들 볼거리 제공하기위해 많은 애를 쓴흔적이 여기저기입니다

소원성취탑입니다

그냥지나갈수 없지요

잠시 머리숙여 우리가족의 건강을 빌어봅니다

꾸구리 바위랍니다

말도 안되는 설명이지만 재미있읍니다

그리고 용담입니다

용담은 용이 놀수있는 크기의 못을 말합니다

용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가상의 동물이구요

아까 산행초입 여궁폭포의 파랑소와 여기가 연결됩니다

파랑소에서 돌을 떨어트리면 이곳용담까지 굴러온답니다

하늘로 오르는 연결고리인것입니다

그용담을 기리는 글이 많읍니다

또있고 또있읍니다

용담폭포위 마당바위입니다

넓고 시원하게 생겼읍니다

그마당바위옆입니다

폭포라하기는 좀 빈약하긴하지만

용이 오르는 폭포입니다

그아래 용담입니다

물이 파아란게 용이 놀다 갈만합니다

그래서 용담이지요

이곳은 교귀정이다

교귀정은 이곳 경상도지사의 이취임시 도지사 도장(거북모양)을 주고받던 장소이다

각도마다 이교귀정이 있었단다

최근 복원했다한다

 

 

교귀정  옆에있는 소나무에대한 설명이다

유명한 소나무인듯

그소나무와 교귀정이다

잘어울리는 한쌍입니다

그리고 또 커다란바위

역시 공적비가 각인되어있다

이 공적비는 자기가 만드는건 아니었을것이다

이임시 백성들 진심으로 우러나 만들었을텐데

좋은 관리가 많이 있었나봅니다

볼거리가 없으면

단풍이 있읍니다

눈이 심심치않게

평평한길

어디 내놓아도 훌륭한 길입니다

모두들 만족하는듯합니다

지금가는길 최근 뚫어 놓은길이고요

옛길은 이런 오솔길이었나봅니다

이가을 나무는 이렇게 남은 입새가 꽃역활을하지요

훌륭히 역활 수행중입니다

휴게소쪽인데요

단풍나무를 많이 심어놓았네요

화려합니다

사람모으기위함인가요

또다른 유물입니다

원터라하지요

공무원들이 출장시이용하는 여관이랍니다

돌담이 견고하지요

원터의 본건물입니다

지금으로치면 무궁화3개정도의 호텔입니다

참좋은집 같읍니다

 

 

뚤과 담장 내부이구요

가는길 조령산을 바라봅니다

저 조령산을 가기위해 여기를 한번더 와야합니다

연못과 수로가 조화롭게 꾸며논 조형물입니다

이런 조형물이 사람들이 오게 만들었겠지요

지난번에도 사진찍은 기억이있는 바위입니다

지름틀바위라고 합니다

기름짜는 도구 닮았다는데요

난 악어 닮았다고 생각했읍니다

어째든 특이한 바위입니다

이게 모두 공적비입니다

아까 바위에 새긴것보다 돈이 많이 들었겠지요

이런 관리라면 백성의 피땀을 많이 빼았았을것 같읍니다

참 많응 관리가 거쳐갔나봅니다

이양반은 공적비를 쇠로만들었네요

생각에 정말 악덕 관리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이제 주차장으로 왔읍니다

시간이 5시30분 어두움이 빠른속도로 달려옵니다

주흘산을 몇번이고 왔지만 이렇게 늦은적은 없었는데

역사 문화 탐방이었서 그랬을 겁니다

그냥 산을 보고 오르곤 했는데

오늘은 머리가 무거울정도로 공부도 했읍니다

또다른 의미의 산행이었지요

2014년 8번째 역사 탐방이라네요

난 처음 참여했지만

열심히 머리속 담으려 노력했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해 보았읍니다

전종현세르파님 괜찬았나요?

고마왔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