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6)2022.12.11. 속리산
우리나라 물맛이 좋은 3곳이 있는데 첫째가 충주의 달천수이며 두 번째가 오대산 우통수이고
세 번째가 속리산 삼타수라고들한다. 속리산 물이 그만큼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삼타수는 빗방울이 속리산 천왕봉에 떨어지면 물이 되어 흘러가는데
동쪽으로 낙동강, 남쪽으로 금강, 서쪽으로 흐르면 한강으로 간다네요,
한마디로 천왕봉에서 빗방울이 때리면 거기서 운명이 변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물이 좋기도 하다나 얼마나 좋냐구요?
이곳에서 샘솓는 물을 일명 법주약수 또는 옻샘이라고 부르는데 옻샘이라고 부르는 것은
옻오른 사람이 이 물로 목욕하면 씻은 듯이 낫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소문을 들은 피부병으로 고생하던 세조가 이곳을 찾을수 밖에 없었겠지요
그래서 속리산에는 정이품 소나무도 있고, 세조길도 있고 문장대도 생겼던 것입니다.
오늘산행 예정은 푸른색 라인입니다 한마디로 속리산 환상종주이지요
엄청 길어요 약 19Km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시간은 달랑 6시간을 명 받았는데요
아무리 통밥을 굴려도 안되겠다 싶었지요
그래서 빨간 라인으로 합니다 신선대에서 겸업대로 내려오는길
그렇게 반으로 끊었지요
그래도 거리는 17.3Km 6시간 17분입니다
다돌았다면 8시간은 가져야 되지않을까요?
휴게소도 쉬지않고 냅다 달려서
내래려다준 곳입니다
속리산 대형버스 주차장
원래 생각한 길보다 훨씬 더~~~
빨리 왔네요
큰길말고
샛길로 갑니다
돈들여 조경을 해 놓았는데
관리가 잘 안되나요?
있는 듯 없는듯 눈에 뛰지 않네요
그래도 돈들여 만들어 놓았는데
섭섭하지 않게 사진한장 남깁니다
길 좋다!
버스에서 내려서 길게 느껴지긴하지만
길이 좋아 다~ 용서됩니다
이런 나만 좋은게 아니었네요
충분히 상 받을 만합니다
법주사 앞마당에 커다란 부처님이 계시지요
미륵대불이라 합니다 법주사의 상징이지요
2000년대에 이 불상을 다시제작했는데 순금이 80Kg이나 들었다네요
그래서 구경값을 받아야겠다고 더 수입을 늘일 생각을 했겠지요
무료인 경로를 70세로 올리고 입장료도 5000원이나 받고있네요
입장권 파는분도 검표하는분도 얼굴에 온기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법주사와는 상관도 없는 우리한테 왠 입장료람?
우리나라 땅이 다 지들것인가?
오늘 동행하시는 분들입니다
나쁜 기분은 법주사에 다 버리고
기분좋은 산행을 준비합니다
좀더 자세히
오랜만이신분도 계시고
자주 뵙는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우린 모두 대성입니다
일주문에 "호서제일가람"
가람은? 승려와 재가신도가 모여 수행과 의례 등을 통해 불교의 교법을 구현하는 장소를 가리키는 불교용어입니다
너무 복잡했지요 그냥 쉽게 말하면 "절"입니다.
호서는 호수 서쪽이지요 그 호수는 제천의 의림지를 말한답니다
당연히 호수 남쪽은 호남이겠지만
의림호 서쪽에서 제일 멋진 절이란 말입니다
일주문 안쪽에 있는 현판입니다
속리산 대법주사
가운데 대자가 특이하지요
신라 고승 진표가 속리산에 이르자 밭을 갈던 소들이 모두 무릅을 꿇었다네요
이것을 본 사람들이 짐승도 이러한데 하면서 모두들 진표를 따라 입산수도 하였답니다
그 이후에 법주사는 생겨났지만 그 만큼 클 大 자를 사용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지요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가 아들 단종을 죽인 세조의 꿈속에 나타나서
복수의 침을 밷었다네요
그 침자국이 묻은 자리에는 심한 피부병이 생겨서 고생고생했지요
세조는 피부병을 치료하기위애 오대산 상원사도 가고 양양 낙산사도가고 했지요
결국 물좋다는 이곳에 와서 냇물로 목욕하고 치유를 했다합니다
조선의 왕인데 불심으로 치료했다지요
문장대입니다
작은문장대라 쓰여있네요
문장대는 제2봉이지요
세조가 책을 읽었다고 하는 커다란바위인데
모양이 비슷한 바위를 가져다 놓았네요
오늘 문장대는 이것으로 갔다 온것으로 치겠습니다
저멀리 문장대가 보입니다
그바위위에 사람들이 보글보글입니다
문장대는요
세조가 속리산에서 요양을 하고있을때
하루는 월광태자라 자칭하는 귀공자가 꿈에 나타나 동쪽으로 시오리올라가는곳에
영봉이 있으니 그곳에 올라가 기도를 올리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이에
세조가 신하들을 데리고 온 종일 올라가 보니 하늘 위에 오른 것처럼 영롱한 봉우리가보였다
그러나 위태로운 바위라 올라갈수 없어 철못을 박고 밧줄을 늘어 정상에 올라보니
널따란 박석위에 책한권이 놓여 있었다.
