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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1) 2014.11.29. 예산 가야산

삐딱한염소 2014. 11. 30. 19:40

    가야산은 충남 예산군과 서산군, 당진군 등 3개 군에 걸쳐 들판에 우뚝 솟아

   산세가 당당하고 곳곳에 사찰이 자리하고 있어 은은한 풍경을 자아낸다. 

   주봉은 가야봉(677.6m)이지만 통신시설이 점유하고 있어 석문봉(653m)이

   주봉을 대신하고 있는 곳으로 인기100대 명산중 67위에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주변에 백제시대 마애석불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는 국보 제84호인 서산

    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한 보원사지,개심사,일락사,보덕사,원효암 등 백제 초기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사찰들과 해미읍의 명소로 이름난 해미읍성, 홍성읍성, 면천읍성이

   있다. 정상에 서면 서해바다가 아련하게 보이고 능선길의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가야산은 그유명한 개심사가있다

정상이 통신 안테나로 되어있어 석문봉을 정상으로 치기도 했다

하지만 식구들 잠든 짬을 이용하는 산행이라

가장 짧은 코스를 선택한다

가야산도 결코작지않은 산이다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두루두루 둘러서 산행을 할수도있지만

난 가장 빠른 길을 택해서 정상을 오르기로했다

콘도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서더

그래서 택한길이 상기리코스이다

물론 그쪽에서 시작해서 그쪽으로 하산하는것이다

그렇게 산행한것이

08:00 시작해서 10:30에 끝냈다

거리는 6Km 2시간 30분 소요하였다

 

 

덕산온천에서 약 10여분

주차장이 잘되있고

가야산 도립공원 관리사무소이다

이곳이 사작이려니했다

차에서 내려 산쪽을 바라보았다

여기서는 가야봉 정상은 보이지않고

구름속에 가린 석문봉만 보인다

등산안내도를 보면서

가장 빠른길만 찾는다

그리고 10여분 걸었다

우측 동네 아주머니 오뎅장사 좌판을 준비하신다

사람이 많이 오시나보지요?

그렇단다

오른쪽이 석문봉방향

시간없는 우리는 왼쪽 가야봉 방향이다

그이정표를 좀더 접근해보았다

그리고 더접근

왼쪽방향 가야봉 3KM만 가면 된단다

그리고 출발하면서 왼쪽 산능선을 본다

안테나가보인다

저기가 가야산 정상이고 난 조금있으면

저기서 여길 바라볼것이다

그리고 잠깐후

가야사지 터를 만난다

이곳은 지금  발굴 중이다

 대원군 이하응이 한 풍수가에게 명당을 찾아줄 것을 부탁하였는데,

풍수가는 이 자리를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올 자리로 지목하였다고 한다.
이곳에는 원래 가야사()라는 절이 있었고 무덤자리에는 탑이 서 있었는데,

1844년 대원군은 명당자리를 찾아 옛 가야사를 불지르고 탑을 부순 후 경기도 연천에 있던 부친의 묘를 썼다.

그리고 인근 골짜기에 절을 지어 보덕사()라 이름짓고

개운사 주지인 도문을 초대 주지로 삼은 후에 남연군묘 수호일품대승()이라는 직책을 내려 묘를 돌보게 하였다.

7년 후 대원군은 차남 재황()을 얻었는데,

이가 곧 철종의 뒤를 이어 12세에 왕위에 오른 고종이다.

1868년 독일인  에트른 오페르트가 1866년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조선과의 통상교섭에 실패한 뒤

대원군과 통상문제를 흥정하기 위하여 이 묘의 시체와 부장품을 도굴하려다 미수에 그치기도 하였다.

