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3)2021.09.04. 장산
장산(1408m)
장산(1408m)
태백산 그리고 함백산과 삼각을 이루고 서있는 산입니다
태백산 유일사 주차장에서 함백산 방향으로 가다가 왼쪽에 있는산이 장산입니다
장할 壯 뫼山 즉 장한산 즉 대단한 산 이라 장산으로 되었나?
상동입구에 중석 탄광이 있어서 잘나갔던 동네였는데
그 곳에 있는 꼴두바위는 애기 못나는 며누리의 애환이 담긴
바위랍니다 그래서 사당도 있구요 애처러움을 같이 나누는 장소인듯합니다
광산이 폐광이 되고 산도 한가해 지지 않았나합니다
산에는 각종 약초 특히 이 계절 마가목 열매는 사람이 많이 찾지 않을을 증명할 만큼
엄청난 빨간색 선명함을 보여 주지요
몇일 지난 아직도 눈이 부십니다

꼴두바위~망경사입구~철탑~홈통바위~서봉~촉대바위~헬기장~장산~너덜~안부~야영장주차장으로
약 8Km 구간이 예정되어있지요 오랜만에 너무도 인간적인 코스입니다
오를 때는 물론 고도가 1400m 나 되니 경사도 있고 땀도 적당히 났지만
하산길은 푹신한 육산에 힘도 많이 비축 되어있어서
쉽게 뛰어내려 왔고, 하산후 모처럼 얼굴에 웃음도 띠웠답니다

야영장에서 이끼계곡까지 약 700m를 내려왔지만
거리는 8.4Km입니다
중간 마가목을 따느라 충분한 시간을 소비했지만
시간도 대장님이 부여해주신 5시간을 딱 맞추었답니다

꼴두 바위입니다
어미가 애기를 않고 있는 모양입니다
결혼후 애를 못가진 며느리가 시어머니 구박에 고만 죽었답니다
그를 불상히 여긴 하늘이 며느리 형상의 바위를 깍아 주셨답니다
그것도 아들을 안고있는 모습으로요
아들은 광물인 중석이라네요
이곳에 중석 광산이 있었다지요

꼴두바위의 전설을 기록한 안내판입니다

꼴두바위에서 지성을 드리는 며누리 상입니다
이렇게 이렇게 지성을 드리다가
시어머니 구박에 고만 ....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그불상한 영혼을 그냥 보낼수가 없어서
이렇게 산신각을 지었답니다

산신각 안에는 누가있나요?
말탄 선비?
주로 산신각에 이런분은
영특함의 대표주자인 김유신장군,
억울하게 죽은 최영장군,
그리고 가끔 풍어제(강화도지역)를 지낼때는 임경업장군이있는데요
그럼이분은 억울하게 죽었으니 최영장군이 아닐까요?
며누리의 한을 풀어달라고

산신각 우측에는 커더란 산사나무가 기도하는 며누리를 해빝으로부터 보호해주고 있네요
혹시 사돈이란 말을 아시나요?
사돈의 査頓은 산사나무 査 조아릴 頓 즉 산사나무 아래 머리를 조아린다는 뜻입니다
사돈(査頓)이라는 말은 고려 때 여진족 정벌로 유명한 윤관과 오연총에서 유래되었습니다.
1107년(예종2)에 윤관이 원수가 되고, 오연총이 부원수가 되어 17만 대병을 이끌고 여진족을 정벌하였습니다.
이 전쟁에서 큰 전공을 세우고 9개 성을 쌓고 평정한 다음 개선하였지요. 그 공로로 윤관은 문하시중이 되고 오연총은 참지정사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최전선에서 생사를 같이 할 만큼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은 자녀를 결혼시켜 사돈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냇물을 사이에 두고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종종 만나 회포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윤관댁에서 술을 담갔는데 잘 익어서 오연총과 한 잔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인에게 술을 지워 오연총 집을 방문하려고 가던 중 냇가에 당도했는데 갑자기 내린 비로 물이 불어 건널 수가 없어서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냇물 건너편에서 오연총도 하인에게 무엇을 지워 가지고 오다가 윤관이 물가에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대감, 어디를 가시려는 중이오?"
“술이 잘 익어 대감과 한 잔 나누려고 나섰는데 물이 많아서 이렇게 서 있는 중이오."
오연총도 마침 잘 익은 술을 가지고 윤관을 방문하려던 참이었습니다.
피차 술을 가지고 오기는 했는데 그냥 돌아서기가 아쉬워 환담을 주고 받다가 오연총이 윤관에게 말했습니다.
“잠시 정담을 나누기는 했지만 술을 한 잔 나누지 못하는 것이 정말 유감이군요"
이에 윤관이 웃으며 오연총을 향해 말했습니다.
“우리 이렇게 합시다. 내가 가지고 온 술은 대감이 가지고 온 술로 알고, 대감이 가지고 온 술 또한 내가 가지고 온 술로 아시고 ‘한 잔 합시다' 하고 권하면 역시 ‘한 잔 듭시다' 하면서 술을 마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오연총도 그 말에 흔쾌히 찬동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무 등걸[査]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이편에서 '한 잔 드시오' 하며 한 잔 들고 머리를 숙이면[頓首] 저편에서 '한 잔 드시오'하고 머리를 숙이면서 반복하기를 거듭하여 가져간 술을 다 마시고 돌아 왔습니다.
이 일이 조정의 고관대작들에게 풍류화병(風流畵屛/멋진 이야기거리)으로 알려져서 그 후 서로 자녀를 혼인시키는 것을 우리 사돈(査頓/ 나무 등거리에 앉아 머리 숙이며 술이나 마시자) 맺기라는 말로 회자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의 사돈(혼인한 집 부모가 서로 부르는 존칭)이 바로 여기서 유래된 것입니다.

꼴두바위를 우회하고
119센터를 바라보고 개울을 따라 올라가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