세조가 집어보니 오륜과 삼강을 명시한 것이라 세조가 크게 감동하고
하루종일 그자리에서 글을 읽으며 신하들과 강론을 하였다.
그 뒤부터 이봉을 문장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꽤 쌀쌀해진 날씨입니다
11월 그리고 12월에도 모기가 극성이도록 더웠는데
지난주부터 춥기시작하더니
오늘은 장갑이 필요합니다
물도 꽁꽁 얼었네요
삼타수를 모아논 저수지이지요
그만큼 좋은물이니까 모아서 써야겠지요
이 물길따라 오르는 길이 세조길입니다
어디끼지? 세심정까지요
길은 두갈래입니다
이런 차가갈수있는찻길하구요
이길 오른쪽 물길건너 세조길로 명명된 편안한길이지요
공평하세 올때간길을 바꾸어 갈때 길을 택해서 모두 갔답니다
정말 오래오래 지나서 세심정입니다
버스부터 약 4Km는 족히 왔겠네요
세심정이 무었이냐?
막걸리집입니다
파전도 팔구요 막걸리도 팔지요
일행은 식사를 하고간다지요
이때 거리를 죽여야지요 저는 그냥 출발합니다
물론 이곳이 문장대와 천왕봉의 갈림길이지요
당연히 천왕봉쪽이지요
아! 옛날에도 세심정은 주막이었군요
물레방아로 곡식을 찌어서 묵도 만들고 빈대떡도 만들고
막걸리 한잔에 마음을 씻으라는 세심정이군요
엣부터 있던것인지
이런 절구가 2개있습니다
절구로 곡식을 찟고 이맑은 물에 음식을 하면
맛은 물론이고
몸과 마음이 깨끗해 진다는 말씀입니다
요기 위에 태실이있지요
수많은 사람이 넘었을 개울입니다
이곳은 임경업장군이 수련했다는 겸업대와 갈림길이기도하지요
비록 최근에 만들어졌겠지만
운치있어보입니다
수양을 쌓으러 가든
태실에 인사를 하러가든
경건한 마음으로 목적을 향해가는 모델입니다
밀가루를 못드신다네요
사람의 태가 그 사람의 길흉을 좌우하므로 함부로 하여서는 안된다는 했다
궁중에서 태어난 아기의 출생의례로써 태실을 조성하고,
후에 왕위에 오르면 그 위용을 더하기 위하여 다시 석물(石物)로장식하였단다
여기 순조의 태실 역시 처음에는 봉분을 갖춘 태실이었으나
그가 왕위에 오른 후 1806년(순조 6)에 왕의 태실로서 석물을 가봉하고 태실비를 세웠단다.
이분은 이곳이 궁금하다네요
태실보다는 이곳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코스가요
제발 안전하게 다녀오세요
그리고 우리는 계속 오름을 가고있다
얼마쯤 가면 상환암이 나올텐데
그렇지요 힘들어 죽을 만큼 올라오니
머리위에 절이 보이지요
매번 왼쪽으로 갔었는데
오늘은 절구경 한번하고 가지요
역시 깨닮음은 고통을 동반합니다
어렵게 올라서니
제일먼저 원통보전이 눈에 들어옵니다
원통보전은 관세움보살을 모신 사당이지요
그러고도 작은 산사가 바위위에 배치되어있습니다
정말 이쁘고 아름답지만 집짓기도 쉽지 않았겠다 생각됩니다
아래에서 보았던 상환암의 주가람 원통대전입니다
지금 스님이 예불중이라 안을 촬영하는것은 예의가 아니라~~~
마음속으로 관세움보살을 새겨봅니다
바위신앙?