이 사건으로 대외적으로는 서양인의 위신이 크게 떨어졌고, 크게 노한 대원군은 통상거부정책을 강화하고 천주교탄압을 가중시켰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연군의 묘 [南延君─墓] (두산백과)

아래에서본 남연군 묘소이다

우린 하산시 다시둘러보기로하고 바로 산행을 이어간다

계속 정상을 향해 간다

가야9곡 녹색길이란다

여기 이곳도 전국 걷기열풍에 동참했는가보다

콘크리트길 옆에 돌을 깔아서 길을 만들었다

없는 지방 재정에 건설업자가 혜택 많았을것 같다

다시한번 정상을 보고간다

축대위 이상한 집이보입니다

펜션같기도하고 장난감 집같기도합니다

그축대까지올라오니 저수지가 나타납니다

이것이 상가리 저수지입니다

가야9곡길이 이저수지를 따라 계속됩니다

아! 그이상한 건물이 절이군요

길지사

그흔한 조계종이니 태고종이니하는게 없네요

기존의 절형태를 탈피했어요

특이하게 생긴게

우리불교도 한번 이런 건축물 시도해볼필요가있지않겠어요

다시한번 눈길이갑니다

콘크리트길이 끝나는지점입니다

왼쪽으로는 제법 마을을 이룰만한 집들이 있읍니다

등산객 상대로 식당도 하는가 봅니다

우린 산행을 해야지요

가야봉을 향해서 우린 우측으로 갑니다

그리구 10여분

가야봉과 석문봉의 갈림길이 나옵니다

역시 우린 가야봉만 보입나다

가야산의 오늘은

가을의 막바지입니다

벌거벋은 나무에

붉은옷을 입은 바닥입니다

 

바람도업구요

바닥은 축축해서

꾹 눌러앉은것같이 조용합니다

그리고 나타난 쉼터

아 그리고는 너널길이군요

잠시쉬어가라는 뜻을 못알아체었네요

너덜길에 경사까지

우린 힘들면 사진을 찍읍니다

쭉~~ 이런길이 이어지고

능선은 언제나 나올려나?

하늘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조기만 가면 쉬울거란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곳을 올랐읍니다

정상이 400미터남았군요

나무사이로 정상을 바라봅니다

구름속 정상은 히미하게 보입니다

이곳 잘생긴 소나무를 배경으로

오늘 동행하신 재헌형님 한컷트 찍읍니다

그리고 다시 정상으로

접근할수록 안테나가 선명해집니다

그리고 구름속에 길다랗게 세워진  나무계단을 오름니다

숨이 목에 찰무렵 더이상 오를 곳이 없어집니다

계단끝에 설치된 국가지정번호" 다,바 2035 5688"

여기가 정상이다

이계단끝에서 100산 인증 사진을 찍는다

안개속 역광이라 잘안보이지만

그래도 인증이니깐

수건버리고

맨손으로 기념하기도하고

뒷짐짓고 기념해보기도한다

하지만 흐릿하다

동행한 재헌이형도 한장 기념해준다

역시 구름속에 가려진 석문봉을 바라보며

우리가 시작한 삼가리 저수지를 바라보며

정상의 기쁨을 끝낸다

다시 계단을 타고 하산한다

담장 끼고 살짝 내려오니

평상이 몇개가있다

아마 정상을 차지한 통신대가 등산객에게 미안한 생각에

여기서 식사 편안하게 하라고 만들어 준것이 아닐까?

그리고 조금더 내려가면 헬기장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평상시 같으면 두루두루 다 보고왔으면 좋겠지만

오늘은 목적달성했으니 바로 하산이다

하산길 무지무지 상태가 않좋다

정상부라 경사도 가파른데다

비에젖은 낙엽 드리고 그밑에 젖은 흙

또 삐쭉삐쭉 나온 날카로운 작은 바위가 많이 힘들게한다

여긴 바위만 모아논 장소이지만

저런 바위가 낙엽속 흑속에도 많이있다

그져 조심하는수밖에는 없다

마음은 저밑이지만

빨리가고 싶어도 갈수 없읍니다

결국 조심조심 했는데도

낙엽 밑 황토흙이 미끄러지면서

돌뿌리에 대퇴부가 찔리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다행히 걷는데는 지장이 없읍니다

급경사 난코스를 내려와서 바라본 정상의 안테나입니다

얼마나 난코스인지 아시겠지요?

이제는 좋은길만 나타날것 같은 예감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가을을 만끽해야지요

융단깔린 편안한 길입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지요

작으마한 개울을 만납니다

아직 양지바른 개울에는 피래미가 놀고있고요

우린 넘어져 묻은 흙들을 여기서 털어냅니다

가야구곡 녹색길의 종점인가 봅니다

와룡담 여기서 100미터이네요

서있는 용인가요?