바위에 기도대가 마련되어있고
계단 위로 산신각 그리고
쳐다만 보는걸로 만족하는데
밀가루를 싫어하시는
불자께서 이미 보고 내려오십니다
그곳은? 사진으로 보여 주신답니다
약올린 죄였을까?
여기 뒷문으로 가면 되는데
다시아래까지 갔다가 올라 오셨다네요
혹시 수양이 부족해서 조금더 단련을?
이고개를 넘으면
상환 석굴입니다
커다란 바위 놓여진 상태 작은 틈으로 정상을 향한 길이연결되지요
이제 사바세계을 지나고
부처님세상 광명의 세상을 만나는 거지요
그 부처님의 세상은
멀리 정상부가 보이고
평평한 평지가 나타나지요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라고 있지요
속리산부근 지역에 십승지가 있다하는데
이런곳이 십승지가 아닐까요?
이런곳에 있으면 6.25도 모르고 지냈을것 같지요
진짜 이런곳에 오두막 하나짓고
땅에다가는 농산물 키우고
이쁜 색시나 있으면 애들낳고 행복하게 살텐데
가족들 부양하려면 단백질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때로는 사냥을 나갑니다
드디어 초록털을 가진 멧돼지를 만납니다
바로 잡혀 먹힐텐데도 웃고있지요
참불쌍합니다
한마리가지고는 안되는데
더 올라가 봅니다
한마리는 엄청 빨리 도망가 버리네요
놓쳤답니다
나중에 잡으면되지요
그동안 살이나 불려 놓거라
여기 또한마리
오늘은 초록색 돼지가 많네요
그리고 또 한마리 철사줄로 꽁꽁 묶어서 데리고 다닙니다
겨우내 식량이 되기도하고 애들 반려용으로도 써야겠지요
올겨울이 이제는 든든합니다
배도 든든하니 이제는 유람이나 다녀야지요
산신령한테 기도도 할겸 천왕봉을 향합니다
삼거리입니다
문장대와 천왕봉 방향의 갈림길이지요
천왕봉을 둘러서 다시 와야한다네요
누군가는 베낭을 벗어놓고 갔네요
훔쳐가면 어쩌라고?
저기가 천왕보잉구요
축지법을 써서 빨리 올라갑니다
아까 놓친 삐쩍 마른 돼지가 서있네요
표정이 좋지요 안심해도 좋으니까
그대로 놔두었다가 내년에나 잡아야지요
정상은 조기
아직 한고개 더 가야합니다
그리고 정상을 포효합니다
여기 배두개간을 꿋꿋히 지키는 천왕봉입니다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세요
우리의 소원은?
정상에서본 비로봉입니다
비로봉은 신라때 한스님이 새벽 좌선을 하고 있는데
별안간 방문이 환해지면서 밝은 햇빛이 방문 가득히 비쳤다네요
맞은편 산봉우리에서 눈부신 햇빛이 오색무지개를 띠는 비로사나불이 암석에 앚아 있다가
천천히 서쪽을 향해 구름을 타고 떠나갔다나?
그후부터 비로사나불이 머물다 간 이곳을 비로자나불 의 이름을 붙여 비로봉(毘盧峰)이라 했답니다
그래서 비로봉입니다
비로봉넘어 속리산의 준봉들이 보이지요
멀리 관음봉 문장대등등이 보입니다
속리산의 상징인 문장대에서 천왕봉까지 바위 전시장이지요
이제 하산입니다
다시 삼거리로가서 문장대로 향해야겠지요
몇몇은 문장대 포기했어요
그래서 헬기장에서 싸온 점심을 해결합니다
뒤돌아본 정상이지요
점심후 출발합니다
다시 삼거리를 지나고
삶이 많이 힘들었나봅니다
온몸에 그 흔적이 보이지요
그래도 우린 이런 특별한모습을 예술이라 하지요
괴물둘이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두나무가 합쳐서자라면
연리지라 했던가요
정말 찰떡입니다
그러고 속살을 훤히 드러낸 이런 인생도 있지요
우리는 그런 삶을 보고 또 배우기도 하지요
속리산에는 8자와 인연이 많다합니다
8개 이름(속리산의 다른이름 8가지 있고)-광명산, 지명산, 구봉산, 미지산, 형제산, 자하산, 소금강, 속리산
8대(8가지 경치좋은 암벽이)-문장대, 입석대, 경업대, 배석대, 학소대, 은선대, 봉황대, 산호대
8봉(8가지 봉우리)-천황봉,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보현봉, 수정봉, 묘봉 관음봉
8석문(8가지 석문)-내석문, 외석문, 상환석문, 상고내석문, 상고외석문, 비로석문, 추대석문 등
이있다고 합니다
이곳 비로봉 밑의 석문은 비로석문 또는 천왕석문이라 부른다지요
석문옆 이바위는 바둑판?이 아니고 걸방바위라 합니다
망태를 걸방이라고도 한다네요 걸방바국이 났잔아요
이 바위는 옛날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모집할때 강원도 설악산의 울산바위가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 설악산 경치에 매료되어 설악산에 머물렀다 하듯이
속리산 걸방 바위도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에 현재의 위치에 쉬면서 속리산 경치를 구경하다가 늦어서
속리산에 머무르게 되었다 합니다
또 다른 전설은 조선시대 인조때 임경업 장군이 속리산에서 7년간 수도를 할때 큰 암석을 걸방으로 져서 놓았다해서
걸방바위라 칭하는데 그바위에는 이처럼 걸방끈 자국이 나타나 있어서 그런 이야기가.....
희안한 바위들이 많지요
동물 같기도하고
뭘 만들다가 중단한 바위 같기도 합니다
나무숲 통해보이는 바위가 두꺼비모양입니다
사실 속리산에는 유명한 두꺼비 바위가있읍니다 이곳이아니고 법주사 옆에 수정봉에있는데
옛날 당나라 태종이 세수를 하여다가 세숫물에 큰 두꺼비 그림자가 비치었다 이상히 여긴 태종은
유명한 도사를 불러 물으니 도사가 대답하되 한국 명산에 큰 두꺼비의 물형이 당나라를 향하여
많은 당나라 재보를 동국으로 들어가려함이니 두꺼비모습의 물형을 없애라 하였다.
태종은도사의 말대로 사람을 보내어 사방을 찾다가 마침 속리산 수정봉의 두꺼비돌을 발견하고
돌두꺼비의 목을 자르고서도 안심이 안되어 돌두꺼비 등어리 위에 10층의 석탑을 쌓아서 거북의 정기를 눌렀다 한다.
그리하여 목은 끊어지고 탑에 눌린 돌두꺼비가 되고 말았다.
고릴라 바위입니다
이곳이 입석대입니다
임경업장군이 이곳에 이르러 6년동안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장군의기상을 닦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의 단련이 그의 체력한계가 되는지를 알길이 없었다.
그는 그것을시험해보고자 했으나 기준조차 알길이없어 매우 당혹하게 여겨오고 있었는데
하루는 석굴에 앉아정신을 통일하고 있는데 그뇌리에 홀연히 형체는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임경업이 정신을모아 그말을 들으니
「마주바라다 보이는 석벽에 올라가 그 옆에 누워있는 돌을 비석처럼 세워 놓으면힘을 측정할수 있으리라」하는 내용이였다
임경업은 곧 경업대에서 마주보이는 곳에 올라가 커다란돌을 일으켜 세우는데 아직도 힘이 부족했다
다시 열심히 체력을 단련하기를 1년 마침내 7년째 되던해 반석(般石) 위에 돌을 세우는데 성공을 했다
그후부터 돌을 세웠다 고해서 입석대(立石臺)라 오늘에 이르고있다.는 전설입니다
신선대와 겸업대로 갈리는 삼거리 입니다
조금전 앞서가신분들이 전화가 왔는데 신선대 매점 맛이 별로라고 그냥 하산한다구요
저도 그러기로 했지만 그래도 신선대는 이런 전설이나 알아보고 가야겠네요
아득한 옛날 속리산에서 절경에 혼을 빼앗긴 고승이 청법대에서 불경 소리를 듣고 멀리
남쪽 능선을 바라보니 산봉우리에 백학이 수없이 날아와 춤을 추고
그 가운데 백발이 성성한 신선들이 앉아 놀고있는데 그모습은 고승이 평생 원하는 선유
세계인지라 황급히 청법대를 지나 신선들과 놀고자 그곳으로 달려갔으나 막상 당도하여 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지라크게 실망하고 아쉬워하면서 그자리를 떠나 다음 봉우리로 가서 다시
이곳을 보니 여전이 주위에는 백학이 놀고 신선들이담소를 하는지라 고승은
아직도 자신이 신선들과 만날 수없음을 깨닫고 다시는 그곳으로 달려갈 엄두도 못냈다고 한다
.그리하여 신선들이 놀던 봉우리를 신선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제가 그고승입니다 신선대를 갈수가 없네요
저기 배낭매신분은 신성을 보고 오신다네요
겸업대로 내려가는길입니다
경사가 제법있지요
눈까지 살짝 덥혀서 위험하기도 합니다
조금 내려와서 뒤를 바라보지요
신선대입니다
하얀 백합들이 날고 있는게 보이나요?