볼수는 없네요

이것이 와룡담은 아니겠지요

사방시설로 만든 댐인듯합니다

와우~~

이계절에 아직도 코스모스가?

아직 가을이라고 막~~

외치는듯합니다

아까 산행초입에 만났던 마을입니다

마을 속으로 들어와 버렸네요

이렇게 까치밥만 달려있는 감나무가

가을을 더해줍니다

잘꾸며논 어느 집 정원을 통과하구요

아까와는 다른 감나무이지요

참 많이 달려있읍니다

까치밥하기에는 너무 풍요로운게 아닐까요?

좀더 근접해보았읍니다

꼭 기차길옆 애들많은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김장을 준비하려하는듯

배추를 거두어 가고있읍니다

평화롭지만

찝차가 있는것은 익숙한 풍경은 아니지요

다시 남연군 묘입니다

다시사작할까요?

풍수쟁이는 대원군에게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나중 도굴의 우려가있으니 석회 300포이상을 사용하여 매장하라한다

당시 일반인은 3~4포정도 고급묘라야 10포내외를 사용했단다

묘 앞의 석물 아래 바위가 드러나 보이는데 원래 이 자리는 탑이 서 있던 암반의 바위를 깨고

묘를 만들고 쇳물과 강회300포로  덮었다.

그 바람에 독일 상인 오펠트가 천주교도들을 동원하여 이 무덤을 도굴하기 위하여

밤새도록 팠으나 실패하고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이 도굴 시도 사건이 대원군으로하여금 천주교 탄압과 

쇄국정책을 가속화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잠시 명당인 이곳에서 기념사진이라도 한번 찍어야지요

천자2명은 아니라도

아들 장가나 잘보내달라고

나야 물론 우리 딸래미 좋은 대학이나 보내달라는거지요

기념물80호 남연군묘 표식입니다

여기가 가야사터입니다

남연군묘 바로 아래있지요

오로지 천자를 만들기에 빠진 대원군은

흥선대원군은 사재를 정리한  돈 2만냥을 주지에 주고

절에 불을 지르게 했다는 설이있다

 

남연군묘 옆에는 기와로된 예날창고같은 건물이있다

남은들 상여를 보관하는곳이다

남연군의 유해를 연천에서 이곳까지 운구할때 사용한 상여이다

운구시 지역마다 그곳사람들을 동원하여 마을 경계까지 나르게 하였고

이곳에 기증하였다한다

지금은 상여는 없고 새로지은듯한 창고건물만있다

 

가야사 터와 남연군 묘를 다시한번 조망하고 이곳을 떠난디

그리고 가야산 정상도 다시바라보며 다음 시간 많을때 찾을것을 약속한다

그마을 펜션이다

상당히 큰규모이고 조경도 잘되어있다

가야사를 기억하는 그런 펜션

가야9곡길이 마을 입구에 설치되어있다

목제 데크길이 이동네 관광객을 위하여 노력했다는 생각이다

숙소로가기전

상가리 미륵불을 답사하고 간다

위치는 남연군묘에서150미터 정도거리에 있다

이불상은 원래 가야사 방향으로있었는데

남연구묘를 쓰자 반대로 등을 돌렸다는설이있다

한개의 돌을 깍아서 만든 불상인데 얼굴이 신라 기와에서 기려진 얼굴같이

온화한 모습이 상당히 예술적 미인이다

다만 아기를 갖고자하는 여인들에의해서 코를 떼어가서

성형수술한 코가 기형적이라 보기가 좀 그렇지만

 

남연군묘를 등진 것은

풍수적으로 북쪽 계곡을 통해 들어오는 나쁜 병마를 막기위한 방향이랍니다

이렇게 이쁜 불상도 만나고

번개불에 콩구워먹듯 급하게

그리고 햇빛속에 께끗하게 볼려면 여유를 가지고 오라는듯

구름속에서 살짝 모습보여주고

엉덩방아찢게해서 아픔도 느끼게하는

명산 가야산 산행을 마칩니다