입석대도 보이지요
혼자가는 이길이 더 멀어보이네요
그래도 앞서 가신분들으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제 어느정도 접근이 되어있나봅니다
일부는 저바위뒤에서 사진을 찍고있지요
몰라도
이버위가 임경업장군을 장군으로 만드는데 기여를 한 바위일것입니다
이쁜 여인들
임경업장군이 세웠다는 입석대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를 원하지요
그런 신랑이 있으면서?
또 다른 여인입니다
겸업대에서 내려서면 바로 관음암입니다
신비스런 사찰 관음암을 보고가야지요
앞서 오던 분들은 그냥가고
뒤에서 사진찍는 분들은 아직이고
혼자갑니다
바위에 틈이보이지요
사람이 충분히 들어갈수 있네요
통로?
왼쪽 글씨입니다
관세움보살이라 쓰여있네요
그러면 이곳이 관음암의 일주문이나 천왕문정도가 되겠네요
이게 통로입니다
한사람이 충분히 들어갑니다
살짝 라운드가 져서
앞에서 뒤를 볼수는 없어요
길이도 꽤 됩니다
절은 저 위에 있는듯하구요
석굴이있는데
장군수라는 샘이있어요
역시 임경업장군이 이물을 먹고 장군이 되었다지요
관음암은 문이 잠겨있어요
잘 이해가 안돼네요
사람이 없어도 사찰은 기도하는곳인데
꼭 잠거놓고 다녀야하는건지
추위를 피하고 배고픔도 피할수있다면
그리고 언제든지 누구든지 기도하고 싶으면 하여야하는게
절이자 교회가 아닌지?
되돌아갑니다
역으로 석문을 나와서
다시 세심정을 향합니다
홀로가는 이길은 왜이리 멀고 힘이드는지
한참을 내려와서
휴게소가 있던 자리입니다
복원중이라 하네요
그리고 또 홀로 한참 내려오니
비로산장이라지요
역시 막걸리 파는 집인듯하네요
아까 올라올때 지났던 다리가 보이고
다시 세심정입니다
이제는 평지길이지요
될수있는데로 아침에 온길과 반대로 갑니다
말굽버섯?
국립공원이라 안따가나봅니다
아! 목욕소
세조가이곳에서 피부병을 치료했다네요
이제 정말 쭉입니다
법주사 담벼락이 나타납니다
입장료 5000원때문에
둘렀다 갑니다
요놈
마애여래좌상입니다
역시 보물이구요 제가본 마애상중에 가장 정교하고 예술적으로 된 수작입니다
옛날 수정봉의 산신이 산봉우리를 정리하다 보니 커다란 바위가 있어야 할곳에 있지않고
제멋대로 자리를 변경하였는지라 괘씸하게 생각하여 너는 이수정봉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무용지물이다 하고
산봉우리밑으로 굴려 버렸는데 그바위가 현재 위치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또 일설에는 하늘나라의 궁전에서 정원사가 돌사이에 낙엽이 쌓여있으므로 그 낙엽을 걷어내고
바위를 옮겨 놓다 실수를 하여 지구상에 떨어지게 되었고 정원사는 기왕에 떨어질 바에야 명산인
속리산에 떨어지도록 하였다한다 그리하여 떨어져 내려온 바위라 하여 추래